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밤이면 밤마다 '힘있는 놈들하곤 애초에 싸우지 말았으면...'이라고 후회하곤 합니다. 먹고살만 해졌다고 생각하고 늦둥이도 낳았는데 오히려 큰놈들보다 못 먹여서 덜 컸어요. 집안이 풍비박산나며 우유도 제대로 못 댔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군대갔는데 최전방에 배치를 받았더라구요. 아직 첫 면회도 못갔습니다."

서울 강동구 ㅅ동, 재건축이후 5억 원을 호가하는 대단지 아파트가 있다. 이 아파트는 국내 굴지의 재벌 회사가 기존에 있던 낡은 아파트를 재건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건축 조합원 몇몇은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비리 조작을 이유로 이 재벌 건설사와 송사에 휘말린다.

그들 중 한 사람 윤진수씨는 "재건축에 따른 환급금을 받아야하는 상황에 오히려 수천 만 원의 추가분담금을 내라는 회사의 요구에 불응했으나 결국 재판에서도 석연치 않게 지고 결국 회사가 나를 채무자로 규정하고 새 아파트를 경매처분하자 나는 할 수 없이 일부 금액을 납부하여 경매만은 막았다"며 지금도 그때 미납한 원금과 이자때문에 압류상태에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애초 재건축 당시 재건축조합측과 건설사의 담합 속에 현재 우리 아파트는 세 개 단지로 구성됐지만, 실제 공문서상 필지가 한 개이므로 각 단지는 실제 한 개 단지로 봐야하는데 건축물대장상 아파트 지하주차장 공유면적을 보면 26평형 세대의 경우 27.15제곱미터가 배정된 반면 33평형A형 세대는 17.92제곱미터, 3단지인 33평형B형 세대는 아예 배정도 안되었다"며 "이것은 명백한 오류로 정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오류가 재건축 당시의 비리와 관계있다고 믿는다.

실제 이 아파트 3단지에는 지하주차장이 없다. 그래서 3단지 주민은 1, 2단지 지하주차장을 사용하게 되어 있는 상황이다. 물론 1, 2단지와 거리가 떨어져 있어 실제 사용 용이성이 낮지만 현행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 12조에 따르면 3단지 거주자들에게도 지하주차장 공유지분을 배정해야 한다. 이 법은 각 공유자의 지분은 그가 가지는 전유부분의 면적 비율에 따름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윤진수씨는 구청에 민원을 제기, 건축물대장 수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당 구청은 윤씨의 요구에 대해 1, 2단지와는 도로를 경계로 떨어져서 위치한 3단지에는 지하주차장이 없어 '각 단지에 설치되어 있는 지하주차장 총 면적을 각 단지별 세대별 전용면적 비율에 따라 배분했으므로 건축물 대장이 정정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서를 보내왔다.

'정의롭게 옳은 일을 위해선 타협하지 않는다'는 소신으로 살아온 날이 남긴 것은 껍데기만 남은 33평 아파트 1채다. 지금도 압류중이라서 팔고싶어도 팔 수 없다. 그동안의 밀린 원금과 이자를 이유로 오히려 회사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를 거리로 내몰 수 있다. 젊은시절, 아이들을 위해 충정로를 희망차게 달리던 그의 발걸음은 이제 위태롭게 비틀거린다.

수많은 시민단체들과 만나봤고 많은 정치인들에게 전달해봤고, 여러 기관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그 순간 뿐이었다. 이들에게 그는 여전히 '주차장 문제만을 이야기 하는 융통성 없는 노인'이라는 편견만 남았다. 고급 아파트에 살며 가난한척 하고 다닌다거나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하는 악성 민원인이라고 비아냥으로 그의 병든 무릎은 또 한번씩 꺾인다. 젊고 유망한 기술자로서 밝은 미래를 꿈꾸던 한 가족의 가장은 이제 병든 아내를 수발하며 67만원 국민연금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병약한 노인이 되었다.

재벌 회장처럼 금융그룹 하나, 전자회사 하나, 바이오 벤처기업 하나씩 떼어 물려줄 능력도 없고, 휠체어와 약물과 국민연금에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가난한 부모지만 자식에게만은 세상 그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만은 같다. 그의 목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줄만큼 여유롭지 않은 세상이 아쉽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이대원 주주통신원  bigmot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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