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로소이다 10. 부녀 사기단

심창식 편집위원l승인2020.07.12l수정2020.07.3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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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부녀 사기단

79대 한강왕으로 책봉된 지 얼마 안 되어 호태종의 딸 초순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다. 비록 자신의 부친이 실성했다는 거짓 고변으로 나를 잠시 혼란에 빠트리기는 했지만 그 일로 인해 초순진과의 혼례와 합방이 전격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는가.

선유도 정자에서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청초한 초순진의 얼굴이 떠오른다. 초순진과의 대화는 흥미로웠다. 학창시절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으며 아버지가 한강왕인 줄 모르고 있다가 아차산의 고주몽 제례에 다녀온 후 한강왕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이후 백상훈과 썸씽이 있을 뻔 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정자에서 휴식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가려던 차비를 하고 있던 차에 스마트폰에 긴급 고변이 들어왔다. 이는 백성들이 왕에게 직보하는 형태로 일종의 현대판 신문고이다. 고변의 내용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 한강왕을 사칭하는 부녀 사기단 출몰! -  

이게 무슨 황당한 메시지란 말인가. 인터넷상으로 한강왕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다. 거기에다가 부녀 사기단은 또 웬 말인가. 당황해하던 차에 비밀경호단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어떤 남자가 인터넷에 뜬 부녀 사기단 기사와 관련하여 왕과의 알현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의 정체가 확실치 않아 신분 조회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조금만 기다린 후에 알현을 허락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남자는 영국국적을 지닌 재영교포인 듯 한데 인터폴 파리지국에서 근무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뭔가 수상하기 짝이 없다. 냄새가 난다. 분명 이 남자는 인터넷에 부녀사기단을 고변한 자들과 관련이 있다. 궁금증이 일어 견딜 수 없었다. 경호단의 보고를 기다릴 것도 없이 일단 그 남자의 알현을 허락하기로 했다. 그래도 근접경호단이 옆에 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급한 마음에 어설프게 내리는 판단이 사태를 그르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쳐갔으나 이미 지시를 내린 후였다. 초순진과의 뜨거운 만남으로 인해 감정이 고조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알현하러 온 남자는 인상이 꽤나 거칠어 보였다.

"그대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지 정체를 밝히라."

"저는 모연중이라고 합니다만 제가 어디서 왔는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왕에게 하는 답변치고는 무엄하기 짝이 없다. 심중에 무언가를 잔뜩 숨긴 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남자는 작정이라도 한 듯이 다짜고짜 나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왕께서는 왕놀음이 재미있으신가 봅니다. 그 놀음이 얼마나 왕을 파멸로 몰고 갈지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이런 무엄한 자가 다 있나. 아니, 무엄을 넘어 무도한 자라는 생각이 든다. 

"왕놀음은 무엇이며, 파멸이란 또 무슨 말인가?"

모연중이라고 밝힌 남자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최근에 부녀 사기단이 한강에 출몰한다는 소문을 못 들으셨나 봅니다. 조금 전에 미모의 여인이 한강왕을 운운하며 왕위계승을 위해 합방을 하자고 했을 텐데요. 그걸 진심으로 믿고 있다니 너무 순진한 거 아닌가요? 최근에 그 부녀사기단에 당한 사람이 여럿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자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나는 비밀경호단장을 쳐다봤다. 이 사내에 대한 긴급 보고를 받아야 한다. 그러자 모연중이 거칠게 말을 이었다.

"비밀경호단을 믿고 계시나 본데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경호단이라고 자처하는 이들도 모두 한강왕을 사칭하는 부녀사기단과 한통속인데, 그들로부터 받는 보고가 제대로 된 보고일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계속>

* (주)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심창식 통신원과 안지애 통신원의 릴레이 글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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