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머니가 되고 싶다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20.04.24l수정2020.08.1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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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근 선생님께서 손자 이야기를 올려주셨다. 아기 사진을 보면서 “와... 좋겠다.” 했다.

언제부턴가 길에서 어린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어오면 그냥 지나치게 되지 않는다. “아오, 이뻐라.”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귀여운 얼굴도 쓰다듬고 싶어진다. 요새 엄마들은 아이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서 손을 내밀 꿈도 꾸지 않지만... 지난해 시카고 여행에서 박물관에 갔을 때 할머니가 손주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나도 손주가 있으면... 잘 데리고 다녀줄 텐데..” 생각했다.

5년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황혼육아'라는 그럴듯한 말에 속아 늙어 손주 봐주면 골병든다고 절대 하지 말라고 했고, 나도 맞다고 동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몇 년 전부터는 손주가 생기길 기다리면서, 아이들이 원하면 적극 돌봐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초짜 엄마로 둘을 키워봤으니 경험 있는 할머니로 더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왜 그렇게 할머니가 되고 싶을까? 혹시 할머니가 되고 싶은 것이 유전적 본능은 아닐까? 그러다 2018년 <한겨레>기사를 보고는 ‘아하..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쳤다.

사람과 범고래는 왜 중년에 폐경을 할까?
http://www.hani.co.kr/arti/animalpeople/ecology_evolution/855387.html

이 기사에서는 ‘폐경’ 출현이유를 설명하면서 여러 가설을 제시한다. 첫째로 자신의 번식능력을 포기하는 대신 자식이나 손주를 도와 결과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려 이득을 얻는다는 것으로 1957년 나온 ‘어머니 가설’과 1988년 나온 ‘할머니 가설’이 그것이다.

‘어머니 가설’은 자신의 생식을 중단하면 노산의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이미 낳은 자식을 더 잘 돌볼 수 있어 적응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고, ‘할머니 가설’은 나이 든 여성은 출산을 포기하고 젖을 뗀 손주를 돕는 편이 진화적으로 이득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 주장은 2008년 나온 학설로 ‘생식 갈등 가설’이다. 생식을 둘러싼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의 갈등이 나이 든 세대의 생식 포기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딸이 출산을 시작할 즈음 어머니는 출산이 멎는다는 점에서 지지를 얻는다.

모든 엄마는 초짜다. 아무리 육아서적을 탐독한 엄마라 해도 엄마들은 아이가 크고 난 후 많은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욕심 때문이다.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실수다. 이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돌이켜보면 많은 실수를 했다. 다시 아이를 기른다면 두 번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숙련된 양육기술을 발휘해서 더 자연스럽게 잘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 가설’에서 주장하는 진화적 이점을 나의 경우에 이입해보면 ‘더 나은 양육기술로 더 나은 후손을 보존하려는 경향’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1/4 유전자라고 해도...

하지만 나에게 할머니가 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 수도 있다. 큰 아이 나이가 서른셋이다. 아직 미혼이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한다. 내가 큰 아이는 스물아홉에 낳았고 작은 아이는 서른셋에 낳았으니 올해 결혼해서 내년에 아이를 낳는다 해도 나에 비하면 한참 늦다.

큰 아이에게 “아이를 낳으려면 빨리 결혼해야하는데... 자꾸 늦어져서 어쩌지?”라고 하면 “엄마, 결혼은 할 건데. 아이가 꼭 있어야해?”라고 묻는다. 나는 “결혼했으면 아이가 있어야 좋지. 너 같이 재미있는 아이가 나올 텐데... 길러보고 싶지 않아?”라고 하면 아이는 “엄마 지구에 인구가 넘 많아. 난 지구를 위해서 아이를 안 낳을 수도 있어.” 그런다.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힘들 땐 엄마가 도와줄 텐데...” 하면, “만약 늦게 결혼해도 아이가 생기면 낳는 거고, 아이를 가질 수 없으면 엄마랑 여기저기 세상 구경하면서 살면 되지 뭐.” 그런다.

둘째는 더 하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거다. 결혼 안하고 부모님 모시고 살 거란다. 너무나 고마운 말이지만 나는 그래도 아들이 결혼해서 손주를 턱 하니 안겨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어려서는 “아내와 자식을 어떻게 먹여 살려요? 아빠 보니까 너무 힘든 것 같아. 돈도 많이 들고.. ”하더니 요새는 “엄마, 나를 봐요.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길렀나. 나 같은 아이 나오면 키우기 너무나 힘들 것 같아서 결혼 안하고 아기도 안 낳을 거여요.” 한다. 조금은 바뀌었다.

나는 아직도 전통식을 붙잡고 살지만 사실 세상은 바뀌었다. 얼마 전에는 <한겨레>서 이런 기사를 보았다.

결혼하지 않아도, 혈연이 아니어도 ‘함께 사는 가족’이 된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36615.html

아이 키우며 사는 동성 파트너, 결혼을 원치 않는 동거 커플들, 심지어 한부모 가족은 독일 전체 가구의 19%란다. 독일의 경우지만, 가족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나라도 머잖아 올 일이다.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독일 한부모 가족 비율은 크게 늘어 전체 가구의 19%다. 베를린의 프리드리히스하인공원에서 한 아버지가 아이를 돌보는 모습. 채혜원 제공(사진출처 : 2020년 4월 11일자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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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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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통불통 2020-04-24 12:32:41

    삶은 소통의 산물
    소통은 삶의 윤활유
    살맛나는 세상을 원하면 소통하라?
    소통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공간인가 시간인가 환경인가?
    현대인은 디지털로 대표되는 첨단과학기술에 종속되었다.
    이는 소통을 다양하게 했지만 오히려 멀리하지는 않았는가?
    이제는 그만, 개발과 발전을!
    편리함과 안락함을 경계하자.
    더 이상 첨단과학기술을 추구하지 말자.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끝을 당기지 않을까?
    할아버지할머니 - 아버지어머니 - 딸아들(손주손녀)
    이 자연스런 승계承繼가 어색하고 끊어지려는 것은
    현대사회의 디지털소통이 원인되지는 않았을까?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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