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1일 우크라이나에 있을 때 쓴 시


  쥐구멍에 해 뜬 날의 소묘

 

산에도 들에도 해가 떴습니다.
어제처럼 그 전날처럼 둥근 해가 떴습니다.

밝은 거리를 비추던 해가 어느 날에는 쥐구멍을 비췄습니다. 밝은 거리를 비추던 해가 마지막 남은 쥐를 잡으려고 비추는 줄 모르는 쥐새끼 한 마리가 앞장섰습니다. 드디어 우리들 세상이 왔어~!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라!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넋 나간 사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쥐떼로 변해갔습니다. 삽시간의 일이었습니다. 

놀란 새떼들이 도망치듯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습니다. 생전 초면의 쥐떼들이 득시글거리는 낯선 풍경에 놀란 때문입니다. 쥐들이 채워주겠다는 곳간이 사람의 것이 될 줄 알았던 사람들은 후회했습니다. 달밤에도 쥐떼들은 온통 쥐들이 사는 세상이 왔다면서 왁자지껄 경사난 패거리로 이 곳 저 곳 기웃대었습니다.

산에도 들에도 뜬 해를, 산에도 들에도 뜬 달을, 이제 사람들은 산도, 들도 쥐떼들에게 다 넘겨주어야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생전 초면인 광경에 사람들도 놀란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쥐떼들이 채운 곳간에 사람을 살육하는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옛날을 생각했습니다. 머뭇거렸습니다. 망상에서 벗어난 것처럼 기억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쥐떼보다 무섭게 사람들을 억눌렀던 살쾡이와 이리떼의 무리들에게도 물러서지 않고 진실만을 무기로 싸워 이겼던 경험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쥐떼들을 잡을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햇살처럼 밝은 눈을 하고 쥐떼들을 노려보았습니다. 잠시 놓쳐버린 해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의 눈을 갖고 바라보는 일이 쥐를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각성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진실의 눈은 밝은 햇살처럼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그때 쥐들은 스스로 아귀처럼 다툼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웃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격려하는 힘으로 웃습니다. 그렇게 승리를 믿습니다. 사람들은 잠시 커다란 아픔에 몸져누운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곳간의 자랑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쥐떼들이 자랑 삼았던 곳간에서는 이제 그들끼리 아귀다툼만 남았습니다. 5년의 약속은 2년도 못가 악다구니로 바뀌더니 3년째 들어서는 쥐들끼리 쥐들의 살점을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일에 진실보다 더한 힘은 없다는 사실을 간절히 믿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오래전 그때처럼 사람들끼리 아픔을 이겨내던 그때를 생각해내면서, 웃음을 알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곳간에 채운 것들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던 쥐들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쥐구멍에 해 뜬 날, 2010년 흰 호랑이가 포효를 시작하면서 쥐떼들이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일이 만만하게 넘어갈 일들은 없습니다. 쥐떼들처럼 어물쩍 만만하게 넘어가는 사람의 일은 없습니다. 쥐떼들은 백날가도 알지 못할 진실입니다.
  
*추신 : 고맙소. 안하무인 정권의 하수인이 된 문화예술위원들, 그대들 있어 내가 더욱 사람임을 알겠소. 무기력한 글쟁이로 못난 글이나 쓰며 사는 날들이지만, 그대들이 있어 내가 더욱 사람임을 절감하니, 그대들이 고맙소. 오늘은 그대들을 빌어 그대들이 받드는 쥐떼들에게 한번 관심을 보였소. 사람은 그래도 사람임을 절감할 때가 행복한 듯하오.

<편집자 주> 김형효 시인은 1997년 김규동 시인 추천 시집 <사람의 사막에서>로 문단에 나왔다  <사막에서 사랑을> 외 3권의 시집을 냈다. 산문집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 한·러 번역시집<어느 겨울밤 이야기>, 2011년 네팔어, 한국어, 영어로 네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무나 마단의 하늘(네팔 옥스포드 국제출판사)>외 2권의 동화도 출간했다. 네팔어 시집 <하늘에 있는 바다의 노래(뿌디뿌란 출판사>도 출간했으며 현재 한국작가회의, 민족작가연합 회원이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형효 주주통신원  Kimhj00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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