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토요일.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몹시 맑다. 미세먼지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그런 날씨다. 그동안 코로나 사태로 집에만 콕 박혀있다 보니 더욱 마음이 들뜬다. 감옥살이 아닌 감옥살이를 한지 2개월. 얼마나 답답한 방콕이었나!

동우회 몇몇 친구들에게 전활 걸었다. "오늘 정오 12시 30분, 합정역 9번 출구 만남의 장소에서 만나!" 젊은 시절에 즐겨 했던 번개팅이다.

정오 12시30분, 우영, 범산, 경산이 나오고, 멀리 전곡에서 탄월이 달려왔다.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여전했다.

먹자골목으로 가서 시래깃국으로 점심을 하고 차에 올라탔다. 차는 망원정(望遠亭)을 끼고 강변로를 따라 가다 어느새 경인가도를 달렸다. "어디로 갈까?" 범산의 물음에 경산이 "을왕리 해수욕장"했다. 을왕리 해수욕장은 경산이 부인과 자주 찾던 추억이 서린 곳이라 했다. 그때 한송이 "무의도!"했다. 무의도는 다리가 놓이기 전에 동우회에서 두 번 찾았던 곳이다. 지금도 그때 그곳에서 먹던 전어구이를 잊을 수 없다. 집을 나간 며느리도 발길을 돌린다는 전어구이. 우영은 한송이 그곳으로 차를 몰자 한 것은 전어 보다 거기에 당시 한송이 좋아했던 그리운 여인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그때 여자를 좋아하는 한송의 모습을 처음 봤어" 우영의 말에 우린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때 범산이 "알았어!"하며 차를 무의도로 몰았다. 한송에 대한 배려다. 허나 주차할 곳이 없어 실랑이 끝에 겨우 차를 대고 소무의도로 넘어가 커피만 마시고 다시 차를 을왕리로 몰았다. 주말인데다가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좀 완화돼서 그런지 해변이 젊은 남녀들로 붐볐다.

해는 어느덧 서산에 기울어 수평선 저 멀리 황금빛 물결을 만들고, 흰 갈매기 떼들은 노을 속에서 훨훨 날았다. 모래사장 위를 쌍쌍이 걷는 젊은 남녀들의 모습은 한 쌍의 아름다운 꽃이었다.

우리는 식당 2층으로 올라가 조개탕을 시켜 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 술잔이 돌자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술에 취하고 또한 낙조에 취했다. 낙조! 이는 분명 낙조가 아니라 '노을의 꽃'이었다. 아! 붉은 노을!

 

合井點心干菜湯, 疾走舞衣鼻血羹

日落西山黃昏時, 乙旺海邊紫霞望

海上白鷗翩翩飛, 沙场袍裳雙雙榮

酬酌微醉歸来興, 老軀此外更何求

 

합정동에서 시래깃국(干菜湯)으로 점심 먹고,
차를 달려 무의도에서 커피 마셨네.
해 서산으로 떨어질 황혼 무렵에,
을왕리 해변가에 가서 노을 바라보았네.
바다 위엔 흰 갈매기 훨훨 날고,
모래 위에 남녀 쌍쌍이 꽃다워라!
잔 주거니 받거니 얼근히 취해 흥겹게 돌아오니,
늙은 몸이 이밖에 무엇을 다시 구하리!
 

주 : 干菜湯은 시래깃국. 鼻血은 코비, 피혈자로 코피(coffee)를 이두화(吏讀化)한 것. 袍裳은 靑袍紅裳으로 젊은 남자와 여자를 말함. 酬酌은 술잔을 주고받는 것. 微醉는 약간 취했다는 뜻으로 얼근히 기분 좋게 취했다는 것.

돌아오는 길에 흥얼흥얼 이렇게 한 수 읊었다. 정말 바쁘고 즐거운 하루였다. 노을은 낙조가 아니라 아름답고 황홀한 하나의 승경(勝景)이다. 늙은 몸이 이밖에 무엇을 다시 구하리오!!! 늙지 말고 향기롭게 잘 익어가자! 저 노을처럼.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통신원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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