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에서 강연했던 프리다이버 ‘기욤 네리’의 영상을 보았다. ‘프리다이빙’은 스쿠버다이빙과 달리 호흡을 도와주는 장비 없이 맨 몸으로 물속에 헤엄쳐 들어가 깊은 물속 한 지점에 도달한 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스포츠이다.

이 이야기만 들으면 기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가학적 스포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기욤 네리는 프리다이빙을 의심의 여지없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기록인 123m 프리다이빙을 수면을 떠나기 전 마지막 호흡과 다시 돌아와 들이쉬는 새 호흡 사이의 여행이라고 이야기 한다. 헤엄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몸에 가해지는 압력과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 목표지점에 도달해 갈 때의 편안함과 고요함 그리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할 때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 한다.

깊은 물 속 공간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리고 침묵의 공간이다. 이 고요함은 기욤 네리에게 자신이 거대한 우주와 같은 깊은 바다 속에 있을 때 얼마나 자그마한 존재인지 깨닫게 한다. 거대한 검은 캔버스 안에 부유하는 창백하고 자그마한 먼지와 같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나는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욕조에 물을 가득 담고 머리가 푹 잠길 때까지 들어가 숨을 참곤 한다. 물속에 누워 있으면 나의 맥박 소리가 들린다. '둣 —— 둣 —— 둣 -—- 둣'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머릿속을 떠다니던 잡다한 생각들이 다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 고요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허락된 공간인 지상에서 찾고 싶었다.

여행 중 잠시 마음을 비우고 길을 걷다 보면 나를 평온하게 해주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춤을 추는 듯한 숲,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밤바다,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구름과 하늘.. 그리고 고요함. 그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거대한 바위가 나무와 흙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저 바위가 겪어왔을 시간의 무게와 공간의 깊이가 느껴진다.

주변 바위들이 깨져 나가고 그 깨진 조각이 다시 부서지고, 그 안에서 나무가 싹을 틔우고, 또 다시 거름이 되는 과정들... 그 기나긴 시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바위와 그림자, 우거진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나.... 그런 거대한 자연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강렬하면서도 작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하기에 태양은 뜨고 지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일상에 집중하여 살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관점은 ‘나’ 그리고 ‘나 이외의 것’으로 단순하게 나뉜다. 지금 당장 나와 관련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한정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목표로 정했던 일을 하나씩 이루어 내고 종종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지구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바다가 일궈내는 파도, 지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 태양이 사라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다채로운 하늘의 색감은 마음의 평온과 함께 내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이 ‘겸허함’은 ‘나’의 관점에서 가지고 있던 고민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도 깨닫게 해 준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염하경 주주통신원  duagkru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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