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지성의 표본’ 청명 임창순 선생

양수철 옥천신문l승인2020.07.14l수정2020.07.19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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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형편 속 독학으로 한학·금석학·서예학 깨우쳐
4·19혁명 당시 교수진 시위 주도, 군사정권에 의해 해임
후학 양성을 위한 한문교육기관 태동고전연구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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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옥천출신 민주화운동가 임창순 선생 및 송건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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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옥천 민주화운동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주민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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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명 임창순(1914~1999) 선생

4.19 혁명 당시 임창순 선생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라는 문구를 직접 쓰고 있다. (사진제공: 4.19혁명기념도서관)

청명 임창순(1914~1999)

선생은 국내 금석학 분야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한학, 서예 다양한 학문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4·19혁명 당시에는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글씨를 펼침막에 쓰며 교수진 가두시위에 나서는 등 ‘행동하는 지성’의 표본으로도 알려져 있다.

임창순 선생은 1914년 청산면 법화리 복우실마을 가난한 유생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정규 교육은 받을 수 없었고 보은군에 있는 서당 관선정에서 한문 공부를 했다.

스무살 무렵 선생은 대구에서 막노동하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해방 이후 역사와·국어과 교원자격증을 취득한다. 어려운 와중에서도 배움에 대한 의지를 이어나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생은 경북중학교 등 대구 등지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 친일파로 잘 알려졌던 대구사대(현 경북대 사범대)학장에 항의하다가 결국 해임되고 만다. 해방 직후인 1946년 대구 10·1사태(식량공출 등 미 군정의 강압적 정책에 반발해 발생한 대규모 시위)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교편을 잡는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 이승만 하야 시위 선봉에 서다

임창순 선생이 성균관대학교에 재직할 당시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 학생들을 포함해 시민들은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며 거리에 나선 상황. 전국대학생 교수단 역시 4월25일 이승만의 하야를 주장하며 거리 시위를 벌이게 되는데 임창순선생은 그 선봉에 섰다. 임창순 선생은 교수진의 현수막에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라는 문구를 직접 썼다.

1992년 이이화 역사문제연구소 고문과의 대담에서 임창순 선생은 4.19 혁명은 학생들의 투쟁과 노력으로 독재정권이 물러난 것일 뿐 교수진의 역할은 작았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임창순 선생은 “학생들은 목숨 내놓고 했지만, 교수단은 안전보장 받아 가면서 한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 학생들의 투쟁에 비하면 그다지 공을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이후 임창순 선생은 남북 통일교류 및 민주적 정치활동을 진행하는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심의위원으로 활동한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선생의 활동이 문제를 제기했고 1962년 교수직에서 해직당한다. 한편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진보계 인사를 간첩으로 몰아 탄압한 사건)에 연루 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금석문의 토대를 닦은 임창순 선생, 한문교육의 산실 태동고전연구소 창립

임창순 선생은 중원고구려비 해석, 단양적성비 판독 등 비문을 해석하고 역사적 가치를 증명하는 금석학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한학, 서예학 등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군사독재정권에 해임당한 후 임창순 선생은 1963년 한문전문교육기관인 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한다. 1974년에는 남양주시에 지곡서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쓴다.

또한 민족전통문화를 발전시키고 남북의 통일문제 연구하는 단체나 개인의 학술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청명문화재단을 설립했으며 계간지 통일시론을 창간한다. 임창순 선생은 1999년 4월12일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2010년에는 4·19혁명 유공자로 인정돼 국가보훈처에서 수여한 건국포상을 받았다.

임창순 선생의 제자 최광현(태동고전연구소 연구원)씨는 “선생님은 단지 학문만 연구하신 게 아니라 민주 시민으로서 4.19 혁명에 앞장서셨다. 현실에 대한 고민과 민족·민주·통일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과 애정이 크셨다고 본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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