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기감을 느끼던 3월의 어느 봄날, 나는 갑작스런 무기력증에 사로잡혔다. 이건 절망도 아니었고 희망도 아니었다. 그냥 무중력상태다. 의식의 무중력상태에서 무언가를 잡고 싶어 하는 나의 내면을 엿보게 되었다.

절망이 희망만큼이나 허무하다면 절망 또한 의탁할 것이 못 된다. 오늘 내가 새삼 공허와 허무 속에 잠겨 있는 것은, 머나먼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세월의 무구함이 헛되다고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이어질 영겁의 세월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머나먼 과거 속으로 회귀하려는 영겁과 무한한 미래로 줄달음치는 영겁이 현재를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는데 실패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여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떠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영겁의 두 세월 사이에 갇힌 채 방치되어 있었다. 두 영겁 사이에서 무중력 상태가 되고 말았다.

한때는 두 영겁이 나의 현재를 겁탈하기 위하여 기싸움을 벌이며 충돌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연출하더니 이제 와서 방관자적인 자세를 보이는 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과연 어찌 될 것인가. 과거의 추억과 상념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예측을 뛰어넘지 못한 채 영겁의 회오리 속으로 휩쓸리고 만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찌 되는 것인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나는 정녕 영겁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걸까.

과거는 깊은 구덩이에 갇혀있고 미래는 절벽에 놓여 앞이 캄캄한데, 현재는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나는 너는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무한한 우주여! 고대의 지혜여! 미래의 대천사여!

말해다오. 나의 길을. 미래의 길을. 찬란한 광채에 휩싸일 영원으로 가는 길을.

그리하여 나는 영겁의 두 세월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길을 보여 달라고. 내가 해야 할 바를 알려달라고.

그들은 냉정하고도 비정하게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쥐떼처럼 그렇게 도망치듯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망연자실한 상태로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이 결국 나의 운명이거니. 이렇게 나의 삶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겠거니 싶었다.

나의 고뇌여, 나의 허상이여, 나의 망상들이여, 나의 작은 영광들이여, 나의 무수히 펼쳐질 꿈의 조각들이여! 잘 있거라! 나는 가노라!

이렇게 나의 모든 것들에 작별을 고할 즈음, 한 줄기 빛이 저 멀리서 비치고 있었다. 빛이 온들 무슨 상관이랴. 빛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을. 나는 단지 빛 속에서 두 개의 섬광 같은 꼬리를 봤을 뿐이다. 그 순간 나는 엉겁결에 두 꼬리를 낚아챘다. 이건 본능이었을까, 생존을 위한 마지막 의지였을까.

뭔지 모르지만 그거라도 잡아둬야 할 것 같은 강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내 손아귀에 잡힌 꼬리들은 의외로 감촉이 좋았다. 나는 도망치지 못하게 두 꼬리를 단단히 묶었다. 그러자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나에게 도망치던 두 영겁이 내게 무릎을 꿇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장면이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사태가 발생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두 개의 꼬리는 다름 아닌 두 영겁의 꼬리였다. 내가 영겁의 꼬리를 잡다니. 이건 행운이고 뜻하지 않은 영광이다. 나는 두 영겁에게 큰소리 쳤다.

잘좀 도망가지 그랬어. 좀 더 민첩하게 움직였어야지.

두 영겁이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처분을 바란다는 듯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래 진작 그랬어야지. 이제 너희 둘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내가 너희의 두 꼬리를 서로 묶어둔채로 나의 비밀상자에 영구히 가둬놓을 작정이거든.

내가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빛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쉬웠지만 미련은 없다. 그러고 보니 빛이 떠나면서 내 뺨에 살짝 키스를 하고 떠났다. 키스의 여운이 오래도록 두고두고 남을 것 같다. 올 봄이 다 가도록 그렇게.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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