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산 산행 후 만난 해넘이 잔치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20.05.30l수정2020.06.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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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충실히 따르기 위해 사람 없는 산을 찾아다닌다. 경기 북부 양주, 연천 등지에는 유명하지 않은 작은 산들이 꽤 있다. 얼마 전 양주에 있는 천보산을 다녀왔다. 해발 423m이니 오후 느지막이 산행을 시작해도 2시간이면 가뿐하게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산이다.

▲ 천보산

그런데 이 산이 참 특이하다. 아래 지도에서처럼 높지는 않은데 길어, 양주 동쪽을 병풍같이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남쪽으로는 의정부, 동쪽으로는 포천, 북쪽으로는 동두천까지 접경을 이루고 있으니 얼마나 긴 산인가? 능선 종주 코스가 19km를 넘다보니 10시간 이상 걸린다. 며칠을 두고 조금씩 타보는 것이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대신 여러 곳에서 산을 향해 올랐다가 능선을 탄 후 다른 지점으로 내려올 수 있다. 다양한 코스라 재미있다.

▲ 천보산 등산지도. 파란 선이 정상을 지나는 능선. 빨간 동그라미가 우리가 오른 지역  

양주에는 고려 때 3대 사찰이었고, 조선 전기 왕실사찰인 '회암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 태조 이성계의 또 다른 왕궁이라 불릴 정도로 규모와 위상 면에서 최고의 절이었다. 조선 건국에 공이 큰 무학대사도 머물렀기에 왕실 후원도 많이 받았다. 16세기 중반까지 전국 제일 사찰로 성장하지만 16세기 말 돌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불교를 억압한 유생들의 방화로 폐허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타당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설이다.

▲ 회암사 터, 계단식 구조다.

사라지고 없는 회암사를 찾기 위해 1997년부터 2015년까지 12차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다. 귀해서 왕궁에 올리기도 어려웠다는 청동기와, 조선 왕실에서나 사용하던 용문기와 봉황문기, 왕실가마(관요)에서 제작된 도자기 등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사찰 터가 발굴되었다. 그 유물들은 회암사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터는 '회암사지'로 보호받고 있다. 

회암사지 위에는 작은 절이 하나 있다. 불탄 회암사가 아쉬웠는지 1828년 조정에서 회암사 옛터 위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  회암사

회암사에는 꽃 모양이 부처님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불두화가 풍성하게 피어있다. 열매가 딸기처럼 생겨서 산의 딸기나무라 부르는 산딸나무 꽃도 소담스럽게 피었다.

▲ 불두화와 산딸나무 

회암사를 거쳐 800m 올라가면 천보산(회암동 423m) 정상이 나온다. 산이 길다보니 천보산 정상은 3곳이나 된다. 마전동 정상은 337m, 율전동 정상은 348m다.

▲ 108 바위

경기 북부에는 능선이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 산들이 많다. 불곡산도 그렇고 감악산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위와 같이 '108바위'도 만날 수 있다. 왜 '108바위'라 이름 붙었을까? 저 봉우리 위에서부터 바위 108개가 굴러 떨어졌을까? 아니면 '108바위'에서 시원스럽게 보이는 회암사를 향해 밤이면 바위들이 일어나 108배를 했다 해서 이름 붙었을까?

▲ 천보산 정상에서 율전동 마전동 방향  

정상에서 바라보는 동남쪽을 향해 뻗은 능선이 참으로 길다. 천보산맥이라 부를 만하다. 그 긴 코스 중간 능선 아래 자이아파트가 1단지에서 5단지까지 있다. 이사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아파트다.

5월 말이 되면 산은 땅비싸리 계절이다. 5월 중순 경 팥배나무, 노린재나무, 들꿩나무, 떼죽나무 쪽동백나무 등 흰꽃 잔치가 끝나면, 땅비싸리는 땅을 향해 살포시 고개를 숙이면서 서서히 연분홍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친구 같은 조록싸리도 6월이면 꽃을 피운다. 비록 키 차이로 서로 만날 순 없다 해도... 위아래서 반가워하고 있을 거다.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가 넘어갔다. 멀리 도봉산 능선에 구름이 걸려 아련하게 보인다. 

차창 옆으로 보이는 구름이 심상치 않다. 막 넘어간 해님이 아쉬운지 긴 날개를 펴고, 가는 해를 좇아 잡아올 것만 같은 기세다.

점점 하늘은 빛을 거두고 어둠과의 동거를 위해 화려한 쇼를 준비한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밤 잔치가 시작된다. 이 시간 이 장소 아니면 어디서 만날 수 있으랴? 숨이 멎는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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