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로소이다 3. 황홀한 일탈

심창식 편집위원l승인2020.05.29l수정2020.07.0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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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황홀한 일탈

자칫 잘못하면 내가 실성한 노인에게 놀아난 꼴이 된다. 이마에 진땀이 나려한다. 여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왕이었던 건 한낮의 헛된 꿈이었던 게 된다. 여인은 또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았을 것인가. 여인의 처지가 애닯기 그지 없다. 이는 남자로서 연악한 여자에게 느끼는 보호본능이기도 하지만 왕으로서 백성에게 느끼는 애민(愛民)의식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노인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력을 지녔다. 나 또한 왕위를 승계 받으라는 제안에 '이게 웬 떡이냐'며 아무 생각 없이 덥석 받은 것만은 아니다. 늘 나가던 한강변에 고구려의 후예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한강왕을 중심으로 대륙의 꿈을 키워왔다는 사실에 감동받은 탓이 컸다.

도대체 여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 여인이야말로 실성한 건 아닐까. 이 때 근접경호단이 귓속말로 여인에 대한 긴급 보고를 하였다. 나는 여인을 지그시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경호단으로부터 여인에 대한 인적사항과 사건의 전말을 보고받은 나는 여인에게 안쓰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대는 한강왕의 자녀로서 부친으로부터 한강왕을 물려받지 못해 원한을 품고 있는 건 아니오? 그렇다고 부친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해서야 도리가 아니지 않소?"

그러자 여인이 왈칵 눈물을 쏟으며 이실직고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은 한강왕의 무남독녀로 제왕학을 배우며 한강왕위를 물려받기를 소원했으나 초대 한강왕의 허락을 득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한강왕의 왕위를 물려받게 된 나를 만나 부친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 한강왕의 양위를 무산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아리따운 여인의 하소연치고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차피 왕노릇을 오래 할 생각도 없다. 평민으로 살다가 우연찮게 한강왕이 된 게 아니던가. 곱디고운 여인이 흘린 눈물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였다.

"그대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고도 남소. 또한 한강왕을 오래 할 생각도 없소."

"먼저 저희 아버지로부터 한강왕위를 물려받으신 왕께 거짓을 고한 점에 대하여 깊이 사죄드리옵니다. 어떤 변명으로도 왕께 저지른 죄를 덮지 못할 것이며, 죽음으로 갚아도 다 못 갚을 것입니다. 다만 왕께서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고 저의 처지를 들어주신다고 하니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여인이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다. 왕 자리가 그렇게도 간절했나보다.

"그건 그만하면 되었소, 앞으로 내가 어찌하면 그대를 도울 수가 있겠소?"

나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한강왕을 양위 받으신 이상 어느 정도의 기간은 왕으로 계셔야 합니다. 다만 청이 있다면 저와 백일기도 후에 합방을 해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습니다."

이 여인이 지금 나를 대놓고 유혹하려는 것인가? 표정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해도 여인의 입에서 먼저 합방을 언급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합방이라면 동침을 말하는 것이오? 그건 혼인을 전제로 한 것인데, 무엇 때문에 나에게 합방을 요구하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소?" 

달빛이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여인의 얼굴이 더욱 청초해 보였다.

"한강왕조실록에 의하면 자식이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경우, 왕위를 물려받은 사람과 합방을 하면 다음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는 전례와 기록이 있습니다. 왕께서 저와 합방을 해주신다면 제가 왕으로부터 한강왕위를 물려받을 자격이 생기게 됩니다. 왕께서는 부디 저의 청을 거절하지 말아주시옵소서."

여인의 청이 너무 간절하여 차마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망설이는 눈빛을 보이자 여인이 더욱 애절한 목소리로 간청하는 것이었다.

"왕께서도 수년 전에 부인과 사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아직 미혼이오니 왕께서 결심만 해주신다면 아무 거리낄 것은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아버지께서 왕위 계승자로 왕을 관찰하기 시작할 때부터 멀리서나마 왕을 흠모해왔음을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함을 용서하시옵소서."

여인 또한 부친인 한강왕으로부터 대략적인 나의 신상 내역을 들었을 터였다. 더구나 한강왕의 공주로서 제왕학을 공부하고 왕이 될 꿈을 꾸고 자랐다면 나보다 훨씬 더 왕의 자질을 지니고 있지 않겠는가.

"그런 뜻이라면 내가 그 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게 되었소. 백일기도와 합방의 절차에 대해서는 예부에서 그대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시행하게 할 것이오."

여인은 감동했다는 듯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더니 다짜고짜 나에게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나도 여인의 키스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싫기는커녕 백옥같이 고운 여인의 자태에 마음이 흔들리고 심장이 요동치면서 나도 모르게 황홀경에 빠져 들었다.

왕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것은 생각뿐이었고 몸은 이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여인은 애련한 몸짓으로 나의 품을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어슴푸레 어둠이 깔린 한강변에서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과 나누는 포옹과 키스는 무척이나 달콤하고 짜릿했다.                                <계속>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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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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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호진 2020-05-30 04:46:55

    어슴푸레 어둠이 깔린 한강변에서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과 나누는 포옹과 키스는 무척이나 달콤하고 짜릿했다.
    엇만 남아 있네요 ㅎㅎㅎ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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