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고야 맙니다. 이것을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와 정반대로 어차피 헤어질 사람은 헤어지게 되어있다고들 합니다. 이를 두고 악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인연인지 악연인지는 세월이 흘러가야 알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살다보니 인연이었더라 혹은 악연이었더라. 나중에 느끼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일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배우자가 인연인지 악연인지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가급적 끝까지 인연으로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각자의 노력이 전제가 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세상의 이러저러한 모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좋은 취지로 잘 해보자고 결성된 협동조합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서로를 비난하며 분열상을 보이곤 합니다. 누구 편을 들지가 관건이 되기도 합니다. 조합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여론전을 벌이는가 하면 상대를 비난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논쟁은 '저리 가라'일 정도입니다.

▲ 인연 - 손에 손 잡고

상황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이 모든 사태의 근원입니다. 인연이든 악연이든 상대방의 관점을 무시하고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상대방을 '악의 축'으로 간주하는 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접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파국은 불을 보듯 훤한 일입니다.

누가 그 자리에 있든지 그런 상황에서라면 어쩔 수 없었을 거라는 이해심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이미 무너진 것과 다름이 없을 겁니다.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지 혹은 악연을 다시 인연으로 만들어갈지는 오로지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리하면 더 이상 이 세상에 악연은 없을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악연이 사라지는 정도만큼, 세상은 그만큼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편집 : 김혜성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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