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언론자유에 투신한 청암 송건호 선생

양수철 옥천신문l승인2020.07.20l수정2020.07.1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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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증약리 비야골 출신 송건호 선생, 대표 언론인으로 평가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언론자유 투쟁 나서, 한겨레신문 창간 주도
친일·독재사학을 기반으로 한 한국현대사 비판, 활발한 저술활동

1회: 옥천서 활동한 정차기 목사 인터뷰
2회: 민주화운동가 강구철 열사, 유병진 열사

3회: 옥천출신 민주화운동가 정형기 열사, 윤창영 열사
▶4회: 옥천출신 민주화운동가 송건호 선생 및 임창순 선생
5회: 옥천군 민주화에 앞장선 옥천군 농민회 및 지역노동단체
6회: 옥천 민주화운동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주민토론회
)

▲청암 송건호 선생(사진제공: 송건호 선생 평전 ‘청암 송건호’)

 

20세기 최고의 언론인, 한국 언론의 사표, 군부 독재와 맞섰던 민주화운동가, 불모의 현대사를 개척한 지식인…. 뚜렷한 족적을 남겨온 만큼 청암 송건호(1926~2001) 선생의 별칭은 매우 많다. 송건호 선생은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언론민주화운동을 위해 앞장선 인물로 평가된다.

송건호 선생은 1926년 음력 9월27일 군북면 증약리 비야골에서 3남5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다. 1953년 대한통신사 외신부 기자를 시작으로 한국일보, 자유신문, 민국일보 등의 언론사에서 기자생활 이어나간다. 경향신문, 조선일보·동아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한다.

 

■군부독재에 맞서 언론 자유 투쟁에 나서다

송건호 선생이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은 유신체제에 맞서고 있었다.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언론자유수호선언’을 진행하며 대학가 시위 등 민주화운동 현장을 보도한다. 그러나 박정희 유신군사독재정권은 동아일보의 경영을 압박한다. 탄압을 견디지 못한 사측은 자유언론실천에 앞장선 기자 및 아나운서 등 150여 명을 해고한다. 송건호 선생은 회사에 항의하는 동시에 기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편집국장 자리에서 내려온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린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송건호 선생은 언론인의 양심을 강조하며 지식인 시국선언 동참했다. 그러나 김대중 내란사건에 연루돼 모진 옥고를 치렀다. 고문 후유증으로 나중에 파킨슨씨병을 앓게 된다.

송건호 선생은 독재정권의 회유 및 탄압에 대해 “나는 언제나 기자다. 어떤 정치권력과도 관련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송건호를 말한다> 중에서, 한길사 김언호 대표 저)

1984년 12월. 동아투위, 조선투위,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직을 맡았다. 민언협은 월간 말지를 창간해 ‘보도지침’을 공개하는 등 제도언론이 외면했던 독재정권의 권력의 진실을 전달했다. 더불어 ‘호헌철폐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군부독재 종식과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도입에 이바지했다.

6월 항쟁 이후 송건호 선생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들기 위해 국민주를 바탕으로 한 한겨레신문의 창간에 앞장섰다. 송건호 선생은 초대 사장과 고문을 거쳐 1994년 현직에서 은퇴했다. 40년에 걸친 그의 언론생활을 기려 1999년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수여 하기도 했다. 이후 고문 후유증으로 투병하다가 2001년 12월 별세했다. 사회장을 거쳐 광주 국립 5·18 묘지에 안장됐다.

송건호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뜻을 이어가기 위해 청암언론문화재단이 설립됐다. 재단과 한겨레 신문은 그의 뜻을 기리는 ‘송건호 언론상’을 제정해 매년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한편 송건호 선생은 현대사 연구를 개척한 인물로도 평가된다. 당시 한국 현대사는 친일사학을 근간으로 해 독재정권을 대변하는데 그쳤던 상황. 송건호 선생은 정권의 나팔수에 지나지 않는 현대사학을 비판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한국현대사론’ 등 역사 관련 저서 20여 권을 남기기도 했다.

송건호 선생은 “일제 어용사학의 식민지사관 수립에 간접·직접적으로 협조한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사학계가 형성되어왔다”라고 비판했다. (청암 송건호-한겨레 출판사)

송건호 선생의 장남 송준용씨는 “1970년대 당시 동아일보는 신문시장 70%가량을 점유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어린 나이에 편집국장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 능력과 실력을 방증하는 것”이라며“아버지는 본성 자체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분이셨다. 아무리 엄혹한 시절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보고 들은 것 중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선 지적하고 비판하셨던 분이다”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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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김동호 2020-07-24 15:46:04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하지만 다수의 기대치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누구나 바라지요.

    최근 한겨레에 실망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심을 새기는 의미로 독재정권에 맞섰던 청암 송건호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봅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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