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위한 첫 걸음, 이야기 들어주는 사회

“개 구충제 펜벤다졸을 먹고 암을 고쳤다.

개 구충제라도 먹고 말기암을 극복해보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개 구충제를 먹겠다.”

외국 유튜브에는 벌써 돌고 돈 이야기라는데 드디어 우리나라도 터졌다. 에스엔에스에 올린 폐암 말기환자인 어느 연예인 글이 암환자들 눈길을 잡아당기고 사람들 호기심을 이끈다. 의사와 과학자들은 바로 반격에 나선다. 과학을 바탕으로 한 근거가 없다, 개한테 쓰이는 구충제일 뿐이지 사람한테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이 있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효과는커녕 아주 심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개가 사람처럼 대접받는 시절이지만, 하필 개한테 듣는 구충제를 사람이 먹나?”라는 지청구도 들린다. 암환자가 개처럼 대접받아서 그런 것 아닐까. 먹장구름 같은 어둠에 갇혀 지내는 암환자와 그 가족들한테 병원과 의사는 언제나 해님 같이 빛나는 존재가 아니다. 의사는 비디오 판독 기사나 사진 판독하는 사람 같다.

피는 괜찮네요.(뭐가 어떻게 괜찮은지?) CT촬영결과는 괜찮습니다.(어디가 얼마만큼 괜찮은 걸까?) 2주 뒤에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왜 2주? 2주면 암세포가 다시 왕성하게 활동하나?) 아직까지 괜찮아요.(조금 지나면 안 좋다는 뜻?) 운동은 어떤 운동이 왜 좋은지?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얼마만큼 먹으면 좋은지? 약물치료와 수술치료는 어떤 차이가 있고 언제 하는지? 아무런 말이 없다. 환자가 또렷하게 물어야 어벌쩡하게 답한다. 구토가 심한데요? (구토억제제 처방해줄게요.) 유방암은 자궁검사도 함께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럼 해보세요.)

‘지난날 어떤 일 때문에, 지금 병세가 어떻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다’는 이야기는 결코 들려주지 않는다. 의사나 환자나 암이란 병을 모르기는 피차일반인 걸까. 병원 가지 않으면 불안하고, 가도 답답하다. 교과서에 적힌 약 처방과 ‘지금은 괜찮은 것 같다’는 한결같은 말만 듣고 온다.

이런 답답이들 의사만 둘레에 수두룩한데 ‘개 구충제로 암을 고쳤다. 경과가 좋아졌다.’는데 암환자들이 몰려들지 않을 까닭이 있을까. 내 몸이 어찌 되었는지, 2~3분 ‘괜찮다’‘두고 보자’는 말로 쫓아내지 말고, 30분만 살뜰하게 일러줘도 개구충제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시열 주주통신원  abuk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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