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매년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여기저기서 들어온 후원금을 보태어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버스를 대절하거나 동네 차에 나누어 타고 별식을 먹고 가무를 즐겼다. 작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마이크는 젊은이(60대~70^^)들 차지. 왕언니들은 밖으로 피난 나와(ㅜ.ㅜ) 웅얼웅얼. 그 중 한 왕언니가 흘리는 말씀이 내 가슴을 후려쳤다.

“우린 내년에 못 올지도 모르는데...”

가끔 동네 어르신들 중에는 타지에 있는 자식들 집이나 요양소로 떠나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냥 그렇게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인연이 아닐진대...

그래 한 평생 고생하며 허리가 반으로 꺾인 그 분들을 그냥 그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는 일이다. 내년에는 75세 이상 상노인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그런 행사를 해 보면 어떨까. 선물로는 까만 고무신에 주민자치 한국화 시간에 배운 꽃그림을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드리자. 그들을 인터뷰해서 그 기록을 본인에게 드리고 마을에도 보관하자. 그들이 청산의 역사이며 한반도의 역사다. 그들의 한평생이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게 하자.

침을 놓으며 달력종이 뒤에 왕언니, 오빠 15명 인생을 꼬치꼬치 물어 적었다. 고향은? 아버지 어머니 이름은? 몇 살에 시집왔으며 살림형편은? 자식은? 손주들은? 인생에서 제일 기뻤던 일은? 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은? 앞으로 바라는 바는?

쪼들리고 배고팠던 삶. 그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자식들 사랑. 자식에게 달걀 하나를 마음 놓고 못 먹이고 배불리 먹이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지금껏 이어진다.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며 살던 그 시절이 지금 와 생각하면 그렇게도 억울하시단다. 저들이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억울함은 딱 거기까지!

틈틈이 명상을 함께 하며 자식 손주에게 국한된 사랑을 폭탄 터지는 세상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넓혀보자고 했다. 불행했던 과거는 가 버리고 없으니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음을 감사하며 세상 평화를 기원하는 천사할머니들이 되자고요!

그러다가 마침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을 만나게 되었으니 보다 풍성한 기획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씨앗'에서 가외로 후원해주는 돈 40만원으로 마을 단체복을 마련하기로 했다. 티셔츠? 조끼? 앞치마? 좋아, 늘 왕언니들만 허리 꼬부리고 부엌에서 일하면 남자들은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더라. 남자들에게도 앞치마를 입혀보리라! 환타색 면을 끊어다가 주민 중 바느질 전문가인 P씨의 도움으로 앞치마 36장을 만들고 짜투리로는 마스크와 머리띠, 머리수건을 만들었다.

▲ 환타색 천을 끊어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를 만들었다. 남정네들에게도 입혀보자!

앞치마 가슴에는 뭘 그려 넣을까? 행복마을사업을 하기로 한 이후 어려운 일이 닥치면 곧바로 스르륵 해결방법이 나타나고는 했다. 하늘님이 도우시는 건가, 땅님이 도우시는 건가. 그려 우리 곁 저수지에서 신령님 한 분을 모셔오자. 웃는 달마 얼굴을 그려 보았다.. “이 행복이 삼방리 거지?" "이 행복이 삼방리 거냐?" 신령님은 우리가 물에 빠뜨린 걸 이번 기회에 찾아 주실 거다.

▲ 앞치마 가슴에 인쇄할 그림. 웃는 달마 얼굴로 저수지 신령님을 그렸다. "이 행복이 삼방리 거지?", "이 행복이 삼방리 거냐?" 두 개 중에 '거냐?'가 낙점을 받았다.
▲ 옥천의 지인들이 염가에 실크프린팅을 해 주었다. 복받으실껴~

컨설팅 회사 ‘씨앗’은 행복마을 만들기에 밴드 활용을 적극 권했다. 주민 뿐 아니라 타지에 나가 있는 자녀, 일가친척을 다 초대해서 마을의 변화를 지켜보고 참여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먼저 접촉이 된 자녀들에게는 마을잔치에 쓰일 축하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부탁했다. 어르신들이 활짝 웃는 모습들을 넣어 현수막도 만들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지만 코로나 때문에 한 달을 미루고 장소도 옮겼다.

▲ 초대합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첨단 시설을 갖춘 문화공간이 있다니 감사할 따름)

6월 8일. 발열검사 하고, 손소독제 바르고, 마스크 쓰고, 입장한 참여자들 중 75세 이상 어른들은 꽃고무신을 신고 무대의자에 앉아 그들의 사진과 인생이야기를 앞뒤로 코팅한 선물을 받으셨다.

▲ 남녀 모두 앞치마 단체복을 입었는데 예상과 달리 어색해하지 않으셨다.
▲ 꽃고무신을 신은 무대 앞의 주인공들. 주민들 앞에 이렇게 주인공으로 대접 받기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 한쪽에는 본인 웃는 사진을, 다른 한쪽에는 살아온 인생을 프린트 해서 2부씩 코팅했다. 하나는 본인에게, 하나는 마을회관에 보관할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 마을 역사입니다.

멀리 사는 자녀들이 보내온 축하동영상은 행사 하이라이트! 모두들 너도 놀라고 나도 놀라는 눈치들이 역력했다. 왕언니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대접 받아본 적이 없었다며 기뻐하셨다. 내년에는 더 잘 준비해 보겠습니다. 건강들 잘 챙기세요. 고사리 꺾으러 갈 때도 조심조심, 마실 다니실 때도 조심조심...

행사가 잘 끝나고 밴드에 사진과 이야기가 실리자 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외지에 사는 자녀들이 하나 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호라... 왜 이름이 밴드인가 했더니 이렇게 연결해서 묶어주는고만. 카톡과 달리 뒤늦게 들어와도 맨 앞의 게시 글부터 모두 볼 수 있으니 누구라도 흐름을 알 수 있다. 밴드가 이렇게 유용한 것인지는 나도 처음 실감하게 되었다. 좋은 세상이다. 제대로 이용하며 행복을 찾아가보자. 에헤라디여~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해바라기와 포도, 연꽃
7)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8) 삼방리의 딸 천사는 다르다.
9) 가사목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생뚱맞은 파도타기?
12)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3)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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