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아내를 미금역으로 태워다 주는 길.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다리를 올리고 타이즈를 신는다. 무릎까지 올라와서 종아리를 꽉 조여 주는 양말인데, 너무 세서 아플 것 같다. 그걸 신는 모습이 고무장갑을 낄 때 그런 것처럼 힘이 들어 보인다.
아내는 건강검진센터에서 하루에 다섯 시간 동안 서서 일하는데, 다리가 붓지 말라고 신는 것이다. 월급이 많지도 않은데, 빚을 갚겠다고 스스로 나선 일이다. 기특하고 대견하고, 고맙고 사랑스러운 아내다. 아내는 천성이 빚이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가는 길에 CBS 라디오에서 Animals의 "The house of rising sun"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 때는 기타를 치며 목이 터지게 소리를 지르며 저 노래를 불렀었다. 어떤 친구는 나의 그 노래가 좋다고 만나기만 하면 불러 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그 노래를 들으니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나에게 고음의 노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불러야 목이 트인다고 했다. 실제로 해보니 잘 올라가지 않던 노래가 속이 후련하게 터졌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맛을 들였던 노래가 아마도 저 노래였다.
난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 친구와 어울려서 붙어 다녔던 때가 고 1~2학년 때였을 거다. 그때 친했던 친구는 딱 그 애 한 명이었던 것 같다. 그도 친하게 어울리는 친구가 나를 포함해서 두세 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 애네 집과 우리 집 사이는 1km쯤 되었을까? 거리로는 바로 옆 동네이지만 우리 집은 구석진 촌 동네였고, 걔네 동네는 한결 잘 살던 도시 같은 동네였다.
서로의 집을 오가긴 했지만, 우리는 주로 걔네 방에서 놀았다. 걔가 살고 있는 집은 부모님 집이 아니라 외삼촌 집이었다. 걔네 집은 원래 시골이었는데 학교에 다니느라 중학교 때부터 외삼촌 집에서 지내온 것이다. 근데 이 친구는 외삼촌 집에 얹혀살면서도 마치 세도를 부리듯이 당당하게 굴었고, 재워주고 먹여주는 외숙모는 오히려 이 친구를 조심스러워했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외삼촌네가 이 친구 부모에게 무슨 큰 신세를 졌나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의 방은 거실 건너편에 따로 떨어져 있었고 외삼촌 내외는 그의 일에 별 관여를 하지 않았으며 부모는 시골에 멀리 떨어져 계셨으니 그는 아주 일찍부터 독립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누리며 지냈다. 그의 키는 아주 작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또래에 비해서 꽤 성숙한 편이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어려서부터 부모의 따스한 정을 느끼지 못하고 혼자서 독서와 사색을 많이 한 탓인 것 같았다.
언젠가 걔네 집에서 그의 어머니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에게서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반갑다거나 보고 싶었다거나 사랑한다는 듯한 따스하고 푸근한 정이 눈곱만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숙사 사감같이 딱딱하게 훈계와 같은 잔소리만 길게 늘어놓았었는데 그 친구는 그런 어머니의 행동과 언사에 아주 대놓고 넌더리를 치면서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었다.
그 친구는 서양 가곡과 팝송을 좋아했고 미국을 동경했다. 나는 그가 좋아하던 노래를 모두 좋아했다. Beatles의 'Junior's Farm', Johnny Horton의 'All for the love of a girl', ABBA의 'S.O.S', Animals의 'The house of rising sun', 솔베이지의 노래 등...
그는 철학책과 소설책을 많이 읽은 듯했다. 쇼펜하우어, 데미안 같은 철학과 소설 얘기를 자주 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는 목소리가 아주 좋았다. 약간 저음인 듯하면서 윤기가 흐르는 안정감 있는 목소리였는데 라디오 DJ를 했더라도 인기가 꽤 좋았을 법 했다.
그는 말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나는 그가 하는 대부분의 얘기를 호기심을 가지고 재미있게 들었는데, 특히 그래서 그런지 내게 말을 할 때면 그는 늘 싱글벙글 신이 나 있었고, 가끔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래턱을 슬쩍 내밀며 으스대는 표정으로 내 반응을 살피곤 했다. 나는 그의 약간 으스대기도 하면서 과장된 표정이나 태도가 그리 거슬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걸 즐기는 편이었다.
그는 과목별로 학습에 도움이 되는 참고서를 많이 알고 있었고 내게 추천을 해줬다. 나는 그 책들을 대부분 사서 공부했고, 시험을 볼 때면 그 참고서 덕을 많이 봤다. 근데, 그 좋은 책들을 소개시켜 준 그는 오히려 성적이 나보다 안 좋아서 나는 그게 왜 그럴까 하고 늘 궁금했었다. 그는 늘 내게 형처럼 굴었는데, 나도 그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많이 성숙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그런 태도를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와 친했던 고1 때는 아마도 우리가 한 반이었고, 2학년이 되어 반이 갈리고 나서는 차츰 그와의 관계도 소원해졌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언젠가 한 번 그를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내게 전처럼 친근하게 굴지 않았고 나도 약간 서먹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는 나와 친했을 때보다 훨씬 더 작아진 것처럼 보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 이후에 많이 자란 탓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디 영어학원에서 강의를 한다고 했었다. 우리는 기약도 없이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고 그냥 헤어졌다. 그게 그를 본 마지막이다. 그 이후 그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고, 그는 동창 모임에 한 번도 나타나질 않았으며, 내가 아는 친구 누구에게서도 그와 연락하며 지낸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성숙이 늦은 내가 아직 소년티를 채 벗지 못했을 무렵 그는 멋있는 형 같은 친구였다.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고, 늘 새로운 문화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그 친구와 어울렸던 시절을 떠올려보니 왠지 마치 초콜렛처럼 아련하고 달콤했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게 동성 친구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내 느낌은 그러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까?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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