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에 평생을 투신한 정형기 열사의 삶

양수철 옥천신문기자l승인2020.06.19l수정2020.06.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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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 강청리 출신 정형기 열사, 노동운동에 한 획을 그은 인물
기아차 노조 건설 및 노동자 권리 쟁취,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정형기 열사 아들 정준태씨 "아버지는 정의로운 삶을 몸소 보여주신 분"

글 싣는 순서

1회: 옥천서 활동한 정차기 목사 인터뷰
2회: 민주화운동가 강구철 열사, 유병진 열사

3회: 옥천출신 민주화운동가 정형기 열사, 윤창영 열사
4회: 옥천출신 민주화운동가 송건호 선생 및 임창순 선생
5회: 옥천군 민주화에 앞장선 옥천군 농민회 및 지역노동단체
6회: 옥천 민주화운동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주민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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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기 열사는 기아차 노조 건설 및 노동자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했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된다. (사진제공: 정준태씨)

정형기 열사(1958~2009)는 기아자동차 민주노조 건설 및 노동자 권리를 위해 최전선에 나서는 등 민주화운동에 온몸을 던진 인물로 평가된다. 평생을 어용노조를 철폐하기 위해 앞장섰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숱한 투쟁을 벌였다.

정형기 열사의 가족에 따르면 정형기 열사는 1958년 10월 4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옛 옥천경찰서 관사(현 옥천양조장 옆)였다. 아버지 정찬용 옹은 옥천경찰서 경찰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관사에서 살고 있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아버지가 경찰직에서 좌천되면서 가족들과 정형기 열사는 이원면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족들은 좁은 초가집에서 근근이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 아버지 정찬용 옹은 후에 옥천 출신 국회의원이자 박정희 대통령의 손위처남인 육인수 의원이 제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남부3군민주공화당 조직부장을 시작으로 사무국장까지 맡았다. 옥천군 조합장을 6년 동안 하기도 했다.

정형기 열사의 평전 '돌팔매질을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는 남자'에 따르면 정형기 열사는 어릴 때부터 강직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이원초등학교 재학 당시 담임 교사가 술을 마시고 수업에 들어오자 정형기 열사는 항의했다. 그러자 선생이 어린 열사의 뺨을 때리며 야단을 쳤다. 부당함을 느낀 정형기열사는 돌을 던지며 이원초등학교 유리창을 깨버렸다고 한다. 이후 학교에서 사실을 알게 되자 당시 교장은 다음날 정형기 열사의 반을 바꿔주기도 했다고.

공부를 잘했던 정형기 열사는 옥천중학교를 거쳐 당시 명문이었던 대전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충남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가 중퇴하고 서울대에 입학했다. 정형기 열사의 형인 정웅기씨(65, 이원면 강청리)에 따르면 충남대학교가 군사정권에 영합했을 뿐만 아니라 정권을 비판하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자존심 상해했고 입시 공부를 다시 해 서울대학교로 입학했다고. 그러나 정형기 열사는 서울대학교를 중퇴하고 1984년 기아자동차 현장 노동자로 입사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정웅기씨는 "형기는 어린 시절부터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강직하고 뚝심 있었다"라며 "노동운동에 투신한 동생과 달리 아버지는 공화당 당직자를 맡는 등 보수 성향이셨다. 형기와 아버지는 밤새 정치와 관련해 토론을 펼치곤 했다"고 말했다.

 

■ 노동운동에 앞장서며 기아차 노조 역사에 한 획을 긋다

평전에 따르면 1980년대 당시 기아차 노조는 사측의 비위만 맞추는 어용노조였다. 정형기 열사는 1987년 4.27 어용노조 민주화 투쟁을 일으키며 어용노조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군사정권에 의해 구속·해고됐다. 1991년 기아자동차 6·28 투쟁(어용 노조에 반발해 새로운 노조를 만드는 투쟁)으로 3년간 수배됐다. 해고 중인 상황이었지만 정형기 열사는 기아자동차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를 만드는 등 현장 투쟁을 지속했다. 1986년 5.3인천사태(인천에서 신한민주당의 개헌추진위원회 경인지부 결성대회가 재야세력 및 학생·노동운동권의 시위로 무산된 사건)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기아차 화성공장에 복직한 후에도 현장 조직 결성 및 노동교육,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2000년에 들어서서는 민주노총 1기 노동자 통일선봉대 대장을 직접 맡으며 통일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앞장섰다. 또한 정형기열사는 민주노동자회라는 현장조직을 만들어 대기업·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노동자들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전국 노동현장을 방문해 교육활동 및 현장 조직화 활동을 하던 중 2009년 4월10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형기 열사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정형기열사 추모사업회는 매년 추모제를 열고 있다.

정형기 열사와 함께 활동했던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김진영 선전교육실장은 "형기 형님은 노동운동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헌신적으로 활동했다"라며 "본인은 해고와 수배를 당하는 등 모진 일을 겪었지만, 기아차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등 공신으로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옳은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앞장섰던 분이다"라고 덧붙였다.

 

■ 뚝심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정형기

평생을 노동자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온 정형기 열사. 정형기 열사의 형 정웅기씨는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동생이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 힘들게 살아온 동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동생이 수배를 당하고 재판장에 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걱정스러웠던 가족들이었다.

정웅기씨는 "형기가 해직됐을 당시 김포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면서 민주화·노동운동을 위한 자금을 모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노동운동을 하며 살아왔던 동생이었다"라며 "법정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당당했던 동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강한 자엔 강하고 불의에 저항했지만, 약자를 배려하고 지키려 했다"라고 말했다.

정형기 열사의 아들 정준태(30, 충남 천안)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노동운동 현장에서 투쟁하는 이들을 보며 자라왔다. 정준태씨는 아버지의 행보가 자랑스럽고 아버지를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었다. 정준태씨는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투쟁 현장에 갔었다. 아버지가 전경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 구석에 숨어있기도 했었다"라며 "아버지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노동자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노조 내에서도 위원장이 되는 등 힘을 갖게 되면 권력을 남용하기 마련인데 아버지는 항상 그런 것들을 경계하셨다"라며 "아버지 덕분에 노동이나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두게 됐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려주신 분이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칭찬받아 마땅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형기 열사가 아들 정준태씨와 함께 시위에 참석한 모습 (사진제공: 정준태씨)

 

▲ 정형기 열사는 기아차 노조 건설 및 노동자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했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된다. (사진제공: 정준태씨)
▲ 정형기 열사는 기아차 노조 건설 및 노동자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했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된다. (사진제공: 정준태씨)
▲ 1989년 이종대열사 분신 이후 복직 투쟁하는 정형기 열사(사진제공:정준태씨)

 정형기 열사는 기아차 노조 건설 및 노동자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했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된다. (사진제공: 정준태씨)

▲ 노조활동을 하는 정형기 열사 (사진제공: 정준태씨)
▲ 기아차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정형기 열사(사진제공: 정준태씨)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양수철 옥천신문기자  minho@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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