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지금 계신 곳은 지내기가 어떠신가요? 여름엔 덥더라도 시냇가에 발을 담그거나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고, 겨울에는 불을 때지 않아도 춥지 않은 곳이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가신 뒤로는 저 세상도 그저 옆집이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이웃 동네일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가 지금도 꼭 제 곁에 계시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겠지요.

하지만 문제는 문제입니다. 이제 사는 게 힘들거나 심각한 고민이 있을 때 누구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아직도 밤늦게나 새벽녘에 만취한 채로 어머니 집을 찾아가면 잠이 옅으신 어머니가 저를 반겨주시고 제 술주정을 잘 들어주실 것 같은데, 이제는 가봐야 거기에 계시질 않는 거죠? 무엇이 급해서 어머니는 한 마디 인사말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서둘러 떠나셨나요? 

다가오는 어머니의 첫 기일을 맞이하여, 작년 6월 초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나서 써놓은 글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배경음악은 어머니가 잘 부르시고 자주 부르셨던 '홍콩의 밤거리'를 틀을 게요.

 

지난 토요일 저녁. 아주대병원 입원실로 뵈러 갔을 때 어머니는 누워서 끙끙 앓고 계셨다. 누워있는 자세가 영 불편하고 아픈 것 같으면서도 딱히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고, 당신 몸을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하셨다. 또 무릎이 그렇게 아프다고 하셨다. 나는 반듯이 누워계셨던 어머니를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옆으로 누이고 등을 쓱쓱 문질렀다. 뒷목덜미 안마를 하고 머리도 지압을 해드렸다. 팔을 주무르고 발바닥 지압마사지를 해드렸다. 두 손으로 무릎과 오금팽이를 함께 어루만지고 쓰다듬었다. 나는 쉬지 않고 어머니의 온몸 구석구석을 마사지 해드렸다. 어머니의 앓는 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 무릎 아프단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제 폐 운동을 하실 차례. 폐 운동기구 대롱을 입에 물고 바람을 빨아들여서 가벼운 공이 기구 천장까지 올라가게 하는 운동이었다. 간병인 말씀이 그렇게 운동을 하라 해도 안 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어르고 구슬려서 운동을 하라 하시자 구슬 세 개 중 한 개를 천장까지 닿게 하셨다. 그렇게 서너 번 하시고는 너무 기운 없어 하셔서 더 재촉은 하지 못했다. 조금 쉰 다음에는 천식환자가 치료받는 것처럼 수증기가 나오는 대롱을 입에 물고 들이마시는 치료를 15분간 하고 주무셔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입으로 숨을 쉬어야만 그 수증기가 가슴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어머니는 자꾸 코로 숨을 쉬어 그 수증기를 들이마시질 못했다. 내가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이 어머니는 계속 수증기가 밖으로 새나가게 하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코를 잡고서 코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수증기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코를 잡는 게 우스운지 킥킥거리고 웃으셨다. 내가 코 잡은 손을 놓았다가 수증기가 새나갈 때 다시 또 코를 잡으면 또 킥킥거리고 웃으셨다. 그게 재미있으셨던 모양이다. 그렇게 15분가량을 보내고 이제 어머니가 잠을 주무실 시간이 되었다. 이제 어머니는 어디가 아프단 말씀을 하지 않고 졸린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어머니 두 볼을 쓰다듬다 어머니를 끌어안고 볼을 마주 비볐다. 한결 편안해 보이는 어머니에게 안녕히 주무시라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 다음 날 아침 차를 끌고 서탄에 있는 농원에 갔다. 그 농원에서 나무와 잔디를 샀는데, 이맘때쯤 농약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시간이 없어 올 수가 없으니, 트럭에다가 농약을 잔뜩 타서 실어 놓겠다고 나보고 와서 그 트럭을 끌고 가서 농약을 듬뿍 주고는 트럭을 도로 원위치에 갖다 놓고 올라가라는 것이다. 수동식 기어가 달린 낡은 트럭을 몰고 와서 농약을 주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고, 승용차를 다시 끌고 와서 샤워를 하고 막 늦은 점심을 먹으려는 즈음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열이 있어 폐렴이 의심된다고 혈액검사를 또 한다는 것이다. 필요할 경우 산소공급을 위해 폐에 관을 삽입해야 할 수도 있단다. 나는 조금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지만, 서둘러 점심을 먹고 아주대 병원으로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여자가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여자가 내 동생이었다. 여동생은 통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 어서 일어나라고, 우리 엄마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의 입원실 맞은 편 처치실의 가려진 유리창 틈새를 들여다보니 우리 어머니가 누워계신 침대를 의사들이 빙 둘러싸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 전부터 하고 있던 그것을 내가 도착한 이후에도 십여 분 째 계속 하고 있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그 방에 들어가 보니 우리 어머니가 얼굴이 퉁퉁 붓고 배가 불룩한 채로 누워계셨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 어머니의 몸을 흉하게 만들어 놓은 그들에게 분통이 터졌다. "그.만.하.세.요!" 나는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그들의 동작을 중단시켰다. 그들은 죄인의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나의 눈치를 보았다. 그 사람들도 할 게 아닌 줄은 알면서도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내 여동생의 집착 때문에 중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그날 그렇게 될 것을 그 전날 알고 계셨을까? 돌이켜보니 어머니는 아프다는 말씀으로 나를 꾀어서 나와 마지막으로 놀이를 하신 것이다. 돌아가시고 난 뒤에라도 내가 덜 서운하도록. 그 놀이마저도 없이 어머니가 가셨다면 나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랬다면 어머니와 아무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보내드린 것이 너무 죄스럽고 서럽고 서운하여 견디기가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친밀한 이별의 놀이가 있었으니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의 위안을 삼을 수가 있었다.

이상이 높았던 우리 어머니.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 어머니를 혹독한 현실로 시험을 하였다. 태어나실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어머니에게 세상은 늘 적대적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그 작은 몸으로 언제나 험한 세상과 싸워 이겨내셨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꼴로밖에는 성장하지 못한 내가 늘 죄송스러웠다. 악의적인 세상과 싸우며 자식들 키우시느라 살은 다 태워버리시고 쭉정이만 남은 채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신 불쌍하고 가여운 우리 어머니.

하늘나라에서는 어머니에게 합당한 이상과 권위를 찾으시고 아프지 마시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시고 두루두루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사세요. 제가 찾아갈 때까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 제가 서운하지 않게끔 꿈속에서라도 부디 저에게 자주 찾아와주세요.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는 저와 꼭 연인으로 만나요.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지신 주주통신원  jssy08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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