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닮아 더 예쁜 우리 강이

▲ 태어난 지 109일째 강이 모습

우리 강이는 지난해 12월 24일 - 예수님이 태어나기 하루 전날 - 19시 28분에 태어났다.

언감생심, 처녀회임으로 시작하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견줄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랴.

손주를 위해 촛불을 밝혔다.

그리고 기도했다.

너는 제발 예수님같은 삶은 꿈도 꾸지 말고

그저 니 한몸 맑고 밝고 향기롭게 살다 가라고.

 

그런데 사돈어른도 참

외손주 넷 볼 때까지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하더니

친손주가 그리도 좋으신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그 이튿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 엄동설한에 사부인 대동하고

그 길이 어디라고 예까지 오셨다.

 

장동리 당신 집에서 10여 분 걸어 나와

24-4 버스 타고 이천역, 판교역, 양재역, 백석역 빙빙 돌아 일산 그레이스병원까지

대여섯 번을 갈아타고 꼬박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단숨에 오시더니 눈인사도 건성건성 숨도 고르질 않고 신생아실 앞에서 드리워진 커튼만 바라본다.

 

그 큰 몸집이

까치발 딛고 쫑긋쫑긋

좁은 틈새 비집고

창문 너머 간호사가 안고 있는 손주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싱글벙글 도톰한 함지박입 다물지를 못한다.

 

옆에서 쫑쫑이며 곁눈질하다가 한 마디 아니할 수 없다.

“아무래도 우리 강이는 친가를 많이 택했는갑소.

눈 크고 앞천장 훤한 것이 영락없는 할아부지고,

길쭉한 입꼬리와 뚜렷한 입술 선은 사부인을 빼닮았응께.”

 

인사치레로 푸짐하게 보태서 한 말씀 했는데

사돈댁 겸양은 마실을 갔나

어렵게 자리한 조선초가한끼에서까지

사부인은 육전 한 점 드시다 말고 상글방글

사돈어른은 탕탕이 한 젓갈 드시다 말고 싱글벙글

이리 말해도 하하하 저리 말해도 허허허

무슨 놈의 육전은 이리 짐짐하고 천방지축 탕탕이는 그날따라 왜 그리 흉측한지 몰랐다.

 

사돈 내외 가신 뒤에

눈매 입매 코매 이마

하나하나 뜯어본들

누가 봐도 친탁이라

어리버리 절레절레

새들새들 티가 났나

빤히 보다 혀를 차며

마노라님 한 말씀 한다.

 

“기다려 봐요.

요놈이 글쎄 머잖아

지 어미보다 당신을 더 좋아할걸.

지 어미 어렸을 때보다 아장바장 당신 더 쫓아다닐걸.

그 때가서 귀먹은 푸념일랑 하지 말고 외탁 친탁 가리지 마요.

제발 익은 밥 먹고 선소리 하지 말고 애나 잘 봐요.

그래도 귀는 당신을 많이 닮았어요.”

 

없는 말 한 마디 보탠 걸 내 모를까

귓불인지 귓바퀴인지 귓구멍인지 모르지만

얼마나 짠했으면 찾다찾다 망단했겠지.

중요한 건 그날 이후

강이 얼굴 볼 때마다 사돈 얼굴이 떠올라

그날의 부아가 스멀스멀 다시 도질 때도 있지만

아서라, 그런 걸 따져서 어따쓴다고

강이를 볼 때마다 나는 의도적으로 귀를 더 많이 본다.

▲ 태어난 지 109일째 강이 모습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박춘근 주주통신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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