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가 기획 마지막 인터뷰
대전·충남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김병국 이사장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정지성 상임이사

주 : 4.19혁명 60주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옥천신문이 우리지역 출신 민주화운동가의 발자취를 좇는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옥천신문은 옥천 중앙교회에서 활동하며 지역 민주화를 위해 힘쓴 정차기 전 목사를 비롯해, 강구철 열사, 유병진 열사, 정형기 열사, 윤창영 열사, 청암 송건호 선생, 청명 임창순 선생의 행보를 지면에 담았습니다. 기획 마지막인 이번 호에서는 민주화운동의 의미와 지역 내에서의 계승 방안에 대한 내용을 담습니다. 대전·충남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김병국 이사장과 충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정지성 상임이사를 인터뷰했습니다. 김병국 이사장과 정지성 상임이사는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평생을 민주화운동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입니다.

▲ 대전·충남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김병국 이사장

 

“민주화, 대한민국의 자유를 이끈 핵심요소”

대전·충남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김병국(63, 교동식품 대표) 이사장은 ‘민주화’를 통해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민주화를 통해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기반이 조성됐고 시민들의 의식도 발전될 수 있었다고 봤다. 사회·경제적인 자유가 민주화에서 비롯된 만큼 김병국 이사장은 민주화운동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평가했다.

“민주화를 통해 대한민국이 지금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산업화 및 경제발전도 대한민국을 발전시킨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민주화 덕분에 자유로운 시장활동이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겁니다. 민중이 성취한 업적이자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룩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역사로 기록하고 계승해야 하는 거죠.”

김병국 이사장은 목원대(경영학과 78학번) 재학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는 등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다. 민청(민주화운동청년연합) 충남지부 총무부장을 맡으며 궂은일을 도맡아 한 바 있다. 당시 민청 김근태 초대 의장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대전충청 5.18민주화운동 계승을 위한 추모회 지부장을 2006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맡았다.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으로도 6년 동안 활동 중이다. 젊은 시절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5.18 당시 13개월 정도 구금되어서 살다가 나왔습니다.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체포돼 수감되면 대전교도소에서 만나기도 했죠. 6.29선언 이전에만 해도 감시받고 수배 받고 취업도 제한되곤 했는데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

1960년 이승만 정부의 독재와 부정부패, 인권유린에 대항하여 대전에서 최초로 일어난 학생운동인 ‘대전3.8민주의거’. 3.8민주의거는 지역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는 의미에서 2018년 국가 민주 기념일로 지정됐다. 지자체 및 국가 차원에서 계승해야 할 근거가 마련된 것. 대전은 지자체 차원에서 매년 행사를 열고 있다. 충청북도 역시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를 비롯해 지역 내 민주화운동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도 차원에서의 역할은 미비한 상황. 김병국 이사장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기리기 위한 시민 차원의 노력은 물론이고 지자체장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봤다.

“충청북도와 마찬가지로 대전 내 많은 단체 및 시민들이 민주화운동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습니다. 대전의 경우 지자체 차원에서 참여가 미비했었는데 권선택 전 시장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공직자들도 많은 노력을 하게 됐습니다.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기 때문에 지역 차원에서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기리는 당위성은 이미 확보된 상태입니다. 시민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역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기리기 위해서는 지자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병국 이사장은 옥천 출신 대표 언론인인 청암 송건호 선생과 관련한 활동 및 행사를 통해 보다 큰 의미에서 민주화운동을 기릴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더불어 민주교육뿐만 아니라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등을 통해 소외계층을 돌보고 민주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충청북도에는 청암 송건호 선생을 비롯해 기독교 농민회를 창설하신 최종진 목사님, 청주시시산업선교회 정진동 목사님을 비롯해 다양한 민주화운동가들이 있습니다. 많은 인물들이 있는 만큼 충북에서 민주화운동을 기릴 수 있는 기반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대전은 대전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의 활동을 통해 민주시민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자체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일상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불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이 구축되고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일상의 민주화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은 매우 많습니다. 의미를 되새기고 활동을 이어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정지성 상임이사

 

"이념 논란 넘어 역사로 민주화운동 바라봐야"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정지성(63) 상임이사는 아직 ‘진정한 민주화’가 오지 않았다고 봤다. 과거 독재정권과 달리 선거와 같은 제도적 민주화는 갖춰졌지만 관료주의, 재벌 등의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독점했다는 것. 진정한 민주화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부조리함을 깨뜨리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재권력과 싸울 당시에는 바꿔야 할 제도나, 처벌을 받아야 할 인물들이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구조화된 권력과 경제조직 등 부조리한 권력들이 우리 삶에 세밀하고 정교하게 스며들어 작동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치 민주화만큼 경제 민주화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도적 장치·경제적 구조로부터 기인한 불평등을 타파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와 시민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겠죠.”

정지성 상임이사는 ‘일상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지자체와 주민 모두 노력해야한다고 봤다. 특히 주민 동의 없이 사업을 진행하며 효율성과 행정편의주의를 내세우는 지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기초 지자체는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단위·면단위에서부터 주민 및 군·군의회 간의 상시적인 토론회가 열려야 합니다. 마을마다, 면마다 갈등이 다르고 의제가 다릅니다. 상시적인 논의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행정과 의회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공무원들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정 사업을 할 때 효율적으로 결정한다는 명분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민들의 삶이 어떤지 이해관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민주적 사고를 바탕으로 행정을 펼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지성 상임이사는 충북 민주화운동계의 산 증인이다. 충북대 4학년(행정학과 77학번) 재학 당시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다. 이후에는 계승사업회 등 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1960년 4.19혁명 직전, 도내에서도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돼 4.18 학생운동이 진행되는 등 다양한 민주화투쟁이 이어졌지만 조명이 되지 못하면서 아쉽다고.

“1960년 4월18일 청주시내 고등학생들이 ‘이승만 하야’를 외치며 연합시위를 벌였습니다. 고등학생 3천~4천 명 정도가 모였던 시위였고 의미가 컸죠. 다음날 지역 신문 1면에 배치될 정도로 대규모였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후 보은·제천·음성 등 도내 마을 구석구석에 민주화의 열망이 퍼져나가 농민중심의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한일협정 반대 시위를 비롯해 6.8부정선거 반대시위 등 다양한 시위가 벌어졌는데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4.19혁명 세대가 지역에 남아 민주화운동을 이어갔어야 했는데, 유신 및 긴급조치로 뿔뿔이 흩어진 걸로 보여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김재종 군수는 지난 취재 당시 “지역출신 민주화 운동가들의 발자취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민주화운동가의 행보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추모제 및 기념사업을 하는 건 시기상조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정지성 상임이사는 민주화운동 역시 우리 역사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후대가 평가할 수 있도록 남겨야 한다고 봤다.

“민주화운동이라는 과거 역시 우리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역사인 만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대중이 판단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동호 선생 역시 3.1운동을 만들어내는 동력이었던 신한청년당의 주역이었고, 독립운동이라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 운동을 하게 됐던 분인 겁니다. 분단 때문에 편견이 있지만 이분의 행보에 대해 남겨야 할 이유는 자명합니다. 민주화운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을 남기고 후세대가 기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도와 군 차원에서 활발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 이 기사는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양수철 옥천신문  minho@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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