‘코로나19’와 ‘우한코로나19’, 무엇이 글로벌 스탠더드?

퇴근길에 도립 도서관에 들러 책 보기에 재미를 붙였다. 책 진열대에서 신간 두세 권을 가져온다. 책상에 앉자마자 별생각 없이 한 권을 집어 든다. 저자의 서문을 본다. 책의 뼈대를 보여주는 큰 목차를 살펴본다. 목차 제목을 공책에 적으면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처음 접하는 새로운 용어의 개념을 볼펜으로 적는다. 60분이 지나가면, 책의 끝에 도달한다. 한두 마디의 서평을 메모한다. 이런 식으로 두세 번을 반복한다. 그렇게 한 후 집에 오는 동안 내내 마음은 뿌듯하다. 발걸음도 가볍다. 하루가 좋은 기분으로 끝난다.

대체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언론은 ‘코로나19’로 줄여서 말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탓에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가 부담스럽다. 우선 도서관 가기를 멈췄다. 대구지역의 소위 ‘신천지 교회 신자’ 코로나19 발생 클러스터(cluster)는 코로나19의 접촉성 감염력이 막강함을 드러냈다. cluster는 첫 번째 뜻이 (함께 자라거나 나타나는) 무리이다. (작은 열매의) 송이, 즉 포도송이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다. 말하자면, 대구지역은 ‘신천지 교회 신자’ 발 ‘코로나19 클러스터’인 셈이다. 외국은 우리나라를 ‘코로나19 다발국가’로 인정하는 모양이다. 유쾌하지 않게도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코로나19 클러스터’(Clusters of COVID-19)로 치부되는 셈이다.

COVID-19(COronaVIirus Disease-19; 2019년에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질병)는 우리가 지은 이름이 아니다. 세계 보건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를 정하고 권장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월 11일 그렇게 공식화했다. WHO 누리집에서 보니, 질병의 예방, 전파, 전염성, 중증도 및 치료 등에 대한 토론이 가능하도록 질병의 이름은 지어진다. 인간 질병에 대한 대비와 대응이 WHO의 역할이기에, WHO는 ‘국제 질병 분류’ (ICD)에 따라 질병 이름을 공식적으로 정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COVID-19를 누구든 쉽게 알아차리도록 하고자 ‘코로나19’로 표기하고 ‘코로나일구’로 읽는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이다. 그 병명을 들으면 어떠한 특정 지역도 특정 집단도 머릿속을 스치지 않는다. ‘19’를 아라비아 숫자 하나로 읽지 않고 두 글자 ‘일구’로 읽은 점은 또 다른 그 무엇에 대한 배려라 생각한다.

일부 언론과 정치지도자는 ‘코로나19’를 ‘코로나일구’로 읽지 않는다. “황 대표는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우한 폐렴을 빌미 삼아 또다시 혈세를 쏟아부을 생각은 당장 접어야 한다. 이제 미봉책은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news.chosun.com, 2020.2.21.)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가 25일 우한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통합당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황 대표가 음성 판정을 받았다며 ‘황 대표는 당내 우한 코로나19 특위위원장으로서 통합당의 대책을 관장하는 등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news.chosun.com, 2020.2.25.) 어쨌든 유력 신문사의 보도이다. 또한 미래통합당 누리집에 게재된 사진에도 ‘우한코로나19 대책특위 서울대병원 방문’(2020.2.28.)이라고 설명을 붙였다. 미세한 차이가 보인다. 띄어쓰기가 다르다. ‘우한 코로나19’가 ‘‘우한코로나19’로 변했다. 중국의 지명 ‘우한’을 나타내는 두 글자는 보석에 버금가는 장식물인지 코로나19를 그렇게 표기하고 말했다.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는 평소의 인상과는 거리가 먼 행태로 여겨진다. 적어도 WHO가 ‘COVID-19'로 명명한 2월 11일 이후의 말과 글에서는 ’우한‘이 지워졌어야 했다.

‘코로나19(COVID-19) 실시간 상황판’을 보여주는 어떤 누리집의 주소는 ‘wuhanvirus.kr’이다. wuhanvirus는 ‘우한바이러스’로 읽힌다. 주소의 핵심은 ‘우한바이러스’인데, 그 운영자가 게시하는 내용의 제목은 ‘코로나19(COVID-19) 실시간 상황판’이다. 운영자의 본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보도 자료를 보니, 29일 16시 기준,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3,150명(누적 인원)이다. 지역별 분포는 대구 2,236명(71.0%), 경북 488명(15.5%)이다. 걱정스럽게도 문자대로 대구는 ‘코로나19 클러스터’ 지역으로 불릴 만해졌다. 대구와 경북을 합하면, 그 비중은 전국 확진 환자의 86.5%에 이른다. 대구와 경북에 거주하거나 연고가 있는 몇몇 분에게 전화와 메시지로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국내 발생 현황>

출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보도 자료

“우리는 지금 국경을 존중하지 않는 한 바이러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는 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독일 등 7개국 보건장관이 참여한 지난 25일 로마에서 코로나19 방역 대책회의에서 이탈리아 보건장관이 했다는 말이다(한겨레, 2020,2,26). 바이러스는 국경을 존중하지 않기에 바이러스감염증은 어느 특정 국가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보편의 문제이다. 

<'국경을 존중하지 않는 바이러스'>

25일 로베르토 스페란차 이탈리아 보건장관(가운데)이 인접 7개국 보건장관들과 코로나19 공동 대응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출처: 2020-02-26,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929908.html

불편하지만, ‘바이러스’ 속성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바이러스는 차별하지 않는다. 노동시장 차별을 유발하는 성, 연령, 학력, 근속년수, 기업 규모의 크기, 정규직 여부 등을 구별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면 변한다. 변종 바이러스로 살아남는다. 한편, 만물영장이라는 인간이 바이러스만도 못하다고 할 만큼 세상살이는 온갖 차별과 혐오와 부적응으로 물들었다. <대학>(大學)의 작자는 그 전3장(傳3章)에 다음과 같은 공자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꾀꼬리가) 머무름에 그 머무를 곳을 아나니, 가히 인간으로서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보편성에 어울리는, 차별을 내포하지 않는 용어를 구사해야 국제표준인 ‘글로벌 스탠더드’를 존중하는 인간으로 대접받을 거다. 우리 인간이 가히 사람으로서 바이러스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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