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이 다 저물어가는 12월 어느 날.


각시가 아프다고 말을 한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으나 그냥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단다.

그렇게 말을 하는 표정에서 금방이라도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서투른 내 판단으로는 몸보다는 마음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 판단이 옳았다. 선뜻 병원엘 가자는 말을 못 하고 달력을 쳐다보니 섣달그믐이 금방이었다. 며칠 있다가 병원엘 가자고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 아들이 집엘 왔다.제 엄마 얼굴을 보더니 조금은 퉁명스럽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본래 우리 아들은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 많이 서툴다. 저도 그렇게 느꼈는지 먼저보단 좀 부드럽게 어디가 안 좋으냐고 다시 물었다.

그때서야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앞서 내게 말했듯이 힘없는 대답이었다. 아들은 다른 말 없이 "좀 쉬세요." 하고는 그냥 갔다.

난 아무 말 없이 거실에서 방으로 들어와 나름대로 몸보다는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했다. 20여 년을 일하다가 그 일이 끝나고 집에서 쉬게 되면서 몸이 아픈 것이다.

올해 73세이니 그냥 없던 병도 생길 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질 않았다. 못난 남편 만난 것도 있지만 1남 3여 중 맏이로 태어난 놈이 자라면서 엄마 속을 많이도 상하게 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기에 맘고생이 나보단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안다.

그 일이 있고 이틀 후였다. 다시 아들이 집엘 왔다. 그리고선 광주의 병원에 두 분 종합검사 예약을 하였으니 가라고 일러주고는 바쁘다고 휑하니 가버렸다.

아들이 가고 나니 각시 하는 말 "속을 썩일 때는 밉더니 그래도 아들이네"라고 피식 웃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자식이라 어찌할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예약된 병원엘 난생처음으로 각시와 함께 갔다. 접수하고 시력 검사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검사하고 밤이 되니 둘만이 쓸 수 있는 독방을 주었다. 좀 쑥스러운 말인가 몰라도 마치 신방을 차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 좋은데 장 속에 있는 것들을 청소해야 한다고 먹으라는 물? 그것이 너무 힘들었다.

다음 날 아침, 밤사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공복인 상태서 또 검진을 받는다. X레이, 내시경 등등 11시쯤에 모든 검사가 끝나고 마지막 원장에게 결과를 듣는 시간인데 각시의 얼굴을 보니 중병이라도 걸렸다고 말할까 두려워하는 눈빛을 읽을 수가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원장님이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말을 시작하였다.

먼저 각시에게,

"축하합니다. 너무도 깨끗하네요. 다만 당뇨만 관리를 잘하면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원장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환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말이다.

그동안 혼자 티비를 보면서 거기에 나오는 모든 질병에 관해 이야기를 본인과 연관 지어 생각했던 것이다.

다음은 내 차례다. 원장선생님 첫 번째 질문 "담배 피우십니까?" 였다. 자랑스럽게 "예! 61년째 피우고 있습니다." 했더니 "그런데 왜 이렇게 깨끗 하느냐?"고 반문하셨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각시를 쳐다보았다. 평소에 늘 담배를 끊으라고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생각이 나서였다. 그리고 다른 병은 전혀 없다고 건강 잘 지키라고만 하셨다.

병원 문을 나선 각시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병원에만 가자고 했는데 그래도 아들이 더 옳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병원 문을 나섰다.

두 시간여 버스를 타고 집까지 오는 동안 싱글싱글하면서 아주 밝은 표정이었다. 집에 도착해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더니 꼭 죽을병에 걸린 줄 알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들 덕에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다고 싱글벙글하였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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