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도 펌프장을 활용한 윤동주 문학관의 이모조모

꼼꼼한서울씨의 이번 달의 현장과제는 광복70주년 역사현장 답사라는 주제로 두 곳을 선정하여 실시하게 되었다.

1조는 효장공원의 백범기념관과 임정요인 묘역이 되었고, 2조는 윤동주 문학관에서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과 경고장까지의 구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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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별로 살펴보면 1조는 '효창공원에서 백범김구기념관→김구묘역→삼의사묘역→임정요인 묘역'을 돌아보는 코스로 5월28일부터 31일까지 4일 가운데 편한 요일에 방문하면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참고로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입장마감시간은 오후 5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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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여한 2조는 인왕산 구간으로 '윤동주문학관→한양도성 인왕산구간→딜쿠샤→경교장'을 돌아보는 코스로 인왕산을 오르내리는 조금 힘든 곳이다.

해설사가 배치되고 라이브서울의 촬영팀이 따라오기 때문에 답사 일정이 5월 29일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 단체답사가 이루어진다고 안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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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의 답사를 위해 윤동주 문학관에서 오후 1시 50분에 모이기로 하여 나는 오전 일과를 서둘러 끝냈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4번째 정류장인 자하문고개 '윤동주문학관' 앞에서 내리자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이른 오후 1시 30분이었다.

‘너무 빨리 와서 어쩌나? 그 동안 미리 살펴보기로 하지 뭐!’

혼자 이렇게 정하고 문학관을 향하여 길을 건넜는데, 벌써 문학관 앞에서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복지분과 황인범 팀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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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알아보고 온 터라 이곳이 상수도 가압장이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어찌 보면 좀 어설프고 답답한 건물(?) 아니 시설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았다.

가압장이다 보니 수압에 견딜 수 있도록 벽을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물을 담아놓은 곳이니 위의 뚜껑도 튼튼하게 만들어진 동굴과 같은 건물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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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외양은 건물이 아닌 콘크리트 시설물이기에 겉모양이 참 어설프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네모반듯한 벽면, 아무런 장식이 없는 콘크리트 벽으로 된 모습이 ‘무슨 문학관이 이런 모양이야?’하는 생각부터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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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외부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들어가서 살펴보려니 이곳의 해설사 이명숙님이 카메라를 보고 달려와 “실내에서 촬영이 안 됩니다”하고 알려준다.

물론 이런 곳에서 함부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조금은 불만스러웠다. 시에서 현장답사를 가서 답사문을 작성하라는데 사진도 없이 어찌 하란 말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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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잠시 혼자서 구경을 하고 제1, 3전시실까지 둘러보고 나오니 촬영팀이 도착하고 담당자도 오셨는지 이곳에서 “꼼꼼한서울씨 현장답사팀은 내부에서 사진을 찍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플래시는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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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단 다른 사람들이 도착하면 사진찍기 어려울까 싶어 해설을 듣기 전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남보다 먼저 사진을 찍었두니 해설을 듣는 모습 등만 좀 잡으면 되겠다 싶어져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꼼꼼한서울씨 현장답사팀은 시인의 언덕으로 잠시 올라오시랍니다”라고 안내가 이어졌다.

7, 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우루루 시인의 언덕으로 올라갔더니 가뭄에 스프링쿨러가 작동을 하고 있는 저편에 담당팀장님을 우리를 맞아주었다.

담당자는 이번 답사를 하면서 먹을 물과 간단한 먹거리가 담긴 봉지 등을 나눠졌다.

받은 것들을 모두 정리해 내가 먹기 편하게 다시 담아두고 문학관으로 내려가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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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시는 분이었다.

차분히 들으면 50분 정도 들어야 할 분량이었지만 일행들이 충분한 시간이 없어 결국 다 듣지 못해 아쉬웠다.

미리 일정을 설명하고 해설 시간을 부탁드렸어야 했는데 이 마저도 잘 안된 듯 싶다.

결국 뒷 부분은 통째로 못들었으니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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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시실에서 해설을 듣다 3전시실 영상 시간에 맞추기 위해 잠시 쉬었다.

영상은 시간을 정하여 상영이 되므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돌아와서 잠시 보충 설명을 들었다.

“여기 있는 자료들은 누상동에서 하숙생활을 하던 무렵에 룸메이트인 정병욱에게 맡긴 원본이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졸업기념으로 시집을 출판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원고를 3부 만들어 자신이 한 부를 갖고 다른 한 부는 선생님께 딱 77권만 찍는 한정판으로 출판을 하겠다고 미리 보여드린 것이고 나머지 한부가 지금 남은 것인데 정병욱 친구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 원고를 친구가 자기 고향인 전남 광양의 자기 집에 보관을 하였는데, 부모님들이 들킬까봐, 땅에 묻은 독 속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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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들으니 참으로 아슬아슬하게 전해진 원고구나 싶었다.

윤시인은 일본에서 체포 되어서 43년 1월 3일 죽기까지 친구 강재중에게 편지를 써 보냈는데, 매번 편지와 함께 시 한 편씩을 써서 보냈는데, 그 시만 따로 잘 보관하였다가 나중에 빛을 보게 된 것들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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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시인은 당시 친구에게 '무슨 주사인지 주사만 맞으면 죽을 듯 괴롭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후에 바닷물을 주사하는 생체실험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살아있는 사람의 혈관에 바닷물을 주사해 얼마나 견디는지, 죽어가는 과정을 살피는 악랄한 실험에 윤 시인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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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윤동주 시인의 감옥생활을 표현하기 위해 제 3전시실 영상관은 감옥처럼 철문에 닫힌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상도 콘크리트 벽에 그대로 쏘아주고 있었다.

소리는 쩌렁쩌렁 울리고 영상은 흐릿해 잘 보이지 않는 등 엉망인 영상실로 꾸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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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문학관을 보고 나서 시인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윤동주의 대표시인 서시가 커다란 자연석에 그의 글씨체로 그대로 옮겨져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시설물의 울타리 등에도 시가 씌어 있는데, 그게 시라고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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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최홍욱 편집위원

김선태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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