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

김태평 편집위원l승인2020.07.30l수정2020.07.30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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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도 그 남자를 만난다.

약속은 없었다.

아는 사이도 아니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며

나이와 이름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거의 매일 만난다.

▲ 출처 : ac-illust.com. 걷기가 끝나면 삶도 끝나리라. 그래서 오늘도 이 길을 걷는다.

무슨 일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다.

그냥 만나게 된다.

만나면 가볍게 손 흔들고 엷은 미소를 짓는다.

특별한 말이나 몸짓이 없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대부분 엇갈려 스쳐가지만 함께 걷기도 한다.

앞뒤로 걷기도 하고 나란히 걷기도 한다.

그 남자는 가벼운 조깅으로 그 여자와 보조를 맞출 때도 있다.

인위적인 것은 없고 그 날 그 때의 상황에 따른다.

같은 길이라도 날마다 변하지만 변화를 억지하지는 않는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므로 부담이 적고

구태여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른 대로 지나간다.

좀 안다고 시시콜콜 내깔지 않고 모른다고 무심하지 않다.

조심과 배려는 하지만 울타리는 없고 거리낌도 없다.

깍듯이 예를 갖추거나 윤리와 도덕에 구속 되지도 않는다.

인식하는 서로의 감에 따라 선을 지키지만 딱딱하지는 않다.

서로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없으므로 실망과 원망도 없다.

즐거우면 함께 웃고 서운하면 실실 넘겨버린다.

 

만나면 반갑지만 못 만나도 애태우지 않고 헤어져도 그리 서운치 않다.

시간이 쌓이고 만남이 길어지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산책길에 우연히 만났기에 우연으로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일상얘기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심각한 대화는 않는다.

그렇다고 애써서 피하지도 않는다.

관심사와 사회적인 이슈를 거론할 때도 있으나

시비를 가리는 논쟁과 토론은 옆길에 살짝 두고 간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런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길가다가 길에서 만났기에 길 가듯이 그렇게 스스럼없이 간다.

 

어떤 논제라도 가볍게 얘기하고 가볍게 듣는다.

사실 연식이 더할수록 가볍고 수더분한 게 좋더라.

무거운 것은 힘들고 빛나는 것은 눈부시더라.

혹 무거운 주제가 나오면 부담되니 어깨 너머로 슬쩍 넘긴다.

실언을 한다 해도 그렇거니 하면서 개의치 않는다.

친구도 아니고 연인은 더욱 아니며 길동무라 그럴까?

아무튼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그냥 그대로가 좋고 이대로도 좋다.

그 남자는 그 여자의 그대로의 모습이 좋고

그 여자는 그 남자의 그 모습 그대로가 좋다.

구태여 본인의지를 전하고자 힘쓰거나 그 결과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것뿐이므로 그것으로 족하다.

 

언제까지 둘의 길이 계속 될지는 모르겠으나

남아 있는 길을 함께 가면 좋을 듯싶다.

당장 내일 못 만나도 어쩔 수 없고 괜찮다.

다소 궁금하고 기다려지기는 하겠지만

연락처를 모르니 어찌할 수도 없다.

그 길엔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잔영이 남아 있으리라.

 

※이른 아침, 새벽 산책길에 거의 매일 만나는 그 여자와 그 남자에 대해 약간의 양념을 가미해 봤다. 실은 그들의 속내가 어떤지 모른다. 그저 재미로 썼다.

<그 남자 그 여자> 이미지를 쓰기 위해 검색해 보니, 쓰다 마사미라는 일본작가가 쓴 동명의 순정만화가 있다. 몰랐는데... 햐쿠센샤의 LaLa에서 1996년~2005년까지 연재되었으며 총 21권이라고 한다. 내용은 전혀 아니지만.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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