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앙코르 유적을 보고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캄보디아 패키지 관광은 보통 3박 5일인데 우리는 운 좋게 4박 6일 일정을 택할 수 있었다. 3박 4일로 가면 하루 정도 앙코르 유적 보는 날로 잡는다. 보통 시엠립에 있는 '앙코르 와트', '앙코르 톰', '바미온 사원', '바프온 사원', '타프놈 사원' 등을 보게 된다. 우리는 하루 더 여유가 있어서 시엠립에서 좀 떨어져 있는 '프레아 코 사원', '바콩 사원', '롤레이 사원'과 '반데스레이 사원'까지 볼 수 있었다.

아주 간단히 캄보디아 역사를 훑어보면, 캄보디아는 기원전 2000년~1000년대 사이에 중국 동남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살면서 시작되었다. 기원후 1세기경 메콩 강 하류에 인도차이나 반도 첫 번째 국가인 ‘푸난’(1세기~7세기 중엽)'이 세워졌다. 푸난은 메콩 강 중류에서 일어난 ‘쩐라(550~802)’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쩐라는 681년 자야바르만 1세가 사망한 후 힘이 약해져 말레이 민족과 자바인의 침공으로 속국이 되었다. 이후 자야바르만 2세(재위기간 802년~850년)가 독립을 선포하고 주변 소국들을 정복한 후 크메르 왕국를 세웠다. 크메르 왕국은 802년-1432년까지 630여 년간 동남아에서 가장 번창한 왕국이다.

'앙코르(도시란 뜻)'는 자야바르만 2세가 크메르 왕국의 수도로 점지한 곳이다. 자야바르만 2세가 건설을 시작해서 약 300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앙코르는 1431년 타이 군대에 점령된 후 약탈당하고 결국 버려졌다. 이후 19세기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발굴하기 전까지 밀림에 묻혀있었다.

앙코르 유적 대부분은 사원이다. 앙코르 시대 때 크메르 제국은 힌두교로 시작해서 대승불교로 바뀌었다가 다시 힌두교, 다시 소승불교로 바뀌었기에 유적에서 힌두문화와 불교문화를 만날 수 있다. 

▲ 앙코르 유적군(출처 : 위키피디아)

이틀 동안 방문한 유적지를 시대 순으로 정리해보았다.

유적지

시기(왕조)

위치

프레아 코 사원

880년(인드라바르만 1세)

씨엠립 남동쪽 15km

바콩 사원

881년(인드라바르만 1세)

씨엠립 남동쪽 15km

롤레이 사원

893년(야소바르만 1세)

씨엠립 남동쪽 15km

반테스레이 사원

967 (라젠드라바르만)

앙코르에서 북쪽으로 20km

바푸욘 사원

1060년(우다야디야바르만 2세)

씨엠립. 앙코르 톰 내

앙코르 와트

1113~1150년 사이(수르야바르만 2세 )

씨엠립

타 프롬 사원

12~13세기(자야바르만 7세)

씨엠립

앙코르 톰

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

씨엠립

바이욘 사원

1200년(자야바르만 7세~8세)

씨엠립 앙코르 톰 내

 

▲ 롤루오스 유적군

먼저 씨엠립(=시엠레아프)에서 남동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는 롤루오스 유적군(Roluos Temples)을 소개하고자 한다. 롤로오스는 ‘앙코르’로 수도를 옮기기 전, 자야바르만 2세가 수도로 택한 ‘하리하랄라야’ 지역이다. 지금 하리하랄라야는 사라지고 없는 지명이다. 롤루오스 유적군의 대표 사원은 '프레아 코 사원', '바콩 사원', '롤레이 사원'이다. 크메르 제국의 초기 유적지인 이 세 사원은 앙코르 왓트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한적했다. 여유롭게 유적지를 둘러보고 싶다면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프레아 코(Preah Ko) 사원’은 롤루오스 최초 사원이다. 인드라바르만 1세가 조상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힌두사원으로 6개 붉은 석탑에 조상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아래 구조도처럼 앞에 있는 탑 셋은 왕과 왕족을 모신 탑이고 뒤의 셋은 각각 왕비를 모신 탑이다. 왕의 탑이 조금 더 크고, 뒷줄 오른쪽 탑이 유난히 작다.

▲ 프레아 코 사원의 탑 위치(사진 출처 : Books Guide Ancient Angkor)

입구에서 멀리 사원이 보였다. 멀리서 볼 때는 뭔가 허름하고 작아 보였지만 얇은 적벽돌을 쌓아 사람 키 10배 높이 탑이라고 한다. 탑을 제외하고는 다 무너져가는 저기에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갔는데 가까이 가서는 깜짝 놀랐다.  

▲ 멀리서 본 프레아 코 사원

전면 가운데 가장 큰 탑은 크메르 왕국의 창시자인 자야바르만 2세를 모신 탑이다. 이 사원을 건축한 인드라바르만 1세는 자야바르만 2세의 조카다. 양 쪽의 약간 작은 탑은 인드라바르만 1세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에게 봉헌되었다. 가이드는 6개 탑들은 서로 간의 사이좋고 나쁨에 따라 거리를 두어 건축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탑을 건축하는데 각자 선호도에 따라 거리를 두어 위치를 정했다는 것이 좀 이상하다. 만약 사실이라면 저승에서도 사이좋은 사람끼리 붙어있으라는 말인가? 좀 재미있기도 하다.

▲ 6개의 탑

세 개의 왕의 탑 앞에는 3마리의 소가 앉아 있다.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 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흰소로 난디(Nandi)라고 부른다. '프레아 코'의 뜻은 '성스러운 소'라는 뜻인데 이 난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무릎을 꿇고 묵묵히 앉아 있는 소가 왠지 든든해 보인다. 언제라도 벌떡 일어나 시바 신처럼 추앙받았던 자야바르만 2세를 태우고 뚜벅뚜벅 걸어갈 것만 같다.

▲ 성스러운 소

탑 바로 앞과 옆에도 탑을 지키는 사자상이 두 마리씩 있다.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바로 튀어나갈 듯 앉아 있는 사자의 가슴과 머리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는 갈기가 인상적이다.   

▲ 탑을 지키는 사자 상

탑들이 서로 적정 거리(?)을 유지하며 서있다. 가만히 보면 뒷줄 가운데 탑(자야바르만 2세 왕비 것으로 추정)과 뒷줄 오른쪽 탑이 유난히 가깝다. 자야바르만 2세와 왕비의 거리도 가까운 편이다. 둘 사이가 좋았나 보다.  

▲ 6개의 탑 사이에서

 

▲ 자야바르만 2세 탑

위 사진에서 보듯 문 양 옆에 탑을 지키는 또 다른 수호천사가 있다. 동서남북 4곳 모두에 서있는 문지기다. 왕의 탑 수호천사는 창을 든 조각상으로 신전을 지키는 남신, 드바라팔라(Dvarapala)다. 왕비의 탑에는 여인 조각상이 있다. 자비의 여신 데바타(Devata)다.  

▲ 왕비 탑을 지키는 신과 왕 탑을 지키는 신

탑은 조각하기 쉬운 석회몰타르(Lime mortar)와 라테라이트(홍토) 벽돌로 만들어졌다. 약간 회색빛을 띄는 부조물이 라테라이트 벽돌 위에 석회몰타르를 붙여 조각한 작품이다. 이 탑 전체에는 아름다운 부조들이 많이 새겨져 있다. 특히 문을 지탱하는 윗부분(린텔)에 새겨진 부조는 굉장히 섬세하고 화려하다. '린텔 부조'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앙코르 왕조만의 예술작품이라고 한다. 비록 많은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마모되고, 오랜 풍파에 색이 바랐어도 독특하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은 여전히 그 빛을 발하며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 조각품 덕에 '프레아 코 양식'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 린텔 부조(아래 오른쪽 린텔은 복원된 작품)

탑에는 문이 동서남북으로 4개 있다. 동쪽을 향한 문은 뚫려 있어 석탑에 들어갈 수 있다. 나머지 3개 문은 모양만 문이고 막혀있다. 그 3개 문은 장식기둥으로 꾸며져 있는데 그곳에 새겨진 부조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 장식기둥 부조(왼쪽이 복원작품)

오랜 풍파를 견뎌낸 부조와 복원된 부조를 비교해보았다. 복원된 부조의 색깔이 이전 것과 조금 다르다. 복원된 수호천사들 색도 다르다. 원래와 복원된 것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복원 부조의 석회몰타르를 조금 다른 색깔로 한다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 오른쪽이 복원된 부조

‘프레아 코 사원’의 모든 것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사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Long Hall, 울타리, 벽 등은 거의 복원되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내리고 흔적만 남아 있었다. 무너져 내린 곳도 복원을 위한 보호 조치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무너진 프레스코 사원

그나마 덜 무너져가고 있는 6개 탑을 구경하면서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모두 탑 가까이 들여다 보고 어떤 이들은 만져보기도 했다. 관리요원이 없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에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 탑의 뒷모습

떠날 시간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탑의 뒷모습을 한참 보았다. 만약 경복궁이나 창덕궁이 저렇게 훼손이 심각하다면 어떻게 할까? 우선 정부가 사람들 발길이 닿지 못하도록 폐쇄를 시킨 후 어찌 해보지 않을까 싶다. 정 폐쇄가 어려우면 사람들 손길이 닿지 못하도록 일정 거리를 두고 접근을 허용할 것 같다.

캄보디아도 그런 대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앙코르 유적군을 관리하는 기관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기업이라고 한다. 앙코르 유적군 입장료와 부대시설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수입이 모두 기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기업을 통해서 국가도 일정부분 수입을 잡겠지만 국가는 그 책임을 민간에게 떠넘긴 구조라 볼 수 있다. 민간기업의 속성은 어떤 가치보다는 내 주머닛돈에 있다. 유적의 보호와 복원은 내일 해야지... 모레 해야지... 하염없이 미루면서 내버려두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참으로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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