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로소이다 5. 초인(超人)의 기억

초순진의 회상 안지애 편집위원l승인2020.06.08l수정2020.07.3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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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초인의 기억 : 초순진 회상편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이름 때문에 많은 놀림을 당했다. 반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놀림은 반복되었다.

“초순진 왔다. 아니 얼마나 순진하길래 초순진인거야?”

“아니던데? 저번에 입고 온 옷 보면 그렇게 순진하지 않은 것 같던데?

“그럼 초날라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하하하하”

“초바보가 아니라 다행이지.”

아이들은 자신들의 대화가 얼마나 유치하게 들릴지 생각지도 않고 그냥 떠들어댔다. 아마 그들의 목적은 나를 놀리는 데 있다기보다는 약자를 해하는 유치함과 사악함을 공유함으로 어리석고 쓸데없는 순간적 동질성을 느끼기 위함이리라. 외로운 아이들일수록 나를 놀리는데 동참했고, 으스댔으며 내가 그들의 놀림에 아랑곳하지 않아 할 때마다 높아진 게임 레벨에 도전하듯 괴롭힘의 강도를 높여갔다.

아마 그날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서재에 몰래 들어간 날이.

창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오후 4시가 아니라 늦은 저녁같이 먹구름이 짙었다. 종례를 마치고 선생님이 나가자 아이들은 그날따라 심하게 나를 놀려대기 시작했고, 초로 시작되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노래를 불렀다.

“초날라리 초순진 초싹대다 초하룻날 초 쳤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그들의 놀림을 무시했고 말없이 책가방을 메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초인!”

보지 않아도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만으로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백상훈. 굵고 깊은 그의 목소리와 고등학생답지 않던 풍채는 누가 보든 그의 존재를 단번에 각인토록 했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초인! 너 부른 거 맞아. 초순진.”

초인(超人). 교과서에서 서양철학자들을 배울 때 들어봤던 단어였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친구가 다른 아이들처럼 나를 놀리기 위해 부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저런 고상한 철학적인 별명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가 다가오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초인! 넌 오해되기보다는 이해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친구가 머쓱한 듯 웃음 지으며 말했다.

“이 말 멋있지 않냐? 사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니체가 한 말이야. 진정한 철학자는 오해되기보다는 이해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고. 그런데, 오해를 하든 이해를 하든 일단 네가 기회를 줘야 시작되지 않겠어? 네가 그렇게 철창을 사방으로 쳐버리면 쟤네들은 계속 바보처럼 굴 텐데. 귀찮지 않아?”

나는 처음 들어보는 질문에 약간의 호기심도 생겼지만 여전히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그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래도 침묵을 택하겠다? 초인답네. 뭐. 그럼, 잘해봐!”라고 말하고 걸어갔다.

무엇을 잘해보라는 말이었을까.

잠시 후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 친구는 뒤돌아 한마디 덧붙였다.

“뭐가 되든 말이야.”

집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습관처럼 벨을 눌렀지만 집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서재에 있기 때문에 현관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언제나 아버지였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아버지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번호 키를 누르고 집에 들어갔다.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부르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서재 문을 두드렸다.

“아버지, 안에 계세요?”

여전히 대답이 없어 서재 문손잡이를 살며시 돌려봤다. 문손잡이를 돌리는 것은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집에 아버지가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내가 9살 때쯤인가 보다.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없었고 그날 이후로 다시는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집에 올 때마다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부르며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서재 문이 열리면 아버지가 있었고 잠겨 있으면 아버지가 집에 없었다.

아버지는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서재에서 보냈지만 절대 누구도 허락 없이 서재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가 아무 말 없이 집을 떠난 데에는 아마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나도 울고불고 붙잡으며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어머니는 자신이 없어도 우리 둘이 잘 살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서재의 문을 열었는데 아버지가 집에 없으면 잠겨 있어야 할 문이 스륵 열렸다.

“아버지?”

불러도 여전히 기척이 없다. 아버지가 없을 때는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문인데. 갑자기 누군가 심장을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았다. 들어가 봐도 될까. 나는 보통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도 되는 것조차 하지 않는 편이었다. 아마 내 유전자 속에는 무언가 조심하고 또 조심하게 하는 그런 것이 들어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언제나 날을 세우고 관찰했고, 쉽게 반응하지 않았다. 행동하기보다 기다렸고, 먼저 말하는 대신 들었다. 그런데 쿵쾅거리는 심장이 더 부추기는 것 같았고 내 발은 호기심을 따라 움직였다.

문지방을 넘어서는 데 금천(禁川)을 넘어서는 것처럼 가슴이 떨려왔다. 5학년 때 단체 수학여행에서 경복궁에 놀러 가 처음 금천교를 보았다. 성스럽고 금지된 공간을 다른 모든 공간과 나눠 놓은 다리. 충격적이었다. 해설사 선생님은 궁궐에는 금천과 금천교가 있고 금천은 성과 속을 나눠주는 상징적 건축 장치라고 했다. 지금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서재로 들어가는 순간 이 문지방은 금천이자 금천교였다. 넘어서는 안 되는 장소지만 또 이어주기도 하는 곳. 그리고, 그 금천을 넘어서면 절대 지금까지의 성(聖)과 속(俗)이 더 이상 절대적인 성과 속이 아닐 것이라는 것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 (주)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심창식 편집위원과 안지애 객원편집위원의 릴레이 글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안지애 편집위원  phoenic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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