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형, 정봉준 장군과 함께 동학혁명 주도하기도

 

지난 2일 오전 11시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천덕산 해월 최시형 묘수에서 참례식이 진행됐다.

동학 천도교에서 주관한 이번 행사는 지역 주민과 천도교인 등 30여명이 참석해 정정숙 교화관장 집례로 치러졌다.

참례식은 청수봉전(淸水奉奠, 맑은 물을 받들어 올리다), 심고(心告, 마음을 아뢰다), 주문(呪文), 심고, 폐식 순으로 간단하게 진행됐다.

여주 천도교당에서 경리부장을 맡고 있는 이돈수씨는 “해마다 이 곳을 찾지만 너무 깊은 산 속에 있고 길도 험해 이곳 지역 단체들과 함께 오지 못해 아쉽다”고 전했다.

조명호 이천문화관 원장은 “윤석산 교수와 함께 동학 강좌를 듣는 등 관심이 많았지만 민족성지인 이곳을 방문하는 것을 검토하지 못했었다”며 “오늘 현장을 방문해 보니 앞으로 이천 단체들에게 소개해 함께 오고 싶다”고 말했다.

묘소 입구에 위치한 광금사의 법달 스님은 “민족종교의 큰 스승인 해월 묘소를 찾는 이가 많지 않다”며 “오늘 같이 참례식이 있을 때나 방문객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불교계에 몸을 담고 있지만 서학에 함몰하고 있는 일그러진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서울 영등포교당 이상선씨는 “남북이 공유하는 동학 천도교가 융성해져 오늘 같은 자리에 북의 동덕님들도 같이 왔더라면 참 좋았을 것”이라며 “2002년 북의 청우당의 동덕들이 민족운동, 민족문화의 터전 중앙대교당에서 같이 시일식을 체험한 것은 너무도 감격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수운회관 옆의 중앙대교당을 그들도 잊지 못할 것이다”며 “오늘 이 자리리가 허전하다”고 말했다.

이북오도청 평안북도 김진일 초산군수는 “어쩌다 우리는 내 땅 내 강산을 마음대로 밟지도 못하고, 내 고향을 멀리 두고 내 형제를 만나지도 못해 가슴만 태우는 신세가 되었는지, 일제 36년도 길다고 하였는데 이건 그 갑절이 되는 70년의 세월을 외세의 흉계로 국토는 분단되고 민족은 양 갈래가 되어 전쟁만을 생각하는 족속이 되었는지 참으로 가슴이 미여집니다”며 한숨을 지었다.

이어 “우리의 소원 통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 과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주선원 감사원장은 “동학은 조선조 전통질서와 동양을 침범했던 서양의 근대적 질서를 비판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신념체계로 수운 최제우에 의해 창도됐다”며 “조선조 사회가 지니고 있던 봉건성과 서구 열강의 침략이라는 탄압과 무력에 의해 수 많은 동학교도들이 순도하는 등 조선의 ‘자생적 근대’의 한 모습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참례식을 치른 해월 최시형은 1863년 수운 최제우을 이어 2세 교주가 됐지만 대신사가 체포돼 대구 장대에서 참수 당하고 관의 추적이 강화되자 36년간 숨어서 천도교를 이어갔다”며 “이를 ‘숨어서 도를 펴던 시대’라 부른다”고 덧붙였다.

주 감사원장은 “당시 우리나라를 위협하던 외국세력에 대한 ‘척양척왜’ 반외세운동이 발전돼 1894년 전봉준 장군과 함께 동학혁명을 주도했지만 1898년 관군에 체포돼 72세 나이로 형장에서 순도했다”고 밝혔다.

고순계 주주통신원  sangdo114@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