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여 명의 봉사단원 모두 발이 묶였다. 코로나 19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어 생활 방역 지침은 예외가 없다. 서울교육인생이모작지원센터는 상근자마저 띄엄띄엄, 3인 이상 모임을 자제한다. 더구나 우리 ‘그린에듀교육지원단’은 낌새만 보여도 격리가 되는 ‘65세 이상 어르신’ 200여 명이다. 말이 좋아 ‘어르신’이지 실로 ‘고위험군’으로 등치된다. 가타부타 시비를 논할수록 추레한 늙은이 취급을 받는다. 하여 우리는 저마다 짚신감발에 사립 쓰고 마스크로 얼굴 가린 채 소리 없이 오늘도 75 개의 학교를 찾아간다.

▲ 아이들을 기다리는 현수막(서울용강초 정문)

낯설다. 40여 년간 드나들던 학교다. 어느 학교를 막론하고 교문이 굳게 잠겨 있다. 철저했다. 사전에 우리의 방문을 알리고 출입 절차를 간략해 달라고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소용없다. 보안관은 우리를 세우더니 방문 목적을 묻는다. 열을 재고 소수점 아래 첫째 자리까지 기록한다.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대조한다. 주민등록번호를 적고 나서야 목걸이 방문증을 건네준다. 등교하는 아이들 네댓 명이 눈에 띈다. 돌봄교실에 오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교문 앞에서 되돌아가는 어머니의 눈길이 애틋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앞만 보고 내달린다. 아이들도 교직원도 보이지 않는 학교! 우리는 그 유배지 속 뒤란에 있는 교재원으로 간다.

▲ 그린에듀교육지원단원들이 교재원을 일구고 파종하는 모습(서울양강초교)

 

허울뿐인 교재원에도 봄은 찾아오고

늦봄 풍신(風神) 시샘에 김칫독 깨진다고 했다.
만상(晩霜)의 폐해를 알지 못한 학교에서는
부지런 떨다가 얼어 죽은 오이 고추 모종이 태반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일손을 놓고 있다.
이랑마다 찢어진 검정 비닐이 나풀거린다. 말라 죽은 고춧대가 비스듬히 박힌 지지대에 묶여 있다. 부러진 옥수숫대는 너절하고 거무튀튀하다. 철망을 타고 오른 수세미 줄기가 다닥다닥 얽혀 있고 찌그러진 곰팡내 풍기는 조롱박 두 개가 대롱거린다. 박주가리는 명자나무를 샅샅이 휘감고 한삼덩굴은 주목나무 꼭대기까지 옭죄고 있다. 하수구 뚜껑에는 갖은 오물이 걸려 있고 담장 밑 움푹 파인 데마다 축축한 낙엽과 쓰레기가 쌓여 있다. 붉은색으로 반코팅한 작업장갑도 군데군데 고랑에 파묻혀 있다. 기역 자 모양의 교사 벽 쪽으로 지붕만 씌운 농기구 보관함이 보인다. 당연히 속이 훤히 드러난다. 들이치는 비바람 탓에 그나마 있던 호미랑 낫이 녹슬고 삭았다. 삽, 괭이, 포장끈, 비닐, 지지대, 호스, 빗자루가 마치 고물상 야적장처럼 어지럽게 엉켜 있다.

 

▲ 교재원 한쪽에 마련한 농기구 보관 창고(서울◯◯초교)

그런다고 봄이 마다하랴.
반기는 이 없다고 봄이 도망가랴.
냄새나고 칙칙해도 봄은 찾아간다.
어쩌면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곳을 먼저 찾는다.
사람이 많은 곳은 잠시 들렀다 갈 뿐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적 없는 뜨락에 오래 머문다.
교재원 구석구석 봄꽃이 피어 있고
이들을 반기는 벌, 나비, 개미, 파리, 꽃등에, 진딧물, 무당벌레, 하루살이, 광대노린재 유충이 무리지어 놀고… 물길 피해 나온 지렁이들까지 꼼지락거린다.

 

잡초와 민초

다음은 지난 4월 20일부터 입때까지 서울의 교정에서 본 봄꽃들이다. 심어 가꾸지 않은, 절로 자란 들풀 가운데 꽃을 피운 아이들만 기록한다.

별꽃•쇠별꽃•봄망초•지칭개•뽀리뱅이•중대가리풀•애기똥풀•꽃받이•꽃마리•서양민들레•선씀바귀•고들빼기•살갈퀴•냉이•꽃다지•벼룩나물•벼룩이자리•쇠뜨기•유럽점나도나물•광대나물•제비꽃•메꽃•괭이밥•개소시랑개비•소리쟁이•질경이•이질풀•개쑥갓•주름잎•봄맞이꽃•길뚝사초•방가지똥•토끼풀•봄까치꽃•개미자리•새포아풀•갈퀴꼭두서니…

 

그렇다.
이름 없는 풀 없고
이름 모를 풀도 없다.
풀마다 이름이 다 있다.
하지만 알려고 하질 않는다.
그까짓 풀 주제에 이름 좀 모르면 어쩌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죽어도 그만인 것을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그냥 풀이라고 부른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민초들
이름 석 자 남기지 않고 산화한 이들
뼈도 추스르지 못한 채 팔도 골짝 어딘가를 떠도는 혼령 또한 마찬가지다.
풀은 잡풀이 되고 잡초라 하고
민초는 잡놈 잡년 연놈이 되고 잡것이라 부른다.
폴도 잡초요 민초도 잡초인데
잡초보다 못한 백성은 다시 개잡것, 오사리잡것(☜오월 사리 때 잡히는 새우는 육젓(유월 사리 때 잡히는 새우)과 달리 게딱지 오징어 곰장어 등 수십 가지 잡고기들이 섞여 잡힌다. 오월 사리 때 잡힌 것들이란 말이 줄어 생긴 말이다.)이 되어 더럽게 지저분한 새우젓 신세로 둔갑한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이상하게 보질 않는다.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비정상이다.
그래서 촛불혁명은 미완이다.촛불 한 개 켜 본 적 없는 것들이
무슨 ‘국민’ 한숨에 ‘촛불’이 꺼졌다고 땅이 꺼지도록 속을 태운다고 했다.
당연히 걔들은 저들의 외침과 분노를 애써 외면 왜곡 은폐한다.
걔들은 저들의 주검 앞에서도 이기죽거리는가 하면
건뜻하면 생사람 잡아다가 물고(物故)를 내고는 엄지척이라
저들을 보듬어 주는 누군가는
세 살 물정 모르는 또 다른 잡것이 되고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의 장본인이 되어
자칫하다가는 선량(☜ ‘뽑힌 생양아치’라는 뜻으로 쓴 말이다. 이를 달리 표현할 한자말이 없다. 굳이 한자로 적는다면 選恙이다. 恙은 곧 ‘병•독충•진드기 유충’를 뜻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들은 選良이 될 수 없다.)들이 모였다는 국회의 무슨 위원장 나리한테

“웃기고 앉아 있네.
진짜 병신 같은 게, 아주”

라는 말이나 듣게 될지도 모른다. 기왕에 뱉은 말이니 한 마디 보탠다. 째진 주둥이로 못 할 말이 없는, 영적인 불구자들에게 보내는 말이니 오해하지 않기를…

“웃기지도 않제.
병신도 등급이 있다드만 모감지에 심주고 씨부렁거리는 것 좀 보소.
병신 육갑 떨고 자빠졌네, 정말 재수없게.”

 

외 심은 데 콩 날까

꽃 없는 풀 없고
열매 맺지 못하는 풀도 없다.
이쁘다 밉다 말하지 말고
향기니 악취니 따지지 마라.
좋이 보고 나삐 보는 거야 누가 뭐랄까마는
긴 건 기고 아닌 건 아니다.
말짱한 걸 상했다 하고 상한 걸 말짱하다 하면 안 되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간다고
지네들이 날 오로지하겠다는 것부터가 삿된 망상이여
풀을 알지 못하는 얼척없는 것들의 자의적 판단일 뿐
이 세상 모든 풀은 다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어.
대를 이으려는 계략은 인간 못지않게 슬기롭고
살아남기 위한 저들의 투쟁은 생태맹(生態盲)인 인간을 능가하고말고.
매화도 한철 국화도 한철이라
한창때가 지나면 누구든 반드시 지고 마는 것을
풀은 자고로 농부들이 밭을 갈기 전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고
봄이 가기 전에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씨앗을 퍼뜨려야 하는 법
서둘러 맺지 않으면 대가 끊기고말고
그래서 자잘하고 가녀린 저 아이들은 지난겨울
얼어붙은 대지 뚫고 땅속 깊이 뿌릴 내리고
자기들끼리 이파리 켜켜이 보듬고 살아왔어.
때로는 몸뚱아릴 낮추고 땅위에 납작 엎드려 지내지만
그렇다고 강바람 된바람 앞에서 결코 오들오들 떤 적은 없어.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속살까지 붉게 물들이지만
칠보단장하고 속곳을 내보인 적도 없거든.

풀은 그래
풀은 천덕꾸러기가 아니여
바람 불면 눕고 밟으면 밟힌다고
뒷간까지 옻칠하고 사는 인간들에게
지멋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존재는 더더욱 아니여.

밑구멍은 들출수록 구린내가 진동하지
벌거벗고 환도 찬 놈들이 구린 입 지린 입으로 개차반 햝으면서
검정 넥타이 멘 놈 몇 데리고 광주에 와서 고갤 숙이고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입 뻥긋한 것이 그리도 살가울까?
아서라!
허구한 날, 하면 하고 말면 마는 식이드라
하나같이 염장지르는 말 듣고도
백 날 천 날 당하고만 살더구만뒷구녕 좋아해서 그라것제만
앞에서 연설하고 뒷구녕으로 돈다발 챙기다가
딸 조카 사돈처녀 할 것 없이 뒷구녕으로 물좋다는 회사 집어넣고
아들 처남 매부 당숙 일가붙이 뒷구녕으로 군대 빼돌리고
구걸할 때만 떼거지로 몰려다님시로 동작동 망월동 수유리를 누비드만
개가 개를 낳지
외 심은 데 콩 날까?
아, 그놈들은 확실히 DNA가 다른 종자들이여!
하기사 촌에서 국민학교 댕길 때 급장한 것이 전부인 내가 뭣을 알것냐마는
가미카제 자살특공대가 되어 죽은 조선인 청년을 미화하는 ‘마쓰이오장(松井伍長) 송가(頌歌)’를 읊조린 놈이, 그 입으로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를 지어 바치고 그를 ’단군 이래 5천 년 만에 만나는 온화한 미소, 세상을 구제하실 미륵의 미소‘를 짓는 신으로 추앙했는디 그라고도 서정주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서정시인이요, 어제의 전두환이 곧 오늘의 전두환 그대로가 아닌가? 달라지고 말 것도 없는 시상이제.

그래도
반 잔 술에 눈물 나고 한 잔 술에 웃음 나는 법
염치도 사람 믿고 산다니 인자 한 번 믿어볼까?
광주의 5월은 낱낱이 우리의 역사요
5월의 광주는 바람소리까지 역사의 산증인이라
광주의 5월은 나를 영원히 빚진 죄인으로 만들제만
5월의 광주는 歲歲萬年 대한의 빛고을로 기억될 것이여, 안 그랑가?

▲ 1980년 5월 광주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앞에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봄은 왔지만 아직 봄은 아니다

인간에게 심어 가꾸지 않는 풀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다. 해를 입히는 기생충이다. 기생충은 박멸의 대상일 뿐 쌈질 총질 좋아하는 인간은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다. 찾아가서 깡그리 몰살을 시키고 만다. 그러니 가장 무서운 적은 인간병정이다. 호미질 낫질 삽질도 풀들에게는 배려심 많은 농부의 보살핌이다. 땅속에 웅크리고 숨어 있는데 토양 살충제가 쏟아진다. 고개를 내밀기 무섭게 구석구석 틈새마다 제초제를 퍼붓는다. 풀만 죽이는가? 땅속 생태계는 전멸한다. 500배로 희석해도 죽을 판에 대충대충 얼버무려 찐하게 살포한다. 풀도 벌레도 씨를 말리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를 모를까. 풀이 나지 않는 토양은 죽은 땅이다. 벌레기 살지 않는 땅에서는 누구도 발을 붙일 수가 없다. 역설적이지만 풀들에게 코로나 19는 얼마나 고마운가? 사람을 멀리하면 자연이 다가온다. 사람 손길 닿지 않는 곳에 평화가 있다. 봄꽃은 오늘도, 자물쇠 채워진 교재원에서 맘껏 제 삶을 노래하고 있다. 저들은 분명,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팬데믹의 고통을 즐기고 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비님이 놀다 간 자리
달님이 들렀다 간 자리
해님이 쉬었다 간 자리
그 자리 자리마다 봄꽃은 향기롭게 피어나고
기는 놈 튀는 놈
뛰는 놈 나는 놈
애벌레 어른벌레
온갖 물것 날것
머물다 간 자리마다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다.

뿌린 이 없어도 뿌리 내리고
돌보는 이 없어도 꽃을 피우고
거두는 이 없어도 갈무리를 부탁하지 않는다.
누구 한 사람 건사해 주지 않아도
혼자 서고 혼자 눕고 그러다가 다시 혼자 일어선다.

주어진 운명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먼지 티끌 그러모아 뿌리내리고
새벽이슬 한 모금으로 온몸을 축인다.
누구도 필요 이상으로 제 몸을 살찌우려하지 않는다.
밟히고 뜯기고 찢기고 뽑히고 실오라기 남김없이 난도질당한들 누굴 탓하랴
홀로 꿋꿋이 버티다가 
혼자는 외로워 집성촌을 이루고 부대끼며 살아간다.
 

▲ 어느 곳에서든지 흔히 볼 수 있는 봄꽃들이다.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바늘 방향으로 개미자리, 주름잎, 꽃받이, 꽃마리. 자세히 보면 개미자리 씨방에 7~8개의 씨앗이 보인다.

봄이 간다.
봄이 가고 있다.
오면 온다고 말이나 하지
가면 간다고 기별이나 하지
온다 간다 말없이 
봄이 가고 있다
제대로 맞이하지도 못했는데
봄은 벌써 저만치 떠나고 있다.

텅 빈 교실
텅 빈 운동장
아이들이 없는 교실은 창백하다.
아이들 없는 빈집은 숨이 막힌다.
봄이 와도 보지 못하고
봄꽃이 손짓해도 다가가지 못하고
봄꽃의 속삭임에 무관심한 까닭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봄이다.
우리 아이들이 곧 봄이다.
봄꽃은 모두 강인하다.
삭풍 돌풍 칼바람 다 이기고
서슬퍼런 북풍, 중풍, 신북풍까지 물리친 훈풍을 몰고 온다.
겨울을 지내보아야 봄 그리운 줄 안다 했으니
우리 아이들이 돌아오는 날
보듬고 비비고 진물나게 눈맞추고
손잡고 덩실덩실 원없이 뛰어보자.
2020년 봄날이여, 코로나여
아, 우리들의 봄
한국의 아이들이여!

▲ 운이 좋았다. 집 앞 중산체육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흰민들레는 바깥과 안쪽의 총포(☜꽃의 밑동을 감싸고 있는 비늘 모양의 조각) 모두 하늘을 향해 있다. 우리의 토종인 흰민들레는 타가수정만을 고집한다. 그래서 일편단심 민들레는 곧 흰민들레에게만 적용되는 말이다. 이렇게 까탈스러운 나머지 발아율, 번식률 모두 낮다. 한편 순수 혈통을 유지하는 흰민들레에 견주어 서양민들레는 자가수정은 물론 처녀생식까지 가능하다.

편집 : 객원편집위원 김혜성(cherljuk13@nate.com)

박춘근 주주통신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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