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1)

도깨비버들 박춘근 주주통신원l승인2020.06.04l수정2020.08.1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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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 제 2장 한글 시가(詩歌) 원문 가운데 제 1행이다. 아래는 이를 한글로 번역한 글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이 좋아지고 열매가 많아지니”

용비어천가는 세종 때 편찬, 간행한 서사시이다. 조선왕조 창업의 공덕을 기리고, 쿠데타 세력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노래이다. 그 가운데 위 구절은 그와 같은 당위성을 나무에 비유하여 강조한 표현이다.

그렇다. 나무의 생명은 곧 뿌리다. 뿌리가 깊지 못하면 꽃이나 열매는커녕 살아남기가 어렵다.

▲ 2019년 9월에 발생한 제13호 태풍 링링에 의해 뿌리가 드러난 버드나무. 여의도 한강공원샛강생태공원에서(2020. 5.14.)

 

한편 뿌리의 깊이를 좌우하는 것은 토심(土深)이다. 토심이 깊지 못하면 나무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가 없다. 물론 나무에 따라 토심이 얕아도 생존 가능한 천근성(淺根性) 수종이 따로 있다. 아까시나무를 비롯하여 장미, 명자나무, 나무수국, 벚나무, 사철나무, 사시나무, 감나무, 매화나무, 오동나무, 회화나무, 배롱나무, 버드나무류는 모두 뿌리를 얕게 뻗는다.

버드나무는 유난히 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개울가, 강가, 호숫가와 같은 물가에서 많이 자란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버드나무는 천근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뿌리 지름이 1미터 쯤 되고 15미터 정도까지 자란 버드나무가 이렇게 쉬이 뿌리째 뽑힐 수 있을까?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문제는 흙이다. 뿌리가 드러난 곳을 보니 각종 건축폐기물이 즐비하다. 땅속의 부조리를 웅변하듯이 남김없이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 누군가가 10여 년 전에 생태공원을 조성한답시고 각종 건축폐기물로 도배했음이 분명하다. 지난해 9월에 넘어진 나무가 아직도 녹색 잎을 틔우고 있다니 삶에 대한 애착이 이보다 더 강할 수 있을까? 나무는 죽음으로써 인간의 야만을 증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버드나무가 쓰러지자 땅속에 있던 각종 건축폐기물이 드러났다.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는 나무는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1453년(단종 1년)에, 오는 봄부터 한양 밖 도로의 좌우에 버드나무 외 5종의 나무를 심고 벌목을 금하라는 왕명을 내린다. 이로써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버드나무의 공기정화 능력을 꿰뚫고 있었음직하다. 아울러 우물 옆에 버드나무를 즐겨 심었으니 이는 곧 수질정화 능력을 높이 산 결과이다. 최근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서울의 도로 양편에 버드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버드나무씨앗을 꽃가루 알레르기의 주범으로 착각하여 베기 시작한 것이다. 씨앗과 꽃가루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의 무지가 빚은 결과이다.

 

세월이 흐르면 이 나무도 썩게 돼 있어.
물을 좋아하던 아이라 더 쉬이 상하겠지.
머잖아 장마가 시작되면 더 빨리 상할 거야.
아무래도 골병이 들었으니 속부터 곪아터질걸
곪아터진 그 구멍 속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날벌레, 풀벌레는 물론 생쥐, 멧쥐, 들쥐가
어찌어찌하다가 죽어 캄캄하고 우중충한 날
그 사체에서 ‘인(燐)’ 성분이 빛을 뿜거든.
우리는 그 불빛을 도깨비불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 나무는 몇 년 뒤에 도깨비버들이 되어
머잖아 여의도 샛강을 도깨비불로 밝힐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오명(汚名)을 벗어버리기 위한 ‘나무’의 몸부림이다.

 

▲ 왕버들 고목, ⓒ이승열(오마이뉴스, 2005.08.05.)

(계속)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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