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요일 오후에 대학 동기 친구의 딸 결혼식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귀가 도중에, 잠시 송파구 관내 공원 화장실에 들러 잇몸이 불편해서 양치질을 하다가 느낀 생각을 끄적여 본다.

마침 하나뿐인 세면기 앞에서 열심히 이를 닦고 있을때 내 또래의 노령자가 마스크를 쓰고 들어와 볼일을 보고있길래, 손을 닦고 갈수 있도록 종이컵에 담긴 물을 들고 한쪽으로 비켜서서 양치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자 얼른 손을 닦고난 그 사람은 그게 고마웠던지, 손짓으로 세면기로 와서 닦으라는 시늉을 하며 나가는게 아닌가?
배려라고 할수도 없는 아주 작은 행동으로 처음 만난 그와 나는 서로 마음이 열린 이웃이 된 것이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는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떠올렸다. 내가 먼저 행한 지극히 작은 배려가 나에게 그대로 돌아오는 이러한 인간관계가 진정 따뜻한 인간다운 사회를 이루는 기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눈꼽만큼도 배려하는 마음없이 숨을 쉴수 없게 목을 짓누르고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 오만한 미국 사회의 백인 경찰이야말로, 어쩌면 예수 생존 당시의 식민지 백성을 대하던 로마제국의 병정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라는 생각도 들게되었다.

삼가, (비록 예전에 비행을 저지른 전과가 있다고 하지만) 단지 위조지폐 사용 혐의라는 이유로 대낮에 고통스럽게 비명횡사를 당한 플로이드의 명복을 빈다. 

~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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