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테스레이(Banteay Srei) 사원'은 시엠립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차로 약 1시간 이동해야한다.

▲ 앙코르 와트에서 반테스레이 사원까지

차 안에서 가이드는 반테스레이 사원을 ‘크메르 예술의 보석’, ‘크메르의 진주’라고 했다. 한 점 한 점 바늘로 꼭꼭 찌른 것 같이 부조가 굉장히 정교하단다.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꼭 가봐야 할 두 곳을 꼽는다면 ‘앙코르 와트’와 ‘반테스레이 사원’이라고 가이드는 자신 있게 추천한다. 가이드 말이 사실일까?

'Banteay Srei'란 말은 크메르어다. 'Banteay'는 성채라는 말이고, 'Srei'는 여성 또는 미(美)라는 말이니 Banteay Srei는 ‘여인의 성채’ 또는 ‘美의 성채’라는 말이다. 두 번째 이름을 택한다면 城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말인데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 멀리서 본 반테스레이 사원 (사진 출처 : www.Needpix.com)

반테스레이 사원은 967년 라젠드라바르만 왕이 힌두교 시바신에게 봉헌한 사원이다. 하지만 이 사원은 앙코르에서 유일하게 왕실사원이 아니다. 이 사원 건축을 주도한 이는 '야즈나바라하'다. 그는 라젠드라바르만의 조언가(counsellor) 중 한 사람이었으며, 후에 자야바르만 5세가 된 왕자의 스승(guru)이었다. 야즈나바라하는 동생과 함께 공을 들여 반테스레이 사원을 건축했고, 라젠드라바르만이 사망하기 1년 전에 사원을 완성할 수 있었다. 위 사진에서처럼 이 사원은 왕이 건축한 대부분 사원과 다르게 아주 작은 사원이다. 규모가 작기에 최고의 아름다움을 집중해서 집어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 반테스레이 사원 위치도(이미지 캡쳐 : Books Guide Ancient Angkor)

위 평면도처럼 동서로 출입구가 있다. 동쪽 출입구가 정문이다. 신을 위한 사원은 동쪽으로 정문이 나 있고, 인간을 위한 사원은 서쪽으로 정문이 나 있다고 한다. 동쪽 출입구(E-Gopura)는 나무로 만들었다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다만 동쪽 출입구에서 사원을 향해 가는 길에 시바신 아내 '샤크티' 여신의 상징인 요니(Yoni) 위에 시바신의 상징인 남근석 링가(Linga)가 우뚝 서서 도열하고 있다.

반테스레이 링가의 모습은 아래로 들가면 볼 수 있다. 
https://www.flickr.com/photos/miguelitosql/5964241678/

벽은 세 개다. 외벽은 95 x 110m로 라테라이트 벽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벽과 중간벽 사이에 해자(垓字,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못)가 있다. 중간벽은 38 x 42m로 역시 라테라이트 벽돌담으로 만들었고 동쪽과 서쪽 끝에 출입구가 있다. 중간벽과 내벽 사이에는 갤러리 6개가 있다. 내벽은 대부분 무너졌는데, 내벽 내부에는 성소탑 세 개와 장서관(library) 두 개, Mandapa(기둥을 가진 장식 건물)가 한 개 있다. 

해자를 지나 제 2 출입구(Gopura 2)에 들어가기 전이다. 롤루오스 유적군보다 사람이 무척 많다. 뾰쪽 올라온 세 탑이 성소탑이고, 성소탑 양쪽으로 있는 건물이 장서각이다.

이 사원의 중요 특징은 4가지다. 첫째 붉은 사암 위에 새겨진 매우 정교한 장식 부조, 둘째 다른 앙코르 사원의 1/10 수준의 축소판. 셋째 도시와 뚝 떨어져 숲으로 반쯤 뒤덮인 평화로운 장소, 넷째 린텔과 페디먼트(린텔 위 삼각형 벽면)에 아주 압축적으로 설화를 조각했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라마야나(라마 이야기)’를 말한다. 인도, 동남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져 앙코르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이 설화는 앙코르 와트 벽면에도 나온다. 인도의 2대 서사시 중 하나로 라마왕의 모험 이야기다. 

가이드 설명을 간단히 옮겨보자면

"인도에 코살라 왕국이 있어 다사라타 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태평성대를 이뤘지만 왕에게는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어느 날 관계없이 태기가 들어서서 왕자를 낳았고 ‘라마’라 이름 지었다. 라마는 학문이 깊고 덕이 많았으며 활 솜씨가 뛰어났다. 라마 왕자는 성장하여 짝을 찾아 집을 떠난다. 이웃나라에서 시타 공주의 사위를 뽑는 경연대회가 열렸다. 큰 칼을 뽑는 자를 간택한다고 했는데 라마 왕자가 칼을 뽑아 시타 공주와 결혼하여 코살라 왕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악마대장 ‘라바나(Ravana)’가 세상을 구경하는 구슬을 보다가 시타 왕비의 미모에 반해 왕비를 납치한다. 하지만 라마 왕자는 이를 물리치고 왕비를 찾아온다. 악마대장은 시타 왕비를 다시 납치하기로 마음먹는다. 변신술 악마를 뽑아 금사슴으로 만들어 코살라 왕국에 보낸다. 석양에 비치는 아름다운 금사슴을 보고 왕비가 왕에게 잡아 달라고 한다. 왕은 금사슴을 쫓아가 화살을 맞혔으나 가서 보니 검은 연기로 변해이었다. 라마왕은 왕비가 생각나 급하게 돌아갔으나 이미 악마대장 라바나에게 왕비는 '랑카'로 끌려가고 말았다.

3년 동안 라마왕은 왕비를 찾아 헤매다가 어느 날 원숭이 왕국에 도착하게 된다. 원숭이 왕국에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하나는 ‘발리’로 폭군 형이고 다른 하나는 ‘수그리바’로 온유 형이었다. 아버지는 수그리바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발리는 아버지를 죽이고 수그리바의 아내를 빼앗고 수그리바를 쫓아냈다.

수그리바가 라마왕을 찾아와서 도움을 구한다. 라마왕은 수그리바에게 발리에게 결투신청을 하되 제일 높은 언덕에서 하라고 조언해준다. 언덕에서 결투를 벌이던 중 라마왕이 쏜 화살에 발리는 죽는다. 수그리바는 왕위를 되찾고 아내도 찾아온다. 원숭이 왕국은 평화를 되찾는다.

수그리바는 은혜를 갚는다고 원숭이 ‘하누만’ 장군과 원숭이 2만 명을 라마왕에게 보내 준다. 7년을 헤매도 찾지 못하던 중 시타 왕비가 바다 넘어 사막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누만 장군이 원숭이를 이어 원숭이뗏목다리를 만들어주어 사막에 도착한다. 3일간의 전투 끝에 라마왕은 라바나를 활로 쏘아 죽이고 왕비를 구출한다.

왕비는 10년이 지났음에도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라마왕은 왕비를 의심한다. 어느 날 왕비는 보라색, 빨간색 집채만 한 불기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왕비는 광장에 사람들을 모아 놓는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구덩이가 떨어진다. 왕비는 주저 없이 불구덩이로 들어간다. 잠시 후 불의 신과 함께 왕비가 나온다. 왕비는 결백을 증명하고 라마왕과 코살라 왕국을 평화롭게 다스렸다고 한다. 이후 라마를 일곱 번째 신으로 올리고, 라마를 신으로 숭배하게 되었다."

라는 설화인데 여기 저기 내용을 찾아보니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이제 붉은 사암에 조각한 '크메르의 보석'을 구경해보자. 먼저 제 1, 2 출입구의 린텔과 페디먼트다.  

▲ 제 1 출입구의 린텔과 페디먼트

제 1 출입구의 페디먼트에는 원숭이족 왕자인 발리와 수그리바의 결투 모습과 화살을 쏘는 라마왕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 제 2 출입구의 린텔과 페디먼트 부조
▲ 제 2 출입구의 페디먼트 부조
▲ 제 2 출입구의 부조
▲ 제 2 출입구 부조 

제 2 출입구 조각도 굉장히 아름답다. 여인들이 바늘로 꼭꼭 찍어 만들어 '여인의 성채'라 했다는 말도 있던데... 정말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 Mandapa 오른쪽에 있는 장서각 린텔과 페디먼트 부조
▲ Mandapa 오른쪽에 있는 장서각 페디먼트 부조

Mandapa 오른쪽에 있는 장서각의 린텔과 페디먼트 부조다. 특이한 점은 린텔 위의 페디먼트가 3겹으로 되어 있어 굉장히 화려하다. 마치 불꽃 잔치가 벌어지는 것 같다. 페디먼트 부조는 라마왕이 원숭이뗏목다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 Mandapa 왼쪽에 있는 장서각 옆 모습

Mandapa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과 왼쪽에 장서각이 있다. 왼쪽 장서각 측면 모습이다. 앞모습은 오른쪽에 있는 장서각과 거의 유사하게 독특한 3겹 페디먼트다. 측면 창에 밸라스터 기둥이 보인다. 뒤에 보이는 Mandapa에도 밸라스터 기둥이 보인다. 바콩 사원 장서각의 밸라스터보다 작지만 더 섬세하다.

▲ Mandapa
▲ Mandapa의 페디먼트 부조
▲ Mandapa의 린텔 부조

Mandapa는 기둥을 가진 부속건물을 말한다. Mandapa 출입구로 곧장 들어가면 중앙 성소탑을 만날 수 있다. 성소탑도 아름답지만 Mandapa가 제일 아름답다는 사람들도 있다. 성소탑 3개와 Mandapa, 장서각 2개를 싸고 있는 내벽은 무너졌다. 자칫하면 관광객에 의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는지 나무 막대에 줄을 이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았다. 좀 떨어져서 볼 수 있어 아쉽지만 정말로 잘한 일이다. 

▲ 중앙 성소탑으로 어어지는 Mandapa (사진출처 : 위키미디어)

일반인들은 중앙 성소탑을 찍기 어렵다. Mandapa가 중앙 성소탑 바로 앞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중앙 성소탑은 잘 보이지 않는다. 중앙 성소탑 앞을 지키는 까만 존재는 뭘까? 

▲ 왼쪽 성소탑 동쪽 방향 모습
▲ 왼쪽 성소탑과 성서탑을 지키는 원숭이족

성소탑은 5단으로 되어 있다.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어도 왼쪽 성소탑은 정면(동쪽)을 정확히 볼 수 있다. 롤루오스 유적처럼 동쪽으로 열린 출입문이 있고 다른 세 방향은 닫힌 문이다. 이 닫힌 문에 새긴 부조 역시 굉장히 섬세하다. 왼쪽 성소탑을 지키는 원숭이족도 만날 수 있다. 오른쪽에 중앙 성소탑이 살짝 보이는데 벽면에 남신이 새겨져 있다. 왼쪽 성소탑 정면 벽면에는 여신이 새겨져 있다. 중앙 성소탑은 시바신을 위한 탑이고 양쪽 탑은 시바신 아내를 위한 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왼쪽 성소탑의 벽면 부조와 중앙 성소탑 벽면 부조(남신이 조각되어 있다)
▲ 왼쪽 성소탑의 닫힌 문 부조

왼쪽 성소탑 벽면에서 보이는 여신의 부조는 프레아 코 사원이나 바콩 사원에서 봤던 여신상과는 좀 다르다. 아주 풍만하고 손가락 자세하며, 하늘거리는 치마, 허리장식 등이 요염한 여인의 생생한 자태다. 탑을 수호하는 자비의 여신 데바타(Devata)가 아니라, 춤의 요정 압사라 여신이 아닐까 싶다. '앙드레 말로'가 훔쳐가려고 했다고 하니..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 중간벽과 외벽 사이에 있는 갤러리 입구
▲ 갤러리 입구의 린텔과 페디먼트 부조

중간벽과 외벽 사이에는 갤러리는 6개가 있다. 그 입구를 다 찍진 못했지만 위 2개 입구만 봐도 말할 수 없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 세 성소탑

세 성소탑의 측면 모습이다. 왼쪽 성소탑 뒤로 중앙성소탑의 옆모습이 보인다. '미의 성채'란 말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다.  

세 성소탑 뒷모습이다. 

사원을 나가는 서쪽 문이다. 이런 보석을 보게 해준 크메르 제국과 캄보디아에 감사하며 떠날 시간이다. 다시 또 와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사실 언제 다시 올 지 기약할 순 없다. 눈으로 보고, 사진에 담고, 마음으로 감탄하고 돌아 나오면 되는데... 이 보물들을 훔쳐가려는 이들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반테스레이 사원은 1914년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발견했다. 1923년 프랑스인 '앙드레 말로'는 여신상 4개를 몰래 뜯어냈다. <인간의 조건>을 쓴 그 유명한 소설가 ‘앙드레 말로’다. 그는 즉시 잡혔고 여신상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말로는 이 일로 프놈펜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이 사원은 더욱 유명해졌다. 이외에도 그는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많은 조각상을 도굴해 프랑스로 가져갔고,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왕도로 가는 길>에는 도굴 장면이 묘사되기도 한다. 후에 드골 정권은 앙드레 말로를 프랑스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문화재 도적질 나라 프랑스다운 임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 첨언 : 사진과 설명이 틀릴 수 있습니다. 혹 틀린 점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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