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나는' 학생 민주화 운동가 유병진

양수철 옥천신문l승인2020.06.05l수정2020.06.0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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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진 열사, 민주화 자료 배포, 공정선거 감시인단 활동 나서기도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는 매년 3월 추모제 진행, 유병진 장학금 운영
추모기념사업회 강한진 회장 "앞으로도 선배님의 뜻을 따르겠다"

글 싣는 순서

1회: 옥천서 활동한 정차기 목사 인터뷰
2회: 민주화운동가 강구철 열사, 유병진 열사
3회: 옥천출신 민주화운동가 정형기 열사, 윤창영 열사
4회: 옥천출신 민주화운동가 송건호 선생 및 임창순 선생
5회: 옥천군 민주화에 앞장선 옥천군 농민회 및 지역노동단체
6회: 옥천 민주화운동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주민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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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읍 삼청리 출신 유병진 열사(1967~1988)는 학생운동을 하며 민주화 사회 실현에 앞장섰던 인물로 평가된다. 사진은 유병진 열사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제공: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페이스북)
유병진 열사
▲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공공정책대학 건물 앞에 자리한 유병진 열사 추모비

유병진 열사(1967~1988)는 학생운동을 하며 민주화 사회 실현에 앞장섰던 인물로 평가된다.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관련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대통령선거 공정선거 감시인단 활동을 하는 등의 노력을 펼쳤기 때문이다.

유병진 열사의 가족에 따르면 유병진 열사는 1967년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나 옥천읍 삼청리에서 나고 자랐다. 군남초-옥천중(31회)-옥천고(6회)를 거쳐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가정형편도 넉넉지 않았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다.

1985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그다. 86년 문예비평회에 가입하고 87년 문예비평회 회장을 역임하며 민주화를 위한 유인물 작성 배포 등의 활동을 했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민주화운동 관련 홍보 및 농촌봉사활동에도 앞장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후배를 위해 자신의 월세를 내어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유병진 열사는 1987년 대통령선거 공정선거 감시인단 활동 철야 작업을 진행하던 중 임시 학생회관 건물로 쓰이던 가건물에서 잠들었다가 불의의 화재로 질식했다. 결국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100여 일 간의 투병 생활 끝에 1988년 3월 25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유병진 열사의 시신은 화장 후 공주시의 한 강가에 뿌려졌다. 선·후배를 포함한 고려대 학생들은 유병진 열사의 생전 민주화운동의 뜻을 기리는 한편, 기억하기 위해 1991년 유병진 열사 진혼비를 학교에 세웠다. 유병진 열사의 추모비에는 약력과 더불어 "…청년 고대인의 표상이여 그 뜻을 기려 여기 하나의 돌을 세우노니…"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학생회관을 진달래관이라고 부른다. 유병진 열사 추모기념사업회 강한진 회장에 따르면 유병진 열사가 생전 진달래꽃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달래관으로 불리게 됐다고. 추모비를 세울 당시 학생들은 추모비 근처에 유병진 열사를 기리는 마음으로 진달래꽃을 심기도 했다. 진달래관(학생회관) 정문에는 유병진 열사의 동판이 부착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곳곳에 유병진 열사의 흔적과 열사를 기리는 마음이 묻어있다.

 

■ 유병진 추모기념사업회 운영. 매년 장학금 지급도

매년 3월 넷째 주 토요일,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서는 유병진 열사의 뜻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추모제가 진행되고 있다. 2012년에는 추모기념사업회가 만들어졌다.

특히 2014년부터는 졸업생들이 십시일반해 기금을 마련한 '유병진 장학금'이 운영되며 매년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기부되고 있다. 성적보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이 선발 대상이다. 올해까지 총 1억원의 장학금이 학생들에게 기부됐다.

유병진 열사의 추모제에서는 장학금 수여식뿐만 아니라 풍물 등 문화공연도 열리고 있다. 졸업생뿐만 아니라 재학생이 참석해 교류하는 뜻깊은 행사로 자리매김했다고.

유병진 열사 추모기념사업회 강한진 회장은 "유병진 선배님이 후배에게 방값을 내어준 마음을 함께하자는 의미로 장학회를 만들었다"며 "유병진 열사 추모제는 열사의 넋을 기리는 의미뿐만 아니라 재학생과 졸업생 간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총학생회 전현기(3학년, 고고미술사학 전공) 사무국장은 "입학할 때부터 유병진 선배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추모제도 계속 참석하고 있다"며 "한 사람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학교 선배님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최초의 단체라고 본다. 유병진 열사의 뜻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인간 유병진'

유병진 열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모두 그를 인간적이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유병진 열사와 한 방에서 함께 자취했었던 1년 후배 권혁술씨는 "병진이 형은 따뜻하고 자상하게 사람들을 대해주셨다. 솔선수범하며 앞장섰고 통일과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을 자주 해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유병진 열사의 5년 선배인 김종명씨는 "'종명이형!'하고 이름을 부르며 따랐던 기억이 선하다. 민주화투쟁에 적극적이지만 정감있게 사람을 대하는 후배였다"고 회상했다.

유병진 열사의 둘째 형 A씨는 유병진 열사를 착하고 똑똑한 동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A씨는 "병진이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형제 중 가장 공부를 잘했다"라며 "젊은 나이에 동생이 세상을 떠났기에 아직도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2년 후배 정승윤씨는 "병진이형은 권위적이지 않고 후배들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라며 "후배들은 형이 남겨준 의미와 발자취를 따라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공공정책대학 건물 앞에 자리한 유병진 열사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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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공공정책대학 건물 앞에 자리한 유병진 열사 추모비
▲ 진달래관
▲ 유병진 열사 추모제 모습. (사진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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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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