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을 보고, 혁명이냐? 건축이냐?

조재성 주주통신원l승인2020.03.25l수정2020.03.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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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 Revolution? or Architecture?*)

영화 <기생충>에는 누구나 살아보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사각형 모양의 청결하며, 모서리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마무리 된 모던한 저택이 등장한다.

저택의 외벽 면은 비단결처럼 고운 콘크리트로 마감되었으며, 고급 목재로 마루와 천장이 이루어졌다. 부엌에는 유도식 전열판과 온도를 조절하는 와인 저장고가 설치되어 있고, 고가의 그라나이트로 덮은 아일랜드 식탁이 있다. 거기에 더해 출입문 근처에는 대나무 울타리로 둘러 싼 우아한 내부 정원과 하늘을 향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상류층 주택의 현관 출입구를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의 시작은 기택(송강호 분)의 반지하에서 시작한다. 영화 속의 반지하는 서울의 어느 도시재생지구의 한 동네를 연상시킨다. 4단으로 나누어진 더러운 창문 앞에 널어놓은 양말들, 도로면과 같은 높이의 창문을 통해 거리가 내다보이고, 어수선하게 넘어질 듯이 벽에 높이 쌓여있는 피자상자들 그리고 전기선이 천장과 벽을 뚫고 이어지며, 2단으로 나뉜 상단에 목욕욕조가 아닌 용변을 보는 것이 공개된 변기대가 설치되어 있는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누추한 서울의 반지하 주택의 모습이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은 그가 제작한 일련의 영화 <플란더스의 개>, <괴물>, <마더>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은밀하게 숨겨진 버려진 공간이 있음을 드러냈다. 이번 <기생충>에서도 반지하 주택을 통해 숨겨진 공간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노출시켰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의 절박성을 호소해 왔다.

모두가 박사장이 살고 있는 저택과 같은 고급 주택에 살수는 없다. 그러나 기택이 살고 있는 반지하 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시민이 거주하는 도시건축은 사회의 불평등과는 상관없는 심미적이고, 위생적인 대상에 불과한가?

미국의 아카데미는 박사장 가족이 거주하는 ‘미니멀리즘’- 부족해도 충분하다, less is more- 스타일의 호화주택과 서울의 반지하 건축을 주요 무대로 하는 ‘기생충’에 오스카상을 4개씩이나 수여했다. 왜 일까.

영화에 등장하는 고급 상류층을 위한 주택은 부와 고상함을 과시하기 위해 가구에서 목욕 욕조에 이르는 모든 상징물들을 ‘미니멀리즘’스타일로 배치했다. ‘미니멀리즘’은 모더니즘 건축을 개척했던 ‘미스 반 데로우’의 건축철학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부족함은 어떤 열망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단순성의 미학은 있는 그대로를 의미하지 않고, 지속가능성이 불가능함을 숨기는 속성이 있다. 박사장 저택이 갖고 있는 단순성은 지하실의 불안한 비밀을 숨기고 있다.

박사장 가족은 그림 같은 정원이 딸린 저택에 살고 있지만, 기택이 살고 있는 반지하 주택은 최소한의 채광이나 주거기준도 갖추지 몼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에서 반지하 주택의 수가 전체 주택의 6%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기택이 살고 있는 반지하 주택의 창문으로는 소독차량의 연기와 거리의 먼지, 홍수 때는 빗물이 들어오지만, 박사장 주택은 널찍하게 잘 손질된 정원을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림 같은 시원한 창문을 갖고 있다.

부유한 박사장 가족과 피자 상자를 접는 가내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기택 가족의 하늘과 땅처럼 차이 나는 삶이 대립하는 계급적 긴장을 영화는 도시주택의 대비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택의 가족이 박사장의 호화로운 저택으로 벌레처럼 기어들어가 무슨 일 이라도 벌일 음모를 꾸민다 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의 사회적 격차는 화해할 수 없는 정도이니까. 그러나 홍수 때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한 밤중에 내려오는 장면은 기택 가족의 열망이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시사한다. 21세기에 혁명은 불가능해졌는가?

건축가이며 도시계획가인 ‘르 꼬르뷔제’는 20세기 서구 각국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건축을 할 것이냐? 혁명을 할 것이냐?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도시재생을 전담하고 있는 도시계획계는 ‘르 꼬르뷔제’가 100년 전에 제기한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21세기의 서구 선진국 수준의 도시주거환경, 아시아의 성공적인 도시발전 모델국가로 대접받을 수 없을 것이다.

도시건축이 사회적 불평등에 깊이 개입해 있으며, 인간의 주거권이 얼마나 중요한 보편적 가치인지를‘기생충’만큼 잘 보여주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르 꼬르뷔제저 “Toward a New Architecture” 중에 나오는 ‘Architecture? or Revolution?’을 패러디한 제목이다.

**) 이글은 도시정보(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지 2020년3월호에 게재되었음.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편집자주] 조재성주주통신원은 현재 서울시립대 겸임교수와 원광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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