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89] 대만 사람과 사업하기(堅壘公司-5)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20.04.29l수정2020.05.1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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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이나 중국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만만디(慢慢的, 천천히)’이고, 일상생활에서는 ‘꽌시(關係,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업하겠다며 중국으로 들어가는 저에게 대만 친구가 한 첫 번째 이야기가, ‘중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조언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살려면 ‘꽌시’ 즉 인간관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업의 기회와 성패는 사람이 만든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을 얻으면 돈도, 명예도, 권력도 얻는다는 것이 5천 년 역사의 핵심이 아닌가요? 하지만 대부분은 눈앞의 돈과 권력을 쫓다가 하루살이처럼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절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로 송나라 때 지우 선사의 법어집 허당록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축록자 불견산, 확금자 불견인(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사슴만 좇는 자는 산을 못 보고, 돈만 움켜쥐는 자는 사람을 못 본다. 즉 돈만 좇다보면 사람을 잃게 된다는 뜻이지요.

제가 쓰는 ‘대만 사람과 사업하기’는 돈을 어떻게 버는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만 사람과 만난 이야기가 주입니다.

堅壘公司 사장인 伍 先生 가족 이야기입니다. 사장 우웨이졘(伍惟堅)의 아버지는 중국의 소주 출신으로 장개석 국민당 정부를 따라 이주한 외성인입니다. 대만은 역사나 시대상황이 한국과 비슷하지요. 아버지가 석탄사업을 했고 伍 先生이 197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으니 부유한 환경이었습니다.

부인은 대만 본토 출신입니다. 부인 말로는 자기가 1년 쫓아다녀서 결혼에 성공했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지금이야 머리도 다 벗겨지고 주름이 많아졌지만 연애할 당시 사진을 보니 멋지고 아름다운 한 쌍이더군요. 대만의 2.28 사건을 기억하는 내성인들은 외성인을 도깨비나 귀신처럼 두려워하였기에 친구나 친척들이 부인 걱정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결혼하고 부모와 함께 살았는데 부인은 시아버지가 엄청 어렵고 무서웠답니다. 임신하여 몸이 힘들어도 시아버지가 잔디 속 잡초를 뽑으면 뜨거운 땡볕에 양산을 받쳐 들고 서 있었다고 합니다. 분가를 하고서도 두 아들을 키우며 매일 아침 따뜻한 밥과 반찬을 만들어 날랐고요.

▲ 결혼 후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본가. 사진 우측에 본체와 별채가 있고, 좌측에 보이는 벽돌 건물은 창고. 한국에서 수입 물량이 늘어나자 창고 뒤편으로 더 큰 창고를 지었다. 담장 너머 나무가 있는 곳도 모두 이 집 소유다. 지금은 잡풀이지만 아버님 살아계실 때는 고운 양잔디였음.

그렇게 무섭던 시아버지가 5~6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재산은 아들이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며느리와 공동명의로 상속하고요. 시아버지가 어려웠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크다고 합니다.

대만에 가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이 친구네 집에서 잡니다. 부인에 대한 기억이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자며 부인이 만든 국수를 내왔지요.

전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고기도 국물이 있고 기름이 둥둥 떠 있으면 싫어합니다. 특히 닭고기는 더 안 좋아하지요. 한 마디로 입이 짧아 한국을 떠나면 고생입니다.

큰 그릇에 닭고기 국수를 가득 담아 내왔는데 닭고기 형태가 이상해서 퍼 올렸더니... 웬 닭대가리...

순간 논산 훈련소 생각이 났습니다. 대기소에서 장정으로 며칠 지내다가 훈련소에 입소하여 첫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팔굽혀 펴기 등 온갖 얼차려를 받고 소대에 배치된 후 첫 내무반 저녁 식사. 기간 병의 무시무시한 협박에 잔뜩 주눅이 들었는데 고기 한 점 없는 내 식판 국물에 벼슬까지 선명한 닭 머리?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흐릿한 조명 아래 저승사자 같은 목소리로, ‘내가 손을 놓을 때까지 숟가락을 들고 있는 놈! 밥풀 한 톨이라도 남아있는 놈! 다 죽는다!’는 협박에 부리나케 음식을 넘기면서도 도저히 닭 머리는 먹을 수가 없어서 통째로 입에 물고 있다가 잔반 처리할 때 뱉었던 이후 또 다시 부딪힌 난관. 결국 몰래 휴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대만에 자주 가다 보니 어떤 때는 한국 친구들과 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도 伍 先生은 굳이 자기 집에서 자라고 하지요.

한 번은 민변과 참여연대 초창기 멤버인 모 변호사 부부와 여행 삼아 대만에 갔다가 들렀습니다. 그 집에서 나비박물관과 불광산 절에 다녀오느라 며칠 있었는데 분위기가 예전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평소 상냥하고 조용한 부인의 어투는 간곳없고 미소도 사라졌습니다. 伍 先生과 마주치기만 하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날 선 언쟁, 거의 부인이 일방적이고 伍 先生은 수세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더군요. 대만 민난위라 저는 알아듣질 못합니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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