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각시의 아리랑 사랑 15 - 타이빠오 어린이

라문황 주주통신원l승인2020.07.28l수정2020.07.28 22:42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저는 타이빠오(太保)에서 자란 아이였습니다. 타이빠오는 작은 마을인데, 마을 안에는 왕더루(王得祿. 청나라 장군)가 거주했던 유적지가 있지요.

▲ 童年                  라문황 작

푸즈(朴子)로 가는 버스를 타고 곧장 가면 허우탄(後潭) 촌을 지나 타이빠오 촌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다음 정류장은 룬딩(崙頂) 촌이지요. 만약 사거리에서 내려 맞은편으로 걸어가면 춘주(春珠) 촌입니다. 타이빠오 초등학교를 끼고 옆으로 가면 왼쪽에 타이빠오 초등학교 옆문이 나오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학교 대강당입니다.

매년 장개석 탄생일이 되면 모든 선생님과 학생이 이른 아침 학교에 모여 강당으로 이동한 후, 대오를 맞춰 장 총통의 큰 사진을 향해 허리를 굽혀 3배를 합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에 하나씩 커다란 복숭아 빵(壽桃)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갑니다.하! 하하!

▲ 壽桃 :장수를 기원하는 복숭아 모양의 밀가루 빵. 팥 앙금이 들어있음

먹을 게 생기고 수업도 안 하니 모두가 즐거울 수밖에요.

학교 옆문으로 나오면 도로 오른쪽 앞이 바로 파출소 옆문이고, 하늘 높이 치솟은 야자수 무리를 지나면 반 친구네 집입니다. 친구네 집에는 다 큰 형들이 여럿 있어서 막내인 친구는 집안에서 총애를 받고 자랐지요. 4학년 때 그 친구가 반장이 되었고, 남학생들은 모두 반장 말을 잘 따랐지요.

어느 날 오후 취침 시간에 엎드렸으나 눈을 안 감았다고 반장에게 대나무로 맞았는데, 그쪽 귀가 빨갛게 많이 부었습니다. 다음날 아버지가 교실 문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수업하시던 선생님이 나가셔서 아버지와 말씀을 나누시고, 얼마 후에 반장도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선생님을 향해 허리를 약간 숙이시더니 복도를 따라 사라지셨지요. 그 이후 오후에 엎드려 눈을 감건 말건 항상 평온했습니다. 하! 하하!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시자, 아버지는 “선생님,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세요. 맞아 죽어도 제가 따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놀라서 학교에서는 감히 까불지 못했지요. 나중에 반장 친구가 한창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나무로 맞았던 지난 일은 잊히지 않습니다.

친구네 집을 지나면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2층 양옥집이 나오고, 아래층은 대서소를 합니다. 어머니의 먼 사촌 집입니다. 남편이 소장인데, 종일 엄숙하게 인상만 쓰고 있어서,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대서소에선 (대만)중앙일보를 구독하였는데, 어머니는 언제나 저를 보내 불쏘시개로 쓰게 이모에게 지난 신문을 얻어오라고 시켰습니다.

이모부가 사무실에 계시면 감히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모가 내실에서 나올 때까지 서성입니다. 이모를 보면 쭈뼛쭈뼛 “이모, 지난 신문 얻으러 왔어요.” 이모는 저를 향해 “들어와! 들어와!” 부릅니다. 저는 여전히 겁먹은 채 지난 신문을 끌어안고 빠르게 자리를 뜨지요.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왜 가지러 가느냐고요? 신문 더미 속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아름 안고 집에 돌아오면 급하게 모든 부록을 골라냅니다. 부록에 실린 산문이나 단편소설을 정말 좋아했지요.

어떤 경우에는 단편소설이 (상)(중)(하)로 나뉘어 연재되는데, 가지고 온 신문에는 (상), (하)는 있는데 (중)이 없거나, (상), (중)은 있는데 (하)가 없기도 합니다. 아니면 (계속) 이라고 씌어 있지요. 그러면 재빨리 발행 날짜를 찾아보고, 부엌으로 뛰어가 땔감 옆에 쌓인 신문 더미를 다 뒤집니다. 기어코 찾아내 이야기가 결말이 나야 만족하지요. 어떤 때는 아무리 뒤져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도대체 이미 불쏘시개로 써버린 거야? 아니면 이모가 물건을 싼 거야? 마지막 편을 못 보면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지요. 하! 하하!

나중에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저는 중앙일보 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했고, 사무실 책꽂이에는 부록 정장본 30권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근무시간을 이용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기뻤지요!

대서소 이모네 집을 지나면 교무주임인 차이(蔡) 선생님 댁입니다. 오렌지색 대문이 있는 이 집은 저의 눈에는 호화저택이었지요. 차이 선생님은 애완용 조류 번식을 부업으로 하였습니다. 그 집에서는 색깔 고운 작은 앵무새, 화메이(흰눈썹웃음지빠귀), 구관조 등등 아름다운 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포교를 나가시면 어떤 때는 화훼농가의 신도로부터 꽃을 받아오십니다. 그럴 때면 우리에게 가져다 드리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차이 선생님을 매우 존경하셨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 심부름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벨을 누르면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맑은 딩동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벨을 누르고 들어가면, 먼저 넓고 깨끗한 현관을 지납니다. 마치 별세계에 들어가는 기분이지요.

아버지가 분부한 꽃을 사모님께 건네며, “아버지가 이 꽃을 드리라고 했어요!” 임무를 마치고 사실은 호화로운 집을 더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오다가다 들었던 피아노 소리, 그 피아노는 어디에 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짧은 시간에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곧바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은 아버지와 함께 차이 선생님 댁을 방문했는데, 선생님은 우리에게 들어와 앉으라고 권했습니다. 소파는 길고도 푹신했습니다. 참 편안했습니다만, 아버지처럼 등에 기대어 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무릎에 두 손을 얌전히 올려놓고 다소곳하게 앉아있었습니다. 두 분이 대화중에도 자주 저를 보는 것이 마치 나대지 말고 얌전히 앉아 있으라는 표시 같았으니까요.

저는 눈으로 거실을 한 바퀴 둘러봤습니다. 바닥에 놓여있는 큰 물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안에는 삶아서 껍질을 벗긴 계란이 수북하더군요. 사모님이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하고, 다시 계란 노른자를 가는 철망을 이용 가루처럼 부수더군요. 체로 거르고 다시 모이를 섞어 비빈 후 작은 새에게 먹였습니다. 저는 작은 새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매일 계란을 먹을 수 있다니.

우리 집에서 암탉이 계란을 한 개 낳으면 어머니는 반숙 프라이를 해서 할머니에게만 드렸는데, 감히 아무도 끼어들지 못했습니다. 아니면 대접에 계란을 넣고 물을 부은 후 양념을 한 후 솥에 넣고 익히면 계란탕이 되는데 상에 올라오자마자 없어지지요. 운이 좋게도 신선한 계란이 여러 개 생기면 부화기에 넣고 며칠 기다립니다. 어머니는 하나하나 계란을 60w 전구에 비춰보고, “이건 핏줄이 생겼다”(수정란이 부화가 되기 시작했다는 표시), “이건 핏줄이 없다”며 계란을 나눕니다. 하! 하하!

핏줄이 안 생긴 계란은 다음 날 우리 뱃속으로 들어갑니다. 정말 맛있지요.

차이 선생님 댁에서 논을 지나면 두부집이 나옵니다. 어머니가 토요일에 만두나 밀가루 빵을 만들고자 하면 우리를 불러 돈과 큰 통을 들려 두부집으로 보내 떠우쟝(콩물)을 주문합니다. 두부집은 평상시 새벽 3시가 넘으면 콩을 갈기 시작해 두부를 만들지요. 만약 떠우쟝을 마시려면 전날 통을 보내야 합니다. 주인이 콩을 갈 때 우리 집에서 마실 떠우쟝을 기억하고 남겨두라고.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우리는 주문한 떠우쟝을 찾아옵니다. 어머니는 떠우쟝을 끓인 후 설탕을 넣지요.

두부집 주인은 우리 집에 아이들이 많다는 걸압니다. 우리가 어떤 통을 들고 가도 항상 가득 채워줍니다. 돈은 똑같이 받고요. 우리가 두부집을 지날 때 자주 그 집 애들을 봅니다. 맨발에 구멍 뚫린 낡은 옷을. 하지만 선량한 두부집 주인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통 가득 떠우쟝을 주지요. 하! 하하!

두부집 주인의 떠우쟝 사랑이 그립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만들던 만두와 밀가루 빵이 그립습니다. 두부집은 台糖鐵支路 옆에 있습니다.

여기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바로 우리 집. 鐵支路(철도)를 따라 걸어서 약 5분 정도? 장방형 판자에 「천리교」라고 쓰인 간판을 볼 수 있고, 이곳에서 작은 길로 약 50m, 그곳이 바로 우리가 울고 웃으며 함께 살았던 어린이의 고향입니다.

(계속)   (번역 : 김동호)

我是太保囡仔

太保是個小村莊,莊内有座名為王得祿故居的歷史遺蹟。

坐客運車前往朴子的縱貫路上,會經過後潭村到太保村站,接著是崙頂村。若在十字路口下車,對面路口走進去是春珠村。若往太保國小這側的路口行進,左邊能見到太保國小的側門,進去就是大禮堂。每年逢蔣公誕辰日,全校師生得一大早到學校集合,在大禮堂整隊後向蔣總统的大相片行三鞠躬禮,接著每個人分得一個大壽桃,放假回家。 哈!哈哈!

大家有得吃又不用上課,皆大歡喜。

從學校側門出來,馬路右前方正是派出所的側門,種滿高聳筆直的椰子樹,再過去就是我國小同學的家。他家有多位高大的兄哥,身為老么的他在家裡倍受寵愛。四年級時他當了班長,班上的男生都聽他使喚。

某次午休時間,我只不過趴着没閉上眼,被他用竹枝打,結果那側的耳朵嚴重紅腫。隔天早上爸爸出現在教室門口,原本正在上課中的老師出去跟爸爸說話,沒一會兒班長也出去了。我見到爸爸向老師微微鞠躬後消失在走廊上,之後午休不管我趴着眼睛有閉没閉都很平安。

哈!哈哈! 每當老師來家庭訪問時,爸爸總是說:「老師,我的孩子如果在學校不聽話您就打!打死我也不會追究的。」我嚇得在學校都不敢九怪(亂來)。後來聽到這位同學英年病逝的信息有些驚嘆,但對於我被竹枝打的往事,終究没能忘記。

同學家再過去是棟鐵筋洗石仔蓋的二層透天樓房,樓下有間代書辦公室,也是媽媽的遠親表妹家。她先生是代書,整天嚴肅地板著臉,我從没看過他的笑容。

代書家訂了中央日報,媽媽總叫我去跟阿姨討舊報紙當火引。如果代書姨丈在辦公室,我就不敢進去要,總是楞楞地站在門口等,直到阿姨從裡面走出來。我只敢怯怯地對阿姨說:「阿姨,我來拿舊報紙。」 阿姨會親切地招呼我:「入來!入來!」 我還是害怕,只想抱着舊報紙快點離開。

你問我害怕為什麽要去拿? 因為那堆報紙裡面有我最喜歡的副刊,一抱回家就急着找出所有的副刊。副刊上刊登的散文和短篇小說太好看了,有時候短篇小說以(上)(中)(下)的形式連載,我收集的報紙裡若是只有(上)、(下),缺了(中),抑或有(上)、(中),缺了(下),或寫著(待續),那得快找出這張報紙是幾月幾號出刊的,跑去灶脚柴火邊把所有舊報紙全翻一遍,找出來把故事完整看完,才能甘心。有時候怎麼翻都找不到,到底是被取去當火引燒了?還是被阿姨拿去包東西了?我要是沒看到完結篇總是會難過好幾天。哈!哈哈!

後來我在高中一年級的寒假去中央日報報社打工,辦公室書櫃上陳列著副刊集精裝本共30集,結果我利用上班時間一目十行把它全都看完了,開心!

代書阿姨家再過去是教務主任蔡老師家,有個的橘色大門,他家是我眼中的豪宅。蔡老師以繁殖寵物鳥當副業,在他家可以見到很多艷姿翠羽的小鸚鵡,畫眉鳥,八哥……等等漂亮的鳥兒。

爸爸出門佈教,有時候會從從事花農的信徒那裡收到花,爸爸帶回來後總讓我們送些給蔡老師,因為他很敬重蔡老師。我很喜歡這差事,只為了聽到按門鈴後如珠落玉盤的清脆叮咚聲。按鈴進去會先穿過寬敞乾净的玄關,我就像劉佬佬進大觀園。我把爸爸囑咐的花交给蔡師母,說:「我爸爸說這花給你們插。」任務完成了,卻很想多停留一下,參觀豪宅裡的陳設。畢竟平常路過常聽到鋼琴聲,很好奇鋼琴放在哪兒,只是一時之間没有藉口可以說,只好馬上出來。

有次和爸爸一起拜訪蔡老師家,蔡老師請我們進去坐,蔡老師家的沙發又長又軟,坐起來很舒服,但我不能像爸爸那樣靠著沙發背,我得兩手放在膝上以端正坐姿。因為爸爸和蔡老師講話之餘,眼神時不時瞄向我,傳達要我坐好、不可亂動的信息。我趁隙瞄了客廳一圈,瞥見地上放了個大水桶,裡面有很多煮熟剝好的雞蛋。只見蔡師母把蛋黄蛋白分開,再用一個細鐵網,把蛋黃搓成粉狀,篩過再拌飼料餵小鳥。我真羨慕這些小鳥,每天都有雞蛋吃。

我家的母雞如果只生了一顆雞蛋,媽媽會煎荷包蛋給奶奶,誰也不敢夾。要不就是用一只大碗公,打顆雞蛋、加滿水再用一點鹽、味素調味後放大鍋裡蒸。這道叫蒸蛋的菜一端上桌很快就吃光光。要是很幸運有許多新鮮雞蛋,媽媽會留着孵小雞,開始孵小雞的幾天後,媽媽會將一顆顆雞蛋對著60瓦的燈泡照著看,媽媽會說「這個有牽紅筋」(表示是受精卵小雞開始要成形了)、「這個没有牽紅筋」,把雞蛋分開放著。哈!哈哈!

没有牽紅筋的雞蛋隔天就會進我們肚子裡,真是美味啊!

與蔡老師家隔着一大塊水稻田的是一家豆腐坊。媽媽如果在星期六做包子或饅頭,黄昏時會叫我們帶著錢和大鍋子去豆腐坊訂豆漿。豆腐坊從凌晨3點多就開始磨豆做豆腐,要是想喝豆漿,前一天就要把鍋子送過去,讓老板磨豆漿時記得幫忙留下我們家的份。待星期天早晨我們睡醒了,再把預留給我們的豆漿抬回來,媽媽會把豆漿煮開,再添點糖。

豆腐坊老板知道我們家孩子多,不管我們拿什麽鍋去裝豆漿,永遠給上滿滿一鍋,但錢數都一樣。我們路過豆腐坊時常見他們的孩子打著赤脚,穿得破舊。但是善良的豆腐坊老板還是给我們一大鍋豆漿。哈!哈哈!

懷念豆腐坊老板的愛心豆漿,我也懷念老媽做的包子饅頭。豆腐坊就在台糖鐵支路4旁。

走到這裡,右轉彎進去就是我家了。沿著鐵支路(鐵道)走約五分鐘吧?會看到一個長方形大木板寫著「天理教」。這時再轉入小路約50公尺處,就是我們有歡笑、有淚水的童年家園了。

(待續)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라문황 주주통신원  low0309@hot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문황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김동호 2020-07-29 16:57:25

    일년만에 돌아온 대만각시 라문황 통신원의 아리랑 사랑 15화가 올라왔네요.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어린 시절. 계란 하나에도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던 추억. 호기심과 그리움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납니다.신고 |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주주커뮤니케이션팀  |  전화 : 02)710-0124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이상준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준
    편집위원 : 김경애, 김국화, 김동호, 김미경,김태평, 서기철, 심창식, 정혁준, 허익배   |  객원편집위원 : 김혜성, 박춘근, 박효삼, 안지애, 양성숙, 최성주, 하성환
    Copyright © 2020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