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칼 댄 여자와 목에 칼 댈 남자

심창식 편집위원l승인2020.07.10l수정2020.07.1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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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목의 인연은 인류역사만큼이나 길고 오래되었다. 칼만큼 목에 치명적인 도구는 없다. 칼은 목을 베고싶은 충동과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 자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듯 보인다. 목은 칼 앞에서 순하디 순한 양처럼 무기력하기만 하다.

칼의 공포는 현대 이전의 과거 역사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칼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자아낸다. 전쟁영화나 조폭영화를 보면서 칼의 공포는 일상에서 상상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칼은 인명을 구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칼에 목을 대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한낮에 누군가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고 상상해보라. 생각만 해도 으시시하다.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길래 여인은 저들의 칼 앞에 자신의 목을 맡겼을까. 그것도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저들의 칼에 자신의 목을 들이댔으니 그 사연이야 오죽했으랴.

목을 매는 것도 사정이 딱한데 목에 칼을 댄다는 건 급박한 사연이 있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겉인상으로 봐서는 죄를 짓거나 몹쓸 잘못을 지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인은 상냥해 보이고 인품도 있어 보인다. 

야수 같은 자들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여인의 심장은 요동치듯 떨렸을 것이고, 정신은 혼미해져 저 지옥 밑바닥의 나락을 헤맸을 것이다. 나중에는 저들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체념을 했을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순한 양처럼 저들의 칼에 자신의 목을 그리 쉽게 내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법은 어디 있는가. 도덕은 어디에 쳐박혀 있는가. 저들의 무도한 칼을 제어할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가. 오직 자신의 안위와 쾌락만 보장되면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불쌍하고 가련한 여인의 목에 칼을 대건 말건 아무 상관도 없다는 말인가.

나는 조용히 분개했지만 그렇다고 광화문광장에 홀로 1인시위라도 벌일 만큼 그 일에 개입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차분히 사태를 관망할 뿐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은가. 칼부림의 현장에 가까이 가고 싶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들 몸 사리고 혹시나 닥칠 위험은 미리미리 피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놀랄 일이 벌어졌다. 목에 칼을 댄 여인이 산 채로 살아 돌아왔다. 목에 칼을 대고도 살아남았다면 그녀는 아마 마녀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야 한다. 저들의 시퍼런 칼에 목을 베이고도 살아남았다면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 곡절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나도 언젠가 목에 칼을 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나도 저들의 위협에 넘어갈 뻔 한 적이 있다. 나는 단호히 그들의 위협을 거부했다. 죽일 테면 죽여 봐라!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으련다! 나는 끝까지 버티고 버텼다.

그런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사실 확신은 없다. 그들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나의 목이 먼저 저들의 칼을 원할지도 모른다. 칼은 본능적으로 목을 원하고, 목은 어느 순간 칼 앞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게 될지 모른다.

목이여! 목이여! 나의 목이여! 부디, 칼을 멀리하라!

칼아! 칼아! 무시무시한 칼아! 나의 목에서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거라.!

갑상선 과잉진료에 대해 말들이 많다. 검사결과 암이냐 종양이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의료진들이 목에 칼을 댈 것을 권유한다. 얼마 전 알고 지내던 이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목에 칼을 대는 수술을 받은 그녀는  항생제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무사히 목숨(?)을 건졌다. 지금 잘 살고 있다.

나는 고민이다. 목에 칼을 댄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갑상선 결절이나 암은 반드시 수술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잘 관리하면 목에 칼을 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죽는 날까지 목에 칼댈 일이 없기를 빌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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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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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호진 2020-07-11 03:47:43

    목에 칼을 베이고도 살아남은 자를 알고있다. 다만 윗사진에 설명을 붙여주면 그형상에 있는 천평의 의미를 알았을것을 이리 답답하게 보는 독자를 테스트 함이로니 제발 이해력을 테스트 하지 말아주세요,
    갑상선 항진을 앓았던 아내가 지금은 갑상선저하를 또 판정 받고 죽을때 까지 약을 복용한다고 합니다. 기운도 기력도 없이 가사노동에 겨우힘을 쏟고 있어서 참 보기가 힘들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가사노동의 일부를 열심히 도와주지만 한계가 있는듯 해요. 내가 아는 이분도 너무 무리한 일상을 조금식 활애하면서 한겨레온을 위해 보탬주세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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