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연중이 발해 왕국의 후손이라 해도 그것이 글로벌제왕협회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클레어는 글로벌제왕협회라는 조직에 대해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사실 왕족에 대해서라면 클레어도 할 말은 있었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말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다.

"클레어! 자부심과 긍지를 잃지말고 살거라. 우리는 이래 봬도 그 옛날 화려한 영광을 누리던 로마노프왕족의 혈통을 이어받고 있으니 말이다."

어릴 적 들은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랍긴 하다. 하지만 과거의 왕족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로마노프왕족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웬 왕족 타령인가? 클레어가 잠시 회상에 잠기는 동안 화제를 바꾸려는 듯이 제레미가 클레어의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하며 말했다.

"이제 그만 호텔에 가서 와인이나 한 잔 할까?"

"그거 괜찮은 생각인 걸~"

클레어도 냉큼 동조했다. 둘은 지난번에 갔던 호텔로 이동했다. 

▲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화재가 나기 이전 모습)

호텔방 창문 저 멀리 화재로 첨탑이 불타버린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이고 있고, 클레어는 응접실 소파에서 제레미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데가 있는 제레미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제레미에게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제레미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클레어는 제레미의 뒷조사를 했었다. 그건 형사로서 기본이다. 그런데 제레미의 행적이 수상쩍었다. 부친은 한국인이고, 모친은 영국인으로 그들 부부는 유럽내에서 톱3안에 드는 메이저급 유럽보안용역업체의 대주주이다.

부모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서 아들인 제레미가 계약직으로 인티폴 파리지국의 시설보안용역직원으로 근무한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렇다고 그걸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다. 제레미를 지켜보는 수밖에.

클레어의 시선을 느꼈던 걸까. 제레미가 클레어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다가 갑자기 클레어를 번쩍 들어안더니 넒고 푹신한 침대위로 내던졌다. 클레어는 제레미가 자신을 들어 올려 침대에 던질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제레미! 나는 자기가 이렇게 터프하게 나올 때, 정말 흥분되고 좋아!"

"그래? 앞으로는 더 자주 던져줘야겠는걸~!"

"별자리가 천칭자리인 사람이 퇴폐적인 감각주의자라는 거, 알아?"

클레어의 농담에 제레미도 질세라 맞장구를 친다.

"질 디어먼의 퀴어별점을 본 모양이군. 나는 타락기술 전문가야. 물고기 자리거든."

"뭐야? 타락하는데도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거였어?"

"타락학교는 말야. 입학시험은 쉬운데, 졸업시험이 어렵거든."

진한 농담으로 분위기가 한껏 올라온 클레어는 근육질의 몸매를 지닌 제레미와 뜨거운 사랑을 주고받으며 격렬한 정사를 치렀다. 온 몸이 나른해진 상태에서 제레미가 건네준 와인 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는데, 잠시 후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늦은 아침에 머리가 무거운 상태에서 눈을 뜬 클레어는 자신의 지갑에서 인터폴 신분증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폰에 내장되어 있던 인터폴 기밀 사항들이 유출되고, 인터폴 수배자명단이 들어있는 usb가 사라진 것도 뒤늦게 파악했다. 

침대옆 탁자에는 제레미가 남긴 듯 한 메모지가 있었다.

-클레어, 신분증 좀 잠시 빌릴게.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설명할 날이 있을 거야.-

이런! 제레미가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사고를 치더라도 좀 더 로맨틱한 사랑을 나누다가 하기를 바랐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계속>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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