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詩, '바람 불어 아픈 날 - 벽제 가는 길' 을 읽다

- 섭에게, 잘 지내는지 김해인 주주통신원l승인2020.03.13l수정2020.03.1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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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에게

최근 읽은 시가 마음에 남아 네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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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불어 아픈 날 - 벽제 가는 길'
- 이승희 - 

온몸이 뭉툭한 바위가 있다
수억년 불길에도 살아남았지만
그 불의 내력에 들지 못한 삶은
오로지 깎이고 깨지면서만

살아야 하는 생이 되었다

날 선 칼에는 미동도 않더니
제 밑을 파고든 여린 풀들에게는
제 몸을 기울여
순순히 자리를 내주는
코 뭉툭한 바위

누님 만나러 벽제 가는 길에
바위에 앉았다
바위 속에서 쓰아악 대숲의
바람이 불기도 하는 것이
수천년 수도의 공력이 절정이다

바위에 앉아서 보면,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얼마나 안쓰러운가,
또 얼마나 늠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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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위에 비유한, 어쩌면 식상한 느낌의 이 시에서 마음을 끈 것은 '낯선 칼에는 미동도 않더니 제 밑을 파고든 여린 풀들에게는 제 몸을 기울여 순순히 자리를 내주는' 구절이었다.

풀이라고 어찌 여리기만 할까, 그저 바위에 비해 그렇다는 것뿐이겠지. 그렇더라도 바위는 거대한 기득권이며, 풀들은 그 굳어버려 '지네끼리' 먹고 사는 사회에 어깨를 들이밀려는 약한 것들이다. - 언젠가는 풀들이 바위를 덮어 그 뿌리를 틈새에 내려 바위를 먹어치워낼까.

바위와 풀의 보이지 않는 싸움, 뭇 생명을 소유물인양 다루어왔던 인간의 모습은 코로나19를 통해 도전받는다. 코로나20, 혹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될 여러 바이러스의 시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는 지금이다.

그러니 일상을 벗어난 고통 속에서 다시 우리의 이러한 일상은 지속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지나치게 인간중심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가치를 실현되어야 할 합당한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더라.

너는 어떠한지, 내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여자 친구가 생겼고, 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뵌 지 오래되었고, 혼자에 지친 아버지는 작은 집을 구해 이사하신다 한다. 그래 내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일상의 흐름은 다소 방향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흘러간다. 한동안은 그러리라 믿는다.

그 속에서 너와 나도 변하지 않았으면, 아니 변화 없는 중에서도 변화를 일궈냈으면 한다.

잘 지내라.

         2020. 3월, 활짝 핀 목련꽃들의 이어짐을 우연히 본 날에 해인이가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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