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골목길에서 만난 아이들

Ⅰ. 2020년 4월 29일 오전 8시 50분
이대역 5번 출구 나와 한서초등학교 가는 길
시멘트와 벽돌로 칠갑한 어느 머리방 앞길은 거무튀튀한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풀 한 포기 허용하지 않는 메마른 곳이다.
하지만 뽀리뱅이는 용케도 흙의 숨구멍을 찾았다.
사람 손길 닿지 않는 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손톱보다 좁은 땅! 그걸로 충분하다.
꽃줄기 꺾인들 꿈까지 꺾인 건 아닐 거야.
어미가 숨 쉬던 땅에서 어김없이 내년 봄을 피우겠지.
사람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근성으로 또 다시 열 송이 스무 송이 꽃을 피우겠지.

▲ 온몸으로 봄을 노래하는 뽀리뱅이

Ⅱ. 모퉁이 돌아 염산교회 못 미친 곳
주변은 온통 아파트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로가 사유지는 아닐 텐데
공사장 벽에 ‘주차금지’란 안내 표지를 붙여 놓았다.
표지판 하나로 불안했는지 하나를 더 붙였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그 옆에 더 큰 글씨로 써 놓았다.
“차대지마. 주 차 금 지 안보여”
반말로 쓴 게 마음에 걸렸을까?
아니면 주민들의 반감을 사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을까?
한 글자를 더 써 넣었다.
“차대지마요. 주 차 금 지 안보여”
그런다고 차를 대지 못할까?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길 양쪽 모두 주차한 차량이 즐비하다.
‘주차금지’를 강조한 까닭은 결국 각종 건축 폐기물을 버리기 위한 것인가 보다.

▲ 각종 폐기물을 맘대로 버리기 위한 '주차금지'

Ⅲ. 12시 10분경, 한서초등학교 교재원 정비 마치고 나오는 길
하늘은 쾌청하고 마스크를 낀 사람들 위로 새들이 날아다닌다.
참새, 박새, 까치, 직박구리, 그리고…
잘못 보았나?
날아가는 모습이 우체국의 상징처럼 날렵하다.
분명히 제비다. 두 마리다!
내가 서울에서 본 제비는 2004년 봄이다.
송화초등학교 근무할 때 방화동 논에서 본 게 마지막이다.
얼마나 반가운가.
마스크 벗고 잽싸게 쫓아갔다.
거미줄처럼 휘늘어진 전깃줄에 앉았다.
참새들과 숨바꼭질을 하나
텃세부리는 까치의 위세에 기겁했나
앉았다 싶었는데 마음 졸이듯 금세 자리를 뜬다.
사람이 그리웠을까?
길을 잘못 들었을까?
염리동 소금길,
그 옛날 소금배와 소금장수를 추억하기 위함일까?
재개발 공사로 좁고 정겨운 골목길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을까?
하늘의 심부름꾼이라는 제비 아니더냐
코로나 백신이라도 물고 왔나?
지친 몸 의지할 데 찾는 민중을 상징하는 제비!
마땅한 집도 절도 없이
대지의 숨구멍 한 개 허용하지 않는
아파트 공사장까지 찾아온 제비 한 쌍이 우리네 삶과 닮았다.
내일은 또 어느 곳에서 가쁜 숨 몰아쉴까?

▲ 정든 골목, 소금길을 찾은 제비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박춘근 주주통신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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