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간도(橫看島)"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도서(島嶼) 조(條)'에  영암의 부속 도서로 기록된 이 섬은 완도군 소안도에 속하는 섬으로, 밀양 박씨와 창령 황씨가 처음 입도(入島)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후손이 남아있지 않아 입증할 길이 없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김해 김씨가 입도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1971년에는 115가구에 690명이 살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1994년 당시 조사에 의하면 김해 김씨를 비롯하여 73가구에 171명(남71, 여100)이 살고 있었는데, 2019년 현재는 72가구에 121명(남55, 여 66)이 살고 있다.

▲ 횡간도 본섬

                      

이 섬 이름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수하 수병들이 거북선을 타고 이 섬 부근에서 왜군을 몰살시켰다는 말을 듣고 왜적들이 이 섬을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피해갔다고 '비낄 횡(橫)'자와 '볼 간(看)'자를 써서 횡간도라고 하였다고 한다. 명종실록(1554)에는 횡간도 인근에 머물던 왜구 15명을 잡아죽였다는 기록도 있다.  

    

▲ 횡간도 사자바위

                                                                                                                                             

횡간도의 산꼭대기(해발 200,6m)에 큰 바위를 사자바위라고 하는데 바위의 생김새가 큰 사자가 입을 벌리고 포호(咆號) 하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에는 많은 풍란이 자생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개가 낀 날이나 밤에도 그 냄새로 뱃사람들은 현재의 위치가 어디인줄 알만큼 풍란이 많았으나 란 애호가?들에 의해 거의 다 없어졌다고 한다.

이 섬은 다른 섬에 비해 산출되는 농산물이 많은 편이어서(~매주보리 2000가마, 고구마 2000가마) 농사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톳은 약 600톤가량 된다고 한다. 한때는 김양식도 하였으나, 지금은 전복양식으로 남부러워 할 것이 없는 부유한 섬이 되었다.                     

마광남 주주통신원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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