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난 주초 여수 깨복쟁이 친구를 다시 만났다. 친구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차를 구입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가벼운 사고를 당했나 보다. 처음이라 많은 어려움과 곤란함을 겪었다고 한다. 사고 후 부인에게 운전을 권했으나 극구 사양하여 고민하던 끝에 차를 처분했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면 필자는 운전수가 되고 그는 상전이다. 그가 가자는 대로 가고, 하자는 대로 한다. 지난주에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코로나도 조금 잠잠해졌으니 하루 왔다가라는 것이다. 자신이 쉬는 월/화요일에 오면 좋겠다고 한다. 비릿 내도 맡고 향토음식도 맛보고 향수도 달랠 겸 갔다.

점심을 서대회무침으로 잘 먹고 이순신광장에서 오동도까지 걸었다. 햇빛은 쨍쨍하나 걸을만 했다. 특히 친구와 함께 하니 만사가 형통이었다. 오동도를 한 바퀴 순회하고 하멜기념공원 근처에 있는 찻집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여러 얘기를 하던중 지난 이야기 <언제가 행복하다고?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11>와 연결된 내용이 있어 올린다. 필자는 흥미진진하였다. 우린 바다가 보이는 창측에 앉았는데, 바로 창 아래엔 파도가 출렁거렸고 건너편은 돌산도였다.

필자: (친구를 바라보면서) 자네 부인은 이쁘기도 하고 아름다워. 더구나 검소한 것 같기도 한데, 자네는 정말 행복하겠어.

친구: (바다 쪽 시선을 내게 옮기면서) 마누라 자랑하는 놈을 팔불출이라 하지만 자네 말이 맞아. 우리 집사람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어. 사치라는 것을 모른다고 할까? 아니, 안하는 것이지.

필자: (흥미가 발동하여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어떻게 하는데? 평소에 말이야.

친구: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가벼운 기침을 하면서) 내가 화장도 좀 하고 좋은 옷도 입고 다니라고 했지. 내가 사준다고 하면서 말이야.

필자: (눈을 끔벅이면서) 그렇게 말하니 자네 부인이 뭐라 했는데?

친구: (남의 얘기하듯이 천연덕스럽게) ‘당신은 내(아내)가 바람나면 어찌 하려고 그래요? 그냥 이렇게 다녀도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많단 말이에요?’ 이러잖아.( 그러면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필자: (기가 막혀 고개를 꺄우뚱하면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친구: (미소를 지으면서) 어떻게 하긴 뭐... (잠시 후) 그래도 화장도 좀 하고 좋은 옷도 입고 다니면 좋겠다고 말했지.

필자: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래서? 그 뒤로 어떻게 하던가? 좀 달라졌어?

친구: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참 사람도... 전혀 그렇지 않았어. 그냥 계속 맨 얼굴로 다니는 거야.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어?

필자: (바다 건너를 쳐다보면서) 아~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자네 부인의 내공이 대단해. 상상 속의 여인 같아. 요즘 보통 여성들하고는 차원이 달라. 내가 몰라서 그런가? 맞아~ 이제 생각해 보니까 그때 자네 부인을 봤을 때 빛이 났어.

친구: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랬어? 뭘 그렇게까지. 아무튼 고맙지.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와서 말이야. 내게는 과분하지. 친구가 알듯이 내가 재산이 있어, 학벌이 있어, 키가 커, 잘 생겼어. 안 그래?

필자: (할 말을 잃고, 잠시 후에) 무슨 소리야, 인성이 됐잖아. 사람 됨됨이 말이야. 그게 가장 중요하지. 외형적이고 도식적인 것은 순간뿐이야. 자네 부인은 그것을 보고 자네를 알아 본거지. 아마 유행가 가사에도 있지? 자네는 ‘속이 꽉 찬 남자야’ 난 껍데기뿐이지만...

친구: (손사래를 치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아무튼 고맙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친구: 집사람이 평소 입는 대부분의 옷은 친구나 주변 사람들이 2~3년 입고 실증 난다고 주는 옷들이래. 그래도 그 옷을 입고 나가면 다들 부러운 듯이 쳐다본다고 하네. 언제 샀냐고 들 하면서...

이를 어찌해야 하나. 더 이상의 언급이 불필요하지만. 저 정도의 심성을 지닌 여인이라면 그 내공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내 여성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지만 어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 친구의 말이 사실일까? 고개가 저절로 꺄우뚱거려진다. 그러면서 친구가 또 하는 말 "나는 정말, 우리 집사람하고 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라고 하면서 환히 웃는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친구는 퇴근 시간이 무척 기다려진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오늘 저녁엔 우리 집사람이 무슨 요리를 해서 같이 먹을까가 궁금해서 기다려진다고 한다. 친구의 아내는 퇴근하면서 매일 시장을 다녀오는데, 친구가 좋아하는 나물과 야채를 잊지 않고 사온다고 한다. 부인은 본인이 아니라 친구의 기호에 맞춰 시장을 본다고 한다. 지금 나이가 60대 중후반인데도 말이다. 어이상실. 기가 막힌다. 그러나 어디 그저 되었겠는가? 친구가 그만큼 아내를 위하고 사랑했겠지?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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