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전투 승전 100주년을 맞아 봉오동전투와 최운산 장군의 삶을 기록한 책을 출간했다. 역사 사료와 지난 3년 동안 한겨레온에 연재했던 가족사를 모아 책을 엮었다. 평전 등으로 독립운동가 50여분의 삶을 기록한 원로 언론인이자 전 독립기념관 관장 김삼웅 선생의 추천사로 책 소개를 대신한다. 

"역사와 가족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은 봉오동대첩 실기"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1) 

광대한 대륙국가이던 고구려와 발해가 망하고 반도국가로 전락한 이래 우리 민족은 숱한 외적의 침략을 당하고, 1910년에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국치를 겪게 되었다. 4천년 역사, 3천리 강토, 2천만 민족이 왜놈들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왜적의 앞잡이가 된 매국노ㆍ친일파가 적지 않았지만,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국내외에서 싸운 애국지사도 수없이 많았다. 독립운동사에 고딕체로 기록된 지사들은 그나마 명예라도 회복되었으나 생명과 재산을 바쳐 싸우고도 망각 속으로 사라진 분들도 적지않다. 

올해는 봉오동ㆍ청산리대첩 100주년이다. 세계 식민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잔혹한 탄압 그리고 왜곡된 식민사관으로 한민족은 일제강점기를 패배와 굴종의 기간으로 그려진다.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산것처럼 인식되었다. 100년 전의 봉오ㆍ청산리전쟁은 ‘대첩’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큼 승리한 전투였다. 

양대 대첩이 있었기에 한민족의 상무정신이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고, 임시정부ㆍ의열단ㆍ한인애국단ㆍ조선의용대ㆍ광복군 등 무장독립운동의 정맥으로 전승되었다. 그리고 해방 후 4ㆍ19혁명→반유신투쟁→부마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당당한 민족운동사의 마그마로 작동한다.

이런 의미에서 1920년 6월 봉오동대첩은 독립운동사의 금자탑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치 이래 최초로 우리 독립군이 왜적과 싸워 승전했기 때문이다. 우리 독립군은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정예군 19사단과 싸우고 통쾌하게 물리쳤다. 일본군 사망자 157명, 중상 200여 명, 경상 100여 명을 내고,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 4명, 중상 2명으로 경미했다.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어떻게?’는 생략되거나 몇 사람의 영웅담으로 마무리되었다. 역사드라마라면 몰라도 ‘죽기 아니면 살기’의 전쟁에서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지도자의 전략, 무기와 병사들의 사기 그리고 병참이 일체가 되어야 승전에 이르게 된다. 봉오동전투는 이런 것이 갖춰져서 대첩을 이루었다. 그 중심에 최진동ㆍ최운산ㆍ최치용 형제들이 있었다.  

(2) 

봉오동전투는 최운산 형제들의 대한군무도독부, 안무와 홍범도의 국민회군, 여기에 대한신민단 독립군부대 등 연합부대가 이룬 전과였다. 국치 이래 최대 병력이 집결하여 대첩을 이루었다. 최운산 형제들의 숨은 공적이 지대했지만 그동안 역사에서는 묻혀지고 연구가들은 건너 뛰었다. 

 독립운동사 연구가들이 총론이나 개론에 머물다보니 최진동ㆍ최운산 4형제가 1909년부터 두만강변 봉오동에 터를 닦고 둔전(屯田)을 통해 군사를 양성하면서 연해주에 출병했던 체코군의 무기를 구입하여 일전에 대비해온 사실은 외면되었다. 

100년을 기다리다 못해 최운산 장군의 손녀가 직접 나섰다. 최운산의 부인이자 지은이의 할머니 김성녀 여사의 증언을 비롯, 중국측의 각종 자료와 단편적인 국내 사료를 모으고 현장을 답사하여, 역사와 가족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뒤늦게나마 봉오동대첩의 정사(正史)를 펴냈다. 

마치 한글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환산 이윤재선생이 외교의 힘으로 우리 땅 울릉도를 지켜낸 안용복(安龍福)의 일대기를 쓰면서 피력했던 견해를 방불케한다.  

우리가 매양 역사적 인물을 들매 그 인격의 숭고보다 작위(爵位)의 현달(顯達)을, 훈공(勳功)의 기위(奇偉)보다 위세의 혁렬(赫烈)을 더욱 주중(注重)할 뿐이요 몸이 초망(草莽)(‘풀더미의 뜻)에 묻혀 있어 민족을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그의 일생을 희생적 사공(事功)으로 마친 기다(幾多)의 호준(豪俊)이란 그의 한 일이 인멸되고 이름조차 전함이 없이 되고 만 것이 어찌 아깝지 아니하랴. 우리가 그러한 인물의 전기에서 얼마라도 남아 있는 일화(逸話)를 들추어내어 그의 편억척사(片言隻事)의 하나라도 알아보는 것이 어느 점에서 우리 역사의 정체(正軆)를 구함에 결핍이 없을 것이라 한다.(『동광』1.1.1926)

(3) 

책을 엮은 최운산 장군의 손녀 최성주씨는 민주언론운동가답게 팩트를 중심으로, 경쾌한 문장으로 독립운동의 대서사시 봉오동전투를 그리고 있다. 흔히 독립운동사가 건조하고 딱딱한 편인데, 이를 벗어난 것과 함께 묵은 흑백사진 대신 지은이가 직접 촬영한 칼라 현장사진이 더욱 입체감을 살려준다. 

일제강점 초기 연해주에 최재형 선생이 있었다면 만주에 최운산 장군의 일가가 있었다. 이들의 존재로 하여 봉오동ㆍ청산리대첩이 가능했고, 그곳이 해외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역시 내 손주답게 살았구나! 하고 미소 짓는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라며 지은이가「할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밝혔듯이, 100년을 갈마드는 손녀와 선대들의 역사인식이 무척 이채롭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란 미래를 잉태하고 있는 과거를 판단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immacole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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