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판 밑에 축음기 (필명 김자현)

<김자현의 詩 사랑방!>

 

엿장수, 엔니오 모리꼬네! / 김자현

엄마-구멍 난 중절모를 쓴 말 없는 엿장수 또 왔어요 우그러진 냄비 광분이 찢어진 말표고무신 서울사이다 병들 리어카 앞으로 줄줄이 모여들어요 엿판 밑 나팔 달린 축음기에선 *엔니오 모리꼬네가 걸어나와요 무릎뼈 허연 아이들 백동전 입에 물고 만화방 티비 앞으로 달리던 날들이었죠 씨리즈물 프리메이슨 같은 남자하고 결혼해야지 내가 맘먹을 때 엄마는 황소 들랑거리는 문창호지 밖에 계셨죠 참기름 바른 할머니 드릴 굴비를 굽느라구요


흰 와이셔츠 속에서 아버진 늘 음악다방 디제이에게 리케스트뮤직 메모지 내밀듯 오이지보다 더 마른 목의 오빠에게<돌아오라쏘렌토>, 활보의<내친구에내말전해주>를 청하셨죠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오빠의 <성불사의밤>을 타고 내려오면 마카로니웨스턴 붉은 사막, 앨라배마보다 더 사막 같은 날들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글오글 만화방

 

 

 

 

 

 

 

 

 

 

 

라이파이와 팝콘처럼 쏟아지는 텔레비젼 외화의 어쩐지 빛나는 둥근 언어 앞에서 우린 날마다 총을 맞았죠 앙가슴을 우리 영혼을 그들 총구 앞에 들이댔어요 서부 총잡이들 절묘한 백발백중 앞에 가난이 산산이 부서지는 줄 알았더니 남은 건 북악 밑에, 설맞아 너절한 전통이라는 것들이었죠

 

 

니노로타에 열광하던, 알랑들롱과 태양이 가득한 지중해 날아가던 언니 날개에 총을 맞고 구멍 난 엿장수 가위질 소리 들리는 그 동네로 떨어졌어요 헐리웃 키드 대열에 합류했던 거지요 지금도 갈 길 모르는 젤소미나 그리워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에서 우리 머리 허옇게 늙어가고 있지만 구멍 난 중절모 나팔 달린 축음기에 엔니오 모리꼬네 엿장수 출몰하던 그 골목에 가면 행주치마 두르고 내 젊은 어머니 아직도 거기 계신가요

 

 

 

 

 

 

*.엔니오 모리꼬네-6~70년대를 풍미한 이태리 영화음악의 거장

 페델리코 펠리니 –모리꼬네와 호흡을 맞추던 세기의 영화감독.

                 길, 씨네마천국 등

 

작은 해설-

  바로 한겨례 온에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김미경 샘이 소개하셨더군요. 그래서 몇 년 전에 썼던 시가 생각 나 올려봅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것은 아주 다양한 장르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제로 우리의 감성을 사로잡는 건 역시 음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로부터 알게 된 방랑의 휘파람, 그로 모리꼬네를 알게 되었죠.  

  언제가 되었든 누구든 내 과거의 마당을 밟고 지나간 음악을 듣다보면 그 시절의 이야기가 휘몰아쳐오죠. 그 시대의 분위기 암울했던 가난, 사랑을 나누던 사람이 잡힐 듯 숨결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이유가 거기 있는지 모릅니다.

  구멍이 여기저기 숭숭 난 중절모를 쓴 그 엿장수는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았죠. 말이 없었어요. 나는 꼬마라 몰랐지만 언니와 오빠가 그 사람이 틀고다니는 영화음악을 알아보았죠. 라이파이에 미쳐있던 언니 오빠들, 지금은 머리 허옇게 늙어가고 있지만 모리꼬네를 생각하면 빼어난 미인이었던 그 때의 젊은 어머니가 생각 나 가슴이 뭉클합니다. 

  *위의 시는 보통 산문시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미지만 넣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한 것으로 산문적 서사구조가 있어서 산문시라 부르지요. 그러나 시대를 압축하거나 상징하는 수사구조를 갖추고 있기에 시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승원 주주통신원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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