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019년을 회고할 때 나에게 가장 힘겹고도 보람찬 일은 전라남도교육청에서 운영한 '전남통일희망열차학교'이다. 2018년 늦가을에 태스크포스로 기획단계부터 참가하기 시작하여 2019년에는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역사교사 출신이자 전교조 위원장 출신의 진보교육감(장석웅)과 평소에 통일교육에 소신을 뚜렷이 갖고 있었던 장학사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학생 80명을 데리고 교사 20명이 6차례의 1박 2일 캠프와 16박 17일의 대장정을 해내는 프로젝트는 교육감의 결단이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상설 유허비 앞에서 설명

'전남통일희망열차학교'라고 긴 이름을 붙인 이유는 열차를 타고 북녘 땅을 관통하여 만주와 연해주를 다녀오거나, 상징적으로 북녘의 어느 한 지점이라도 다녀오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와 만주와 연해주로 가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가슴 설레는 기획인가? 제자들에게 만주와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통일을 열망하게 하려는 기획이 말이다. 이러한 원대한 기획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북한 인사들과 접촉하기 위하여 하얼빈을 학생 13명과 교사 6명이 다녀오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10월 26일을 기해 하얼빈에서 남북공동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가 하얼빈에서 개최하는데 이 행사에 북한에서도 온다는 말을 듣고 전라남도 교육청에서도 전문직 몇 분이 가고 교사와 학생이 그 행사에도 참여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 방문은 남북 정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통일희망열차학교 내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9년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통일희망열차학교 활동이 시작되었는데 일반 학교처럼 교장, 교감, 교무부장, 학생부장, 담임교사, 보건교사 등을 뽑고 교사들은 방학기간을 이용해 5일 동안의 강도 높은 직무연수를 받았다. 나는 연수생이면서도 ‘통일캠프 운영의 실제’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는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3월에 학생 선발을 하였다. 그 선발과정도 쉽지 않았던 것이 학생들이 낸 각종 서류를 검토하고 심층 면접하고, 체력검사까지 하는 과정을 거쳐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획한 이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자못 인기가 있어서 경쟁률이 2대1이 넘었고 선발에서 제외된 학생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올리기까지 하였다.

이제 출범 준비를 마치고 입학식까지 성대하게 치렀으며 학생들에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열망을 불어 넣어줄 사전 캠프가 3차례 있었다. 그 캠프에 나는 또 강사로서 통일의 필요성을 강연하기도 하였고 탈북자 중에서 통일학 박사 1호인 교수를 불러서 무대 위에서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북한의 실상에 대해 묻고 답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학생과 교사들은 금요일에 시작하여 토요일에 끝나는 캠프를 3차례 하였고, 대륙으로 대장정을 떠나기 전에는 2박 3일 동안의 캠프를 한 차례 더 진행했다. 학생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신 독립군가’에 맞춰서 율동을 하는 것과 각종 예능활동을 하는 것이었고, 친구들끼리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치고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무려 16박 17일의 대장정에 나섰다. 앞 뒤로 하루씩 DMZ와 인천에서 머무는 기간을 제외하고 14박 15일간을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기행하였다.

먼저 7월 25일 하얼빈에 도착하여 안중근 의사를 주제로 한 활동에 들어갔는데 안의사가 의거를 결심하고 산책한 청초당에 갔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안중근 의사의 유언시를 읽었고, 나는 이를 들으면서 의거 전에 만감이 구름일 듯이 일어났을 그의 심정을 생각해보았다. 한순간 마음이 한없이 애잔해지면서도 장엄한 사내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날 저녁에는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기리는 활동으로 대학교수의 강연이 예정되었는데 그 교수님에게 개인 사정이 생겨 긴급히 나와 음악선생이 무대에 올랐다. 안중근의 정신에 대해 학생들과 문답을 하면서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거기서 어떤 학생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이토를 저격한 의거와 모순되지 않느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하였다. 내 대답은 히틀러가 광기를 부릴 때 본 회퍼 목사가 암살을 모의하면서 ‘미친 운전자를 끌어내리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고 했다는 말을 인용하였다. 그렇듯이 이토가 동양의 평화를 해치니까 안의사의 의거는 평화론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았으면 내가 서운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또한 기억에 남는 질문은 ‘안중근이 주장한 동양평화론이 통일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반도는 주변의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우리 민족이 앞장서서 동양평화의 중심지(허브)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독일이 유럽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유럽연합(EU)를 만드는데 앞장서서 주변 국가들이 의심을 풀고 통일을 허용해줘서 통일이 가능했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답변하였다. 독일은 전쟁 범죄 국가이고 우리는 그렇지 않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어느 세력에 편입된다고 하는 것은 주변 강대국들이 방해하기 때문에 통일이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26일에는 ‘마루타’(통나무인간)로 유명한 731부대 유적지에 가서 일제가 벌인 생체실험의 만행 현장을 답사하였다. 학생들은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그 흉측함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이 오는 시설인데도 한국어로 된 서비스를 하지 않고 중국어로만 설명이 되어있어서 학생들이 이해하기 곤란한 점이 무척 아쉬웠다.

오후에는 하얼빈역으로 가서 안 의사의 의거 장소와 기념관을 보았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 플랫폼에는 세모와 네모로 그 위치를 표시해두어 더욱 그날의 의거에 대해 현장감 있는 감회를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역 건물 한 켠에 마련된 기념관이 조금 비좁아서 아쉬웠지만 같이 항일운동을 했던 중국이 안중근을 배려해서 이런 공간이라도 마련해준 것은 고마웠다. 그곳에서 경상북도 교육청에서 온 교사와 학생과 만나 이곳은 많은 교육청에서 자체 프로그램을 갖고 다녀가는 곳이라는 것을 실감하였고, 역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도 찍었다.

27일에는 하얼빈역에서 중국의 KTX라고 할 수 있는 고속열차를 타고 932km의 대련까지 4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착하였다. 우리나라 남북의 길이가 약 1,000km이니 이 거리를 한 나절에 주파한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을 보면서 대륙에 온 것을 실감하였다. 이 고속철 안에서도 학생들이 의미 없이 보내지 않도록 토론활동 등을 하도록 하였다. 오후에는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한 관동법원에 가서 ‘누가 죄인인가’라는 제목으로 모의재판을 하였다. 그 모의재판은 가기 전부터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아 준비했는데 그 장면이 떠오를 때는 지금도 가슴이 떨릴 정도로 감동이 밀려온다.

▲ 안중근 의사가 재판받은 대련의 관동법정에서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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