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에 걸친 미투(Me, too) 의식 교육

김반아 시민통신원l승인2020.07.12l수정2020.07.1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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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 태어나서 한국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많이 터울 진 여러 명의 사촌오빠들에 둘러싸여 성장기를 보냈다. 그 중의 몇은 내게 지금 표현으로 하자면 성추행 언행을 자주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그 분야에 눈이 뜨이게 되었다.

우리 식구가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서울로 돌아와서 내가 미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중•고에 들어갈 때까지 북아현동에 살았다. 그 동안 울산과 부산에 살던 사촌오빠들이 서울에 오면 으레껏 우리 집 사랑방에 머물 곤 했는데, 여러 번 나를 그 센 힘으로 방으로 끌고 들어가 입을 맞추고 더듬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엄마에게 알릴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고, 그 어두운 생각을 혼자 속에 품고 살았으며, 나도 모르게 남자를 불신하는 습관이 생겼다.

원래 미술이 특기였던 나는 브라질에 이민 가서 4년 동안 사는 동안 미술학교 Escola de Belas Artes와 옷 만드는 학교를 다닌 후, 옷 공장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가 캐나다로 2차 이민을 갔다.

토론토에서는 진로를 바꾸어 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 나는 학문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의식이 열려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다 열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그래서 자기 계발에 관심을 가지고 감성치유에 몰입했으며 성과 관련된 상처 치유에 초점을 두었다.

딸이 태어난 후, 시카고 대학원 기숙사에 살 때 나는 언제 어디서 딸이 성추행에 노출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린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No!” 하는 법을 가르쳤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무사히 자랐는데 중학교 나이에 한국에 가서 2년간 서울외국인학교 다니는 동안 같은 학교 3년 상급반 남자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내가 그렇게 작심을 하고 사전 교육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안면 있는 남자를 경계하는 데까지는 충분히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주먹으로 내 머리를 쳤다.

시간이 흐르고 손녀가 태어났을 때 나의 신경은 날카롭게 섰고, 나의 모니터에 사위가 손녀에게 하는 행동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목격한 것을 딸에게 얘기했더니 딸은 별거 아니게 듣고 흘려버렸다. 그 후에 딸 집을 방문할 때마다 나의 모니터에는 사위가 어린 손녀에게 보내는 눈길과 손길이 잡히곤 했다.

그 후, 둘은 갈라졌고 딸은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와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아빠를 만나러 여름 방학마다 프랑스에 가는데, 이때는 내가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손녀가 들을 수 있는 거리 내에서 딸과 성교육/성추행에 대한 주제들을 큰 목소리로 토론하여 주변에서 손녀가 듣도록 했다.

그러던 중 2년 전에 손자 손녀가 프랑스에 가서 아빠를 만나고 LA 공항에 내리자마자 손자가 엄마에게 하는 첫마디가 아빠가 동생을 자기 침대에 들어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딸은 즉시 내게 고해 왔다. 내가 공들인 결과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손녀도 뒤이어 엄마에게 아빠가 한 행동에 대해서 자초지종을 얘기했고 딸은 내게 말해주어 우리는 함께 분노하며 동시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아이들이 프랑스에 갔다 돌아온 직후 큰 사건이 벌어졌다. 손녀 학교 카운슬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애가 카운슬링을 받겠다고 찾아와서 하는 말이 프랑스 방문 중에 자기가 샤워실에 들어가 있는데 아빠가 와서 문을 열고 서 있다가 들어와서 몸을 씻어주면서 음부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카운슬러는 우리가 사는 구역의 social worker에게 전화로 알렸고, 그 정보는 경찰에 알려졌으며, 며칠 후에 경찰 두 사람이 social worker를 동반해서 가정방문을 왔다.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아이들 아빠에게 경찰이 국제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아빠는 9세 된 딸이 샤워할 때 다시는 문에서 보면 안 되고 몸을 씻어주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손녀는 아홉 살 때부터 세계적인 “미투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김반아 (생명모성 연구소 소장)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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