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 귀여운 얼굴에 순진한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말없이 알듯 모를 듯 미소만을 보이는 그녀가 왜 나를 만났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왜라는 나의 질문은 마치 보물찾기 하듯 그녀의 재능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말이 별로 없는 그녀가 그림으로, 영상물로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에 나는 놀랐다. 그녀의 그림과 영상물은 마음이 아픈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그녀에게 어느 날 글을 한번 써 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제안을 했는데. 그날 바로 한편의 글을 보내주었다. 20대 중반의 그녀 삶에 우울은 무엇일까? 그녀의 허락 하에 많은 이들이 솔직한 그녀의 글을 함께 읽고 응원을 받고 응원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공유한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

유민지

현대에 이르러 간편한 시각적인 정보가 보급화 됨에 따라 점점 글을 읽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이다. 그런 현대인들 앞에서 글을 가끔 쓴다고 말하면 마치 거창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양 취급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이 뭐 대수란 말인가? 기사나 시 한 편도 글이지만, 일기장에 쓰는 것도 글이고, 하다못해 SNS에 올리는 것들도 다 '글'이다. 독자가 있건 없건, 길이가 짧건 길건, 형식이 어찌 되었건.

이제부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글'도 이러한 포괄적인 개념을 뜻한다.

나는 그 동안 많은 글을 써왔다. 편지, 설명문, 일기, 소설, 시 등등.

사실 글을 쓰는 데에 거창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글을 쓴다. 나도 그랬다. 나는 한 때 글쓰기에 몰두해있었는데, 나와 대화하기 위함이었다. 정확히는 나의 우울과 대화하려고 했었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 기어이 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아예 정신을 놓고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나는 우울이 나의 생을 완전히 침범할 수 없게 해야 했다.

선연한 분노, 고단한 슬픔, 괴로운 고통. 나는 그런 것들을 떠오르는 대로 모조리, 무작정 적고 다듬었다. 그리고 글을 맺고 나면 오래 읽었다. 그러니 내 글은 세계로 통하는 창구조차 아니었다. 나는 닫혀있었고, 병증처럼 글을 써내려갔다. 그저 마땅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곳에서 내가 괴롭노라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어느 날 보니 나의 분노와 생각과 우울같은 것들이 그 곳에 쌓여 있었다.

나처럼 글쓰기를 했던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누군가는 곤궁함 속에서 그것을 노래하고, 혹은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고통은 유구히 예술이라 하는 창작의 영감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제 나는 안정되었고, 글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며 글을 올리는 것을 그만두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매일같이 우울한 그림을 SNS에 올린다. 그것이 정제된 괴로움들이었음을 나는 안다. 나 역시 글을 쓰며 항상 고통스러워했고, 한 번도 그것이 쉬웠던 적이 없다. 문장을 갈고닦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나에게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고통스러워하기 위해, 해찰부리듯 글쓰기에 몰두했던 것일까?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는 글쓰기를 거듭해왔고 그것이 '나라는 존재'의 단단한 근원이 되었음을 이제는 안다.

어떤 것들은 잃기 쉽지만, 또 어떤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두려움을 놓아준 만큼 성장한 것처럼...

나는 아직도 종종 생각하기 위해 글을 쓴다. 사실 그러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이나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 기록들이 언젠가는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가 될 것이라 믿는다. '나'는 '나라는 존재'의 가장 큰 이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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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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