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에서 2019년 발간한 「2018 산업재해 현황분석」 산재사망률 지표(출처 : 고용노동부)

2019년도 고용노동부에서 발간된 「2018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2018년 1년 동안 2,142명이 산재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는 산재 적용대상 노동자 1,900만 명을 대상으로 나온 통계수치이다. 하루에 6명꼴로 가정으로 돌아가질 못하고 산업현장에서 죽어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산재 사고는 거의 인재이다. 다시 말해 죽지 않을 수 있는 귀한 목숨들이 안전시설이 미비한 상태에서 위험한 작업에 내몰린 결과이다. 한 마디로 사람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이 우선시되는 기업문화와 사회인식 때문이다.

산재사고는 기업의 경제활동에 수반되어 발생하는 ‘불가피한 문제’이거나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산재사고는 사람의 목숨을 기업의 이윤보다 가벼이 여기는 일그러진 기업문화가 낳은 필연적 참사이다. 원청회사가 위험한 작업을 하청-재하청을 통해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 개인에게 위험을 떠넘기고 자신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 지난 4월 29일에 발생한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냉동 창고 화재 참사를 들 수 있다. 무려 38명이라는 아까운 목숨들이 유독가스에 질식돼 순식간에 산재 참극의 당사자가 되었다. 대부분 가족이거나 친인척으로 인연을 맺은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원청회사는 위험을 하청업체에 외주화함으로써 책임을 모면하려 하였다. 이러한 불행은 매년 반복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화재 참사 이튿날인 4월 30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센터 신축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당국, 국과수 관계자 등이 합동감식에 나서고 있다.(출처 :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이미 12년 전에 경기도 이천 냉동 창고 건설 현장에선 작업 도중 화재가 발생하여 무려 40명이 원통한 죽음을 맞았다. 바로 2008년에 발생한 경기도 이천 ‘코리아 2000 냉동 창고’ 건설 현장 화재 참사이다. 12년 만에 똑같은 대형 참사가 되풀이된 것이다. 당시 원청회사가 받은 처벌은 벌금 2,000만원이 전부였다. 사망자 한 사람의 목숨 값이 50만원이었다. 12년이 지난 2020년 4월 30일에 발생한 참사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충분히 예고된 참사였다.

참사가 반복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안전장비나 안전시설의 부재, 그리고 안전 예방교육의 미비, 나아가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감독할 안전책임자의 역할 부재이다. 모두 인건비와 안전 비용을 줄이고 기업의 이윤을 늘리기 위한 기업의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하는 기업문화가 변하지 않는 한, 참극은 반복될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고 노회찬 의원이 중심이 돼 이미 20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다. 19대 입법청원운동에 힘입어 20대 국회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지만 단 한 번도 심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시켰다. 만일에 20대 국회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되었다면 이천 냉동 창고 화재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원통하게 죽어간 노동자들은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귀한 아들들이다. 그 노동자의 죽음으로 가정은 한 순간에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매년 2,000명 안팎에 이르는 귀한 목숨들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질 못한 채, 불귀의 객이 되는 불의한 현실은 이제 바로 잡아야 한다.

G20 회의를 주최하고 G7 회의에 초대될 정도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이다. 1인당 GDP 3만 불 시대를 넘어섰다. 바야흐로 선진국 대열에 동참한 대한민국이다. 이젠 매년 반복되는 산재사고의 참사를 여기서 끊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참사를 막을 권한이 주어진 원청회사의 기업주에게 상당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다시 말해 위험한 작업을 외주화 함으로써 원청회사 대표가 책임을 모면하려는 현행 법체계를 개정해야 한다. 노동자의 목숨 값으로 마음껏 이윤을 추구하도록 조장해 온 기존 법 체계를 철폐해야 한다. 대신에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엄하게 처벌하는 법제정이 필요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시민의 참여와 노동자의 힘으로 입법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할 때 여론의 힘을 받아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2020년 5월 2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가 출범했다. 운동본부는 고 노회찬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률 가운데 일부를 손질하였다. 이제 입법발의자로 참여할 시민과 노동자가 필요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다함께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발휘할 시점이다.

▲ 손 팻말을 들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출처 : 하성환)

2년 전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24살의 청년노동자가 원통하게 죽어갔다. 바로 고 김용균 군의 어머님과 김용균 재단이 중심이 되었다.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원통한 죽음이 28년 만에 산업안전법을 개정시켰듯이 이천 냉동 창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통한 죽음을 계기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올해 제정해야 한다. 산재사고는 기업활동 중에 발생하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활동에선 충분히 예고된 사고이자 어떤 측면에선 방치되고 방조된 ‘범죄’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반드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 그런 기업문화를 법제정으로 강제해야 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원청회사 대표를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권한만큼 책임도 무겁게 부과해야 한다. 그러할 때 근본적으로 산재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만으로 ‘사람이 우선인 사회’는 정치성 짙은 선전 구호에 그칠 것이다. 물질이 인간의 정신을 압도하고 영혼마저 질식시키는 한국 사회 현실에서 생명존중, 인간존중, 나아가 노동자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

▲ 손 팻말을 들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출처 : 하성환)

3년 전 촛불의 힘으로 들어선 민주정부인 만큼, 그리고 4·15 총선에서 180석 의석을 몰아준 만큼, 이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침대로 ‘노동 존중 사회’,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는 원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과 노동자들이 다함께 입법발의자가 되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참여할 것을 기대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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