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념 역사현장답사 2 - 한양도성 인왕산구간

시인의 언덕에서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보고 이곳에 있는 다른 시들을 안내받았다.

다시 내려와 인왕산길을 따라 한참 걷다가 군부대를 피한 다음에야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접어 들었다.

한양도성을 따라 걸었으면 좋았을 텐데 군부대 때문에 이렇게 도성을 멀리 두고 돌아서 가는 것이 도성 답사단으로서는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아직까지도 군사시설 때문에 도성을 제대로 갈 수조차 없다면 이게 무슨 문화유산이 되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DSC02307.jpg

문학관을 나선 다음부터는 신치호님이 해설을 맡아 진행하셨다.

시인의 동산부터 시작된 차근차근한 해설은 역시 달인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와 궁궐 문화유산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어 '문화해설'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자주 “흔히 말하기를 문화유산해설사는 학사 위의 석사, 석사 위의 박사, 박사보다 한 수 위인 박사위의 잡사<雜士>라 한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문화유산 해설을 하다보면 다방면으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 지리, 자연, 풍수지리, 심지어는 숲해설까지 알고 있지 않으면 엉뚱한 질문에 곤혹을 치르기도 하거니와 좀 더 재미나게 이야기 할 소재가 없기에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오늘 해설을 맡은 신치호님은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의 연구원으로 술술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모자람이 없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DSC02286.jpg

한양도성의 성벽 부분에 도착을 하자 곧장 여장에 대한 설명과 함께 부암동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됐다.

무개정사와 현진건 가옥이며 부암동이란 이름이 생기게 된 연유까지 해설에서 빠뜨리지 않았다. 도성의 축성에 대한 해설은 축성 연대와 돌의 특징, 그리고 각자 성석에 대한 이야기까지 연대를 줄줄이 외워가면서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그런 재주가 있다 싶을 지경이었다.

DSC02289.jpg

DSC02332.jpgDSC02336.jpg

여장의 살받이와 원총구 근총구의 쓰임, 그리고 부개석의 쓰임에 까지 다양한 정보와 건축학적인 이유, 그런 사실에 비추어 잘못 복원된 부분에 대한 지적까지 아끼지 않았다.

멀리 삼각산의 봉우리들이며 탕춘대성의 이야기, 그리고 한양도성의 축성 연대를 자세히 설명했다.

신치호 해설사는 “1396년 태조 때 최초 축성의 상당부분이 토성이었으나 허물어지고 보수가 필요하게 되어, 1426년 세종임금이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1704년부터 10년까지 숙종조에는 돌을 다듬어서 제대로 축성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전쟁으로 허물어지고 쇄락한 성을 고칠 수가 없었던 까닭은 청과의 화의조건 때문이었다. 청이 함부로 전쟁준비를 하지 못하게 막아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그냥 둘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순조 때에 정사각형에 가까운 성돌을 써서 축성을 하였으며 이 때 각자성석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유네스코문화유산 등록에 상당한 중요 자료가 된다”고 했다.

DSC02293.jpg

 

뿌리가 무려 10m도 더 뻗어 흙에 밝힌 생명력의 진수를 보여준 소나무

△뿌리가 무려 10m도 더 뻗어 흙에 밝힌 생명력의 진수를 보여준 소나무

DSC02321.jpg

△해설에 열심히 신치호님

중간쯤에 이르러서 '대천바위'라는 바위를 잠시 보았다.

보통 때는 그냥 스쳐 지나치고 말았던 곳인데, 바위 위에 각자가 있었다. 그 바위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바위이었단다.

DSC02311.jpg

이 대천바위를 지나 올라가니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보초병은 우리에게 소속이며 사진 찍는 방향들을 일일이 간섭했다.

또 어느 분이 찍은 사진을 점검하고 확인해 지우도록 하는 등 도무지 이 정도로 보호해야 할 것이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시정모니터 활동의 일환인데도 안되는 것인지 묻자 군인들은 "그러기에 더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자신들이 못 찍게 막고 있는 부분이 공개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DSC02323.jpg

아쉬움을 뒤로 하고 시차바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실 홍제동쪽에서 보면 진짜 기차 같아 보이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보이는 부분을 기차바위라 한다하여 조금 섭섭했다.

이 곳은 우리 동네에서 올라오면 성곽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이라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그런데 이곳 성곽은 2010년 이후 완성된 부분이라 색부터가 달라 보인다.

마지막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마치 꽂아둔 책같이 보이는 책바위가 보였다.

이 바위는 과거가 있을 때 많은 선비들이 만지며 기를 받아 응시했다는 전설이 숨어 있었다.

DSC02316.jpg

또 다른 치마바위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자연 현상으로 생긴 주름치마 모양의 골이 생긴 까닭과 중종과 신씨 부인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는 나도 자주 들먹이던 부분이다.

DSC02330.jpg

 

DSC02328.jpg
△여러 모양의 바위들

사실은 정상에 오르면 내가 만든 자료를 보이고 신치호 해설사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려고 하였지만, 시간이 바빠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오히려 사직 쪽으로 내려가면서 범바위, 달팽이 바위, 선바위, 그리고 국사당까지 정말 자세한 설명을 할 시간적 여유는 없고 이야기를 하여야 할 곳은 많아서 정말 힘들어 하였다.

너무 시간에 쫓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끝날 시간이 거의 다가오고 있었으니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필운대 황학정 등을 지적하면서 이야기하는데 도무지 어디를 말하는지 모른 채 그냥 스쳐 지나고 말았으니 다음에 차분하게 일일이 찾아보며 한 번 답사를 하여야 할 것 같다.

DSC02334.jpg

아직도 딜쿠샤와 경교장을 봐야 할 일정이 있어 하는 수 없이 바위들에 대한 것은 "생긴 모양에 따라 이름을 붙였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편집=최홍욱 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