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어마어마한 쾌거를 이뤘다. 아카데미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었으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외에도 세계 유수한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탔다. 2019년 세계 최고의 영화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 '봉준호' 감독에게 물었다. “아시아에서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준 감독은?” 그는 “<하녀>를 만든 '김기영' 감독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다.”고 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영화 <라쇼몽>(羅生門, 1950)으로 1950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감독이다. 그런데 질문을 "아시아에서 친구 맺고 싶은 감독은?“으로 바꿨다면 비슷한 연배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 감독을 뽑지 않을까 생각한다.

'봉준호'와 '고레에다' 감독은 좀 닮았다. 둘 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 그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고레에다’가 감독한 영화 <어느 가족>은 제71회, <기생충>은 제72회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어느 가족>은 제91회 아카데미 외국어작품상 후보엔 올랐지만 아쉽게도 <로마>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기생충>을 보고나서 참 기분이 묘했다. 재미있다거나, 스릴 있다거나, 웃기다거나, 마음 아프다거나, 의미심장하다거나 뭔가 특정지어 말할 수 없는 혼재된 씁쓸함 그 자체였다. 완벽하게 잘 짜인 영화가 심각한 메시지를 던져 줬는데 너무나 엉킨 상태로 던져 주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빈부격차에 맘이 편치 않았다. 어떤 사람은 화가 났다고도 했다. 누군가 두 번 보자고 한다면? 단연 NO!! 괴로운 영화를 어찌 두 번 보겠는가?

<어느 가족>도 일본의 어두운 면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는 2016년에 일어난 연금 사기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부모 사망 후 연금을 받기 위해 사망 처리를 하지 않고 부정 수급한 사건이 발생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뉴스를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두 번 보았다. 내용은 괴롭지만 따뜻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고레에다’ 감독이 2004년 제작한 <아무도 모른다>도 일본의 어두운 면을 그린 영화다. 이 작품 역시 1988년 도쿄에서 일어난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을 모티브 삼아 만들었다.

이 영화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얼마간의 돈을 두고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4남매 이야기다.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돈은 떨어져가고... 헤어짐을 택할 수 없는 장남 아키라는 동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막내에게 큰 사고가 난다. 이웃들은 이런 현실을 어렴풋이 알면서 말려들지 않기 위해 모른 척 한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아무도 모른다>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2004년 제5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작으로 올랐지만 상은 타지 못했고 대신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4세 무명배우인 ‘야기라 유야에(아키라 역)’가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해서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영화다.

영화 <어느 가족>의 원 제목은 ‘좀도둑 가족(Shoplifters, 万引き家族)’이다. 원 제목이 더 와 닿는다.

연금에 기대어 사는 할머니 집에 5식구가 기생한다. 일용직도 잘린 도둑 어른 남자, 세탁공장에서 잘린 어른 여자, 요상한 업소에서 일하는 가출 청소년, 도둑 남자에게 도둑질을 전수받아 작업에 나서는 어린 소년, 그리고 학대가정에서 허락 없이 데려온 더 어린 소녀. 이렇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6인이 모여 피보다 진한 가족애를 갈망하며 산다. 그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그들은 할머니를 집안 뜰에 묻는다. 장례 치를 돈도 없고, 할머니에게 지급되는 노령연금이 필요해서다.

소년은 소녀까지 도둑질에 동원되는 것이 못내 괴롭다. 그러다 사고를 친다. 그 사고로 없는 것 같지만 실제 존재하는 5인의 삶이 드러난다. 5인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삶으로 들어간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친부모에게 돌아가기도 하고, 위탁 가정에 들어가기도 한다. 피로 묶이지 않은 파렴치한 가족은 그렇게 쉽게 무너진다. 그들은 헤어진 뒤에야 서로 그리워하고 있음을 그들이 끈끈한 애정으로 묶인 진짜 가족이었음을 깨닫는다.

'고레에다' 감독은 "전통적인 가족관 때문에 영화 속 가족을 가족이라 여기지 않는 그 편견을 깨고 싶었다. 피를 나눈 가족들에게 버려진 사람들이, 피를 나누지 않은 가족들을 통해 치유 받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배우의 빼어난 연기력 덕에 금방 빠져들게 된다. 할머니로 나온 ‘키키 키린’, 아빠로 나온 ‘릴리 프랭키’, 엄마로 나온 ‘안도 사쿠라’, 그리고 할머니 손녀로 나온 ‘마츠오카 마유’의 연기는 과장도, 허식도, 모자람도 없이 평범하다. 두 아역 배우인 죠 카이리(소년)와 사사키 미유(소녀)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아역 배우인 경우 줄거리만 알려주고 대본 없이 연기하도록 하면서 기다린다고 한다. 마치 다큐를 찍는 것처럼... 영화 <아무도 모른다>도 그런 식으로 찍었다고 한다. 그래 그런지 두 영화 다 아이들의 연기가 어색함이 없이 굉장히 자연스럽다.

같이 영화를 본 동생이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 뭐냐고 물었다. ‘안도 사쿠라’가 경찰에게 취조받는 장면이다. 경찰은 ‘안도 사쿠라’가 연기한 '노부요 시바타'에게 “아기를 낳을 수 없어서 아이를 유괴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묻는다. 그녀는 그렇다, 아니다 말을 하지 않는다. 무슨 말로 자신의 심경을 설명할 것인가?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칠 뿐이다. 그녀가 말없이 외치는 소리가 들인다. ‘버린 걸 주워온 것뿐이라고.. 사회가 버린 걸.. 부모가 버린 걸... 주워서 사랑한 것뿐이라고...’

일본 사회는 고상하고, 안정되고,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일부 일본인들에게 ‘고레에다’ 감독은 아주 못마땅한 존재다. 일본에 있지도 않은 치부를 드러낸다고 비난한다. 특히 아베는 ‘고레에다’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축하는 물론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작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새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소개했고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했다. 한 신문사와 축하 인터뷰에서 그는 뜻밖의 발언을 했다. “일본에서 정부의 정치적 압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방송은 이미 정부권력에 조종당해 원래의 기능을 잃고 있다. 영화 역시 제작 보조금 정책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영화가 제작되기 어렵게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럴수록 우리 영화의 독립을 위해 맞서려 한다. 영화를 만들기 힘들어진다 해도 싸울 것이다.” 그의 팬으로 열렬히 응원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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