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가기 위한 첫걸음…공감해야 하는 이유

인류사 가장 비이성적인 전쟁.

광기와 야만, 그리고 죽음의 공포 뿐이었던 베트남전은 서구 열강의 이익을 대리한 약소국, 특히 남북한의 대리전이었다.

북한은 당시의 최신 기술과 뛰어난 공군력으로, 남한은 희생자 안구를 도려내 널어놓았던 잔인무도함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타인의 전쟁에서 서로의 피를 또 보아야 했다.

6.25가 끝난지 10여년, 무의미한 살육의 장 '고지전'의 참상이 채 잊혀지기도 전이었다.

베트남의 울창한 산림을 파괴하려 마구 뿌려댄 고엽제.

그 고엽제를 비처럼 맞으며 열대의 더위를 식히고, 전쟁의 긴장을 식혔던 우리 아버지들은 지금 사회 이슈의 최전선에서 오직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려 가스통을 들고 길을 나선다.

경운기 한대와 5년간의 생활보장.

국가가 제시한 달콤한 공약에 간 전쟁터는 고개만 들면 머리가 날아가는 지옥이었고, 바로 옆 동료를 방패 삼지 않으면 내가 죽는, 인간성 상실의 장이었다.

지나가는 여성, 인질로 잡힌 여성, 두려움에 떠는 여성은 욕정을 해결하는 도구였다.
 

강박사출. 내 생명이 꺼지기 전 후손을 남기고자 하는 유성생식의 본능이 아무때나 날아들어 박히는 총알의 공포에 증폭됐다.

라이따이한. '적군의 아이' 수는 파악조차 불가능했다. 5천, 1만, 3만...

베트남 국내의 차별과 누군지도 모를 아버지의 외면, 아버지 나라의 외면. 그렇게 또다른 증오의 나무가 깊은 뿌리를 내리며 자라고 있었다.

지옥보다 지옥같던 전쟁이 끝나고 그들에게는 이유를 알수 없는 가려움증과 이명, 악몽, 망가지는 몸...

이상한 여러 증상들이 참전 용사들에게 나타났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그들을 외면할수 밖에 없는 여전히 가난한, 제 앞가림조차 버거운 군사독재 국가였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고엽제후유증 환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해외 보상 사례를 소급해 제정됐지만, 오늘 이 순간까지도 국가는 그들에게 약속한 풍요롭고 안정적인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너무 늦어서, 또는 국가가 정한 비호지킨임파선암, 연조직육종암, 염소성여드름, 말초신경병, 만발성피부포르피린증, 호지킨병, 폐암, 후두암, 기관암, 다발성골수종, 전립선암, 버거병, 당뇨병 등 15가지 질병의 범주에서 벗어나서 단 하나의 보상도 영예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로 나선다. 군사정권 아니면 그들의 빛나던 젊음을 이해할수도, 보상할수도 없다.

권위주의 정권이 아니면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말한마디 하지 않았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그들에게는 살인마, 전범, 성범죄자의 낙인이 깊어갔다.

건강했던 내 몸을, 내 정신을 바친 국가가 나를 외면하고, 무시한다.

망가져가는 몸을 일으켜 다시 우리의 젊음과 충성을 응원했던 그 시절로 돌려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오늘도 거리에 나서 '종북을 척결' 하고 '촛불 좀비를 척살'해 '한미동맹을 강화'하자고 외치지만, 아프고 힘들고 공허하다.

이미 늙어버린 몸,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된 고엽제 후유증이지만, 국가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그 전훈.

미국은 우리보다 더한 반공의 국시가 있었다. 매카시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마녀사냥까지 자행할수 있었던 명분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퇴역한 군인들,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만은 각별했다. 여전히 퇴역 군인의 명예는 '베테랑'이라는 단어로 빛난다.

명예는 커녕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우리 참전용사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먼저 다가서려는 노력을 지금이라도 해야한다.

부도덕한 권력은 피지배계층이 서로 강하게 대립할수록 더 효과적으로 통치한다.

21세기, 통치가 아닌 정상적인 정치가 복원되기를 희망한다면 먼저 그들을 이해하고, 화해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할 때 선진창조경제의 빛나는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된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편집=최홍욱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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