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코앞이다. 코로나19의 지구촌 대유행으로 국외여행을 꿈꾸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생각건대, 여러 차례의 국외여행 중 가장 잊지 못할 여행이 작년 8월에 내게 닥쳤다. 그때 우연히 마주쳤던 홍콩 청년이 건강한지 궁금하다.

지난해 여름 8월 13일 홍콩 국제공항에서 공숙(空宿)했다. 환승 창구 의자에 기대어 잠을 청했으나 자주 깼다. 뜻밖에도 추웠다. 풍찬노숙(風餐露宿)했던 독립운동가의 신산(辛酸)한 삶을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집 없는 노숙자의 고통이 이런 거겠다는 마음도 일어났다. 노숙(露宿)이란 문자 그대로 차디찬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자야 하니 얼마나 뼈가 시리겠는가? 나에게 공숙은 노숙의 간접 체험이었다. 어떤 사람이 걷다가 졸음에 취해 길 위에서 자는 노숙(路宿)은 어쨌든 차가운 이슬은 피한 잠이다.

▲ Y의 아이폰 화면 속에는 한자로 쓰인 표제어 ‘광주민주화운동’(光州民主化運動)과 함께 ‘5·18민중항쟁추모탑’ 사진이 담겨 있었다. (홍콩 ‘민주화 운동가’ Y에게 /선담은 기자, 한겨레신문, 2019.09.02.)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7962.html

아프리카 지역의 몇 나라를 여행가는 도중에 그런 경험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항공편은 홍콩을 경유했다. 13일 아침 일찍 집을 나와 광주광역시에서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상당히 걱정했다. 8월 12일 홍콩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발생한 탓에 홍콩 행 항공편 취소가 많다는 보도가 잦았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오전 비행기는 취소되었지만, 오후 비행기는 취소 여부가 공시되지 않았다. 여행사의 안내를 받고 나서 항공사의 창구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괜히 걱정했다 싶을 만큼 일은 잘 풀려갔다. 다행히도 늦은 시간에 홍콩 행 비행기는 이륙했다.

홍콩 공항에 도착해 환승 창구로 갔다. 전광판에는 아직 요하네스버그 행 항공편이 취소됐다는 공시는 나오지는 않았다. 여행사의 여행 길라잡이가 서둘러 알아보니,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소식을 전한다. 결국은 항공편은 취소됐고, 환승 창구에서 한뎃잠을 잤다.

14일 정오가 지나도 항공편의 운항 여부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아침밥도, 낮 밥도 환승 창구 인근의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오후 3시가 돼서야 요하네스버그 행 항공편이 뜬다는 소식이 왔다. 여행 길라잡이가 알아본바, 항공편이 어제와 달리 새롭기에 환승 창구로는 갈아타지 못하고 일단 홍콩으로 입국한 후 다시 출국 수속을 밟아야 했다. 정말 뜻하지 않게 홍콩으로 입국했다.

▲ [홍콩 청년의 사과문] 홍콩 국제공항, 2019.08.14. 19시 24분경

14일 18시경에 홍콩 국제공항 출국장에서 저녁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어제저녁의 공숙에 따른 피로와 답답함을 풀었다. 출국 수속 창구로 가는 도중에 청년 3명을 만났다. 그들은 작은 손수레(cart)에 빵, 도시락, 생수, 과자 등을 싣고 다니면서 정성을 다해 권했다. 우리 일행은 이미 저녁 식사를 마쳤기에 생수만 받았다. 그들은 손수레에 손으로 쓴 사과문을 붙이고 다녔다. 컴퓨터와 프린터 등을 사용하여 뽑은 글씨가 아니어서 그들의 참하고 절박한 심정이 느껴졌다. 영어 사과문보다 중국어 사과문이 더 마음에 다가온다. ‘우리는 정말 물러설 길이 없었습니다.’ 이는 13일 홍콩 국제공항까지 들어와서 시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사정을 알아달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여정을 가로막았습니다. 
우리는 정말 물러설 길이 없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반화하기에는 부담스러우나, 홍콩 청년이 정중하면서도 사려 깊다는 점을 알았다. 뜻밖의 소득이었다. 또한 그들의 행태는 홍콩 국제공항이 홍콩과 자기들의 장래에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었다. 홍콩 국제공항이 빈번히 폐쇄된다면, 홍콩은 그 발전을 추동하는 힘을 상실하게 된다. 홍콩은 도시를 기반으로 한 경제단위로서 관광과 교역(수출과 수입)이 그 경제의 추동력이다.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이다. 사방팔방을 향한 개방이 생존의 방식이다. 폐쇄는 곧 그 존립 기반의 와해를 촉진할지도 모른다. 홍콩의 몇몇 청년이 국제공항 출국장에서 행한 사과의 행위는 하루 혹은 이틀 밤을 공숙한 여행자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14일 저녁 요하네스버그 행 항공기 탑승장에서 만난 여행자 몇몇은 이틀 밤을 공숙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여행 경험이 많은 탓인지, 홍콩의 시위를 이해한다는 뜻인지, 홍콩 청년의 사과 행동으로 마음이 푸근해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후 홍콩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그때 만난 홍콩 청년 세 명의 정중하고 진지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의 안녕을 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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